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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31. 2024

틀니 낄 나이가 되어서야

스물일곱 걸음

상상을 통한 픽션입니다. 가볍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나 투명한 컵에 담가 놓은 틀니를 꺼내 입에 넣는다.


'좋았어. 오늘은 핏이 딱 들어 맞는 게 느낌이 좋아.'


컨디션에 따라 잘 안맞을 때도 있지만 오늘은 잇몸 상태도 좋고 간만에 질긴 음식도 즐겨봐야겠다.


"회장님. 준비되셨습니까?"

"어? 그래.. 40대의 내게 보낼 편지를 쓰라고?"

"네. 미리 써놓으셨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필요하실까요?"

"1시간만 주게나."


고개를 꾸벅이고 비서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책상위에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종이와 펜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슨 말을 써야할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를 거슬러 과거의 본인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된 미래. 물론 지나온 과거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지나온 과거 중 많은 사람의 삶이 조작될 수 있는 사실 하나라도 알리게 되는 순간 끔찍한 형벌에 처해진다.


'왜 하필 많고 많은 나이대 중에 40대의 내가 떠올랐을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었기에..'


쉽게 쓸 수 있을 줄 알았던 편지는 이주일이 넘게 고민해 봤지만 단 한줄도 적지 못했다. 오늘 오전까지 적지 못한다면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끄으응 -


옆에 있던 지팡이를 집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바쁘게만 살다보니 운동을 하지 못해 70대에 건강을 많이 잃은 상태가 되었다.


확실히 관리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는 크게 벌어져 있었는데. 요즘 70대는 특히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심해졌다.


그깟 일이 뭐라고.. 건강까지 잃어가며 무식하게 일만했을까. 아니지. 그렇게 해서 지금 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게야.


세상은 공평하다. 반드시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인과의 틀에서 벗어나기란 범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게지.


'그만 생각하고.. 쓰자.'


[그대 과거의 나 보아라.]


'이상한데?'


박박 지우고 다시 쓸말을 떠올려 보는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다 다시 쓴 첫 문장은 결국 똑같았다.


'에잉. 그냥 쓰자. 나한테 보여줄 얘긴데 뭘 꾸미려고 그러는지.'


[40대의 그대는 참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아니했고 그대의 노력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대의 노력이 있었기에 비싼 금액을 지불하면서 까지 이렇게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하지만 건강은 조금 신경 썼으면 좋겠다. 벌써 무슨 말을 할지 떠오른다.

운동까지 하며 일까지 신경쓰기엔 하루가 짧다 하겠지.

이미 살아온 시절이지만 훤히 그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떠오르는 걸 보니 기분이 이상하네.


그대에게 긴말하지 않겠다.

매일 불안해하고 잘 살고 있는지 고민할 것을 알고 있다.

잘하고 있다. 항상 마음이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그 마음은 항상 노력으로 이어졌고 그에 따른 선택도 좋은 방향으로 향했다.


고생하고 있고 수고가 많은 그대 나의 40대여.

70대의 난 분명 행복하게 살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후회가 남는다네.

분명 온힘을 다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음에도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남는다네.


편지를 쓰려하는 이유도 그래서겠지.

왜일까? 성공한 나의 삶에 설명할 수 없이 자리잡은 이 헛헛함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는 알고 있는가?


시간이 많이 흘러서인지 나는 도저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네.

부디 안다면 알려주겠나? 알려줄 방법은 없겠지만.


어쩌면 내가 보낸 편지를 허튼 소리로 치부하며 꾸깃꾸깃 접거나 갈기갈기 찢어 휴지통에 버릴지도 모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다네.


그리고 부디 가족에게 잘하길 빌겠네. 아아.. 그거였나? 가족에게 잘하지 못했던 일들.

놀아달라던 아들의 부탁을 매일 미뤘었지.

내일은 한가해질테니 그때 놀자며 미뤘어. 그리고 한가한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다네.


대화 좀 나누자던 아내. 할말이 있다고 할때마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피할 궁리만 했었지.

헤어질 줄 알았다면 잘했어야 했는데.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 40대의 그대는 아직 기회가 있다네.


부디 그대에게 주어진 소박한 일상을 무시하지 말고 항상 주어진대로 유지될거라 여기며 가벼이 여기지 말아줬으면 하네.


이 나이에 내가 더 이상 바랄 게 무엇이 있겠나. 그저 마음 속에 자리잡은 헛헛함. 그것만 풀어졌으면..

제발. 한 번만 다시 온가족이 모여 웃고 떠들었던 그때로 돌아갈수 있기를. 그립..]


커헉 -


글을 쓰던 난 그대로 쿠당탕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숨이 가빠진다.


"회장님!! 빨리 의사 불러요!"


걱정스럽게 달려와 급하게 응급조치를 하는 비서를 마지막으로 의식이 흐려져간다.


'아아.. 죽음인가.. 이제 나는 편안으로 도달하는가?'


근데.. 왜 허리가 아프지..? 얼굴에도 통증이 느껴지.. 응?


눈을 떴을 땐 좁디 좁은 침대 위에 온가족이 옹기종기 누워 있었다.


'아.. 내 허리!'


좁은 틈으로 큰 아들의 발이 내 허리 쪽을 공격하고 있었고 작은 아들의 매운 손찌검이 얼굴에 착하고 달라 붙었다 떨어졌다 하고 있었다.


"아빠! 일어나. 나 배고파!!"

"어??"

"여보! 애들 밥 차려줘야지 뭐해? 잠꼬대나 하고 말이야!"

"으응? 뭐지? 나 회장? 회장님이었는데??"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어리둥절한 채 깼을 땐 그토록 그리던 온 가족이 옆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뺨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 아빠 이상해!"

"왜?"

"몰라 웃으면서 울고 있어."

"냅둬. 좋은 꿈이라도 꿨나보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땐 품에서 종이가 툭하고 떨어졌다.


'저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토록 바라던 40대의 일상 중 하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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