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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Apr 07. 2024

잘한다 잘한다 하면 잘하려나?

스물여덟 걸음

자칭, 타칭 작가가 넘쳐나는 시대. 바야흐로 대 작가의 시대!!


그 와중에 [나도 작가가 될 거야!]라며 호기롭게 나선 이가 있었는데. (접니다..)


근데 작가가 뭐지?


위키백과의 설명이 다소 관대하게 느껴져 그 의미를 가져왔다.


[예술과 취미의 분야에서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말한다.]


'오호.. 취미? 창작? 만든다?'


그냥 취미활동을 하는 것도 의미를 부여하면 창작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러면 작가가 별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닌 거 같은 게 모든 사람이 재능 충만한 천재형이라서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존재하는 책의 숫자가 지금만큼 많지는 않아야 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들었고.

요즘 부쩍 많아진 전자책의 형태는 특히 일반적으로 출판된 서적에 비해 페이지수가 훨씬 적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글을 써서 발행하는 게 예전보다는 확실히 쉬워진 건 맞는 거 같은데.


[무릇 책이라는 건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 하는 법!]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회사 다닐 땐 먹고살기 바빠서인지 하루하루 변해가는 기술 따라잡기도 버거워 겨우겨우 몇 달에 한 권 정도 기술 서적을 읽을까 말까 했다. 그렇게 아등바등 읽고 나면 다시 또 새로운 기술이 짜잔 하고 등장.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치 세상이 나한테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투자도 내가 하고 나면 귀신 같이 떨어지고 정리하면 오르는 매직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 


'나 같은 평범 이하인 사람을 괴롭히기 좋아하는 악신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라는 망상도 해보고.


생각해 보면 회사 다니는 동안은 창작이라는 걸 해보고 싶은 생각이 1도 없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 배부른 자나 허황된 꿈을 좇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했다. 주변에 강의를 하러 간다거나 책을 낼 준비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혀를 끌끌 찼다.


'본업에나 충실하지 쯧쯧.'


그런데 그들은 본업에도 충실했고 부업에도 충실했다. 오히려 내가 더 게으르고 꽉 막혀 있었다.


'그래서 뭐! 먹고사는 것만 해도 힘들단 말이야!'


누가 뭐라고 하던가? 괜히 억하심정에 혼자 속으로 분도 삭혔다. 다들 왜 이리 열심히 사는 건지. 열심히 안 살면 죄라도 짓는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지게.


그래도 뭐 본업과 관련된 책이라도 읽는 게 어딘가? 그 덕에 아예 읽지 않는 사람보다는 앞서갈 수 있었고 덕분에 그럭저럭 밥은 먹고살았던 거 같기도 하다.


"창작 활동 얘기하더니 자꾸 산으로 가는 거 같은데요?"


네네. 저도 그렇지만 다들 바쁘게 사는 세상인데 참을성을 바라면 안 되죠! 바로 본론으로 갔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갑자기 왜 창작이라는 것에 꽂혔을까?

솔직하게 말해야겠지.. 솔직하게 말하면..


회사를 그만두면서 잉여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

"뭐얏? 이 백수인간!"


정말이다. 시간은 늘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기도 뭐 하고. 책만 읽는 걸로는 근원적인 허무함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돈도 중요하지만 일단 인간으로서 무쓸모하다는 느낌을 없앨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회사만 이십여 년 가까이 다녀서인지 성향 탓인지. 일을 그만두자 잘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내 실체가 드러났다. 왜 천둥벌거숭이인고 하니.. 할 줄 아는 거에 비해 의욕이 과다했기 때문이다.


[으하하. 끌어당김 그래! 내가 원하기만 하면 온 우주가 날 도와줄 것이야. 근데 뭘 끌어당기지?]

[오호.. 그렇군.. 이렇게 따라 하면 돈을 벌 수 있단 말이지? 근데 지금은 피곤하니 일주일 뒤에 시작해 볼까? (그러고 다신 안 함)]


찾아보면 쉽게 돈 벌 수 있다거나 이러이러한 책의 내용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차고 넘쳤다.


"와! 세상에.. 돈 버는 법 나만 모르고 살았구나?"


시간은 생각보다 많았으니 이것저것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귀찮아도 몇 개는 따라도 해봤다. 결과는 X망. 하지만 차마 40대의 가장이 세상물정 모르듯 "하하.. 해봤는데 망했어요."라고 다니기도 모양 빠지고.


아니 솔직히 모양이 빠지는 건 뭐 그렇다 치고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지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많아진 시간은 초라해져 가는 나를 점점 자책하게 만들었다.


백수는 백수라서 초라한 게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여가려는 자신을 보며 점점 포기하는 모습 그것이 문제였다.


"안 되겠어! 이대로 살다 보면 정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유지 못해. 이혼당할지도 몰라!! 안돼..."


한심한 남편 그리고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았다.


'뭘 하면 좋을까?'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 끄적이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모르겠어서 시작한 글쓰기.


"신이시여! 전 뭘 해야 합니까?"


성경 속의 수많은 선지자처럼 내게 계시가 내려오는 행운이 따르진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이 계시받기까지 노력의 과정이 있었을 텐데 지면상 생략해 놓은 건 아니었을까?


그런데 신기한 일이 생겼다. 맨날 펑펑 놀거나 힘들면 누우려고만 했었는데 어느 순간 [글 안 씀?]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 오늘 안 쓰려고 했는데?'

'그럼 누움?'

'아니.. 그건 아니고..'


뭐지 이 찝찝함. 일단 조금 끄적거리고 쉴까? 하아.. 근데 지어낼 글도 없는데. 딱히 재미있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서 에피소드가 넘쳐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썼다. 


'미쳤어.. 손발이 오그라드는구나 아주..'


두 번 읽을 자신이 없을 만큼 부끄러운 느낌의 글.

'욕탕인 줄 알고 벗었는데 사무실이네?'


그 정도의 부끄러움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아내한테도 차마 봐달라고 말을 못 꺼냈다. 나중에는 봐달라고 하고 멀리 도망가 있기도 하고.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아니던가!


부끄러움도 결국 적응이 된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 부끄러우면 어때. 어차피 내일도 부끄러울 텐데 촤핫."

"ㅡㅡ+"


그렇다. 창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금이라도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그러다 보니 욕심도 생기고. 뭐 욕심이 나쁜 건 아니니까.. 잘못된 방향만 아니라면.


그래서 쓴다. 오늘 부끄럽더라도 내일은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워지길 빌면서.

그리고 꿈꿔본다. 진정한 끌어당김이란 뭔가를 하면서 원할 때 다가오지 않을까라며.


창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물론 아무나 창작의 대가를 얻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의미 없는 창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니까요 :D)


게다가 사람은 지금 당장만 보고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내 기준대로 재단했던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 


'남의 가능성을 감히 내가 뭐라고 함부로 얘기했을까..'


어쩌면 글쓰기를 하며 부끄러웠던 이유는 과거의 내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 너무 엄격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위를 바라보면 재능과 실력을 갖춘 수많은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닿을 수 없는 위치에 존재하는 신과 같은 존재.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데요?"

"쓰.. 쓰겠다는 겁니다."


별 수 없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니까 써야지. 그래. 쓰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뭔지는 몰라도 결국 알게 되겠지. 그렇게 셀프 동기부여를 하며 오늘도 글을 쓴 자신을 쓰담쓰담해 본다.


'귀여워.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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