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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Apr 09. 2024

그냥 써 보는 이야기 3

"快点儿!!"


탑승까지 남은 시간 30분 아르바이트를 완료하려면 립스틱을 수령해 가야 하는데 면세점 직원이 꾸물거린다.


"저기요! 왜 아직 안 주나요?"


어색한 한국어로 더듬거리며 직원에게 얘기를 꺼내자 한국인이 아니라서인지 살짝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저희도 찾고 있는 중인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나 봐요."

"저기요! 근데 왜 기분 나빠. 나를 보는 눈빛?"

"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한국말이 서투르니 뭐라고 따지질 못하겠다. 탑승까지 25분 남았다. 지금 수령해서 최대한 빨리 뛰어가야 겨우 탑승이 가능한데. 급한 마음에 번역기를 돌려 점원에게 보여준다.


[距离登机已经所剩无几了。请快点。]


'아차차.. 반대편으로 번역해서 보여줘야 하는데.'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뚜이부치. 뚜이부치. 왔어요? 빨리 줘요. 지금 탑승하셔야 한대요."


빠르게 물품을 수령하고 날듯이 탑승구로 뛰어갔다. 


"빨리! 빨리!"


겨우 탔다. 휴.. 그래도 다행이다 목표했던 물건은 전부 수령했으니 용돈은 벌었다. 본국에 도착 후 지정된 장소에 물건만 가져다주면 바로 현금수령이 가능한 일. 그렇다 난 [代購(따이궁)]이다.




[6개월 전]


"설리야. 집에 언제 갈 거야?"

"나 이번엔 한국에서 그냥 있을까 싶었는데.. 왜?"

"그래? 음 혹시 돌아갈 거면 알바 하나 같이하자고 하려 했는데."

"알바? 어떤 건데?"


메이린이라는 친군데 한국에 유학 와서 알게 된 사이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동급생 애들도 비행기 타고 오고 가면서 하는 알바가 있는데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고 돈도 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게 있었어?"

"뭐야 몰랐어? 우리 같은 학생 말고 어른들도 할걸?"

"위험한 건 아니야?"

"절대 안 위험해."


원리는 단순했다. 개인 한도 내에서 면세점 물건을 받아다 지정된 곳에 가져다주면 현금을 받는 구조였다. 


"그런데 왜 굳이 사람들을 써서 하는 거야?"

"면세점 물건이 싼 건 알지? 인기 있는 제품을 싸게 사서 현지에서 비싸게 파는 게 목적이겠지. 뭐 자세한 유통과정은 나도 모르겠어. 나야 그냥 물건만 가져다주고 돈이나 받는 거지."


사실 잘 이해가 간 건 아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어차피 이번 여름엔 한국에서 지낼까 싶기도 했으니. 메이린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엄마와 통화를 나눴다.


"엄마. 나 이번 여름엔 계속 한국에 있어도 되지?"

"저기 설리야. 할머니가 상태가 많이 안 좋으셔. 왠지 올여름을 못 넘기실 거 같구나. 지내는 건 상관없는데 와서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니?"

"할머니가 많이 안 좋아? 저번엔 그런 얘기 없었잖아."

"원래 나이가 들면 오늘 좋다가 내일 갑자기 안 좋아지기도 해. 그래 어떡할래? 엄마는 왔다 갔으면 좋겠는데."


학교 다니며 바빠서 즐겨보지 못한 한국 생활을 만끽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갈게."

"그래? 잘 생각했어. 엄마가 표 끊어 놓을까?"


문득 메이린이 얘기했던 알바가 생각났다.


"엄마 아니야. 내가 티켓팅할게."

"그럴래?"

"응. 그럼 시험 끝나면 갈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엄마와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메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무슨 일이야?"

"메이린. 혹시 오전에 말한 알바 나도 할 수 있을까?"

"이번에 한국에 있을 거라며."

"가야 할 일이 좀 생겼거든. 근데 진짜 안 위험한 거지?"

"안 위험하다니까. 그냥 실을 수 있는 만큼 가방에 담아서 가져가면 되는 일인데 뭐. 그리고 우리는 남자도 아니니까 무거운 물품은 맡기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담당자 카톡 알려줄 테니까 거기에 말 걸어 봐. 친절히 알려줄 거야."


전화를 끝마치고 메이린이 보내준 프로필을 눌러 말을 걸었다. 


카톡 


[신분증 사본이랑 계좌 알려주시고요. 혹시 몰라 보증금을 걸어야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보증금은 왜 걸어야 하나요?]

[물건만 수령해서 도망가는 사람이 있어서요.]

[아아.. 네에.]


복잡하지 않은 절차를 마친 후 다시 메시지.


[언제 출국 예정이신가요?]


날짜를 알려주자 잠시 후 내가 수령해야 할 품목에 대한 리스트가 사진파일로 날아왔다.


[지정된 면세점에서 물품 수령해서 알려드린 곳에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미심쩍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위험한 일도 아니니까 괜찮겠지.


출국하는 날 리스트에 적힌 면세점을 돌며 물건을 수령했다. 특별히 무거운 물건은 없었다. 대부분 화장품이어서 부담스러운 무게는 아니었다. 메이린의 조언대로 기내 캐리어를 비워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뭔가 비밀작전을 펼치는 것도 같고 직접 사는 건 아니지만 쇼핑하는 느낌도 들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본국에 도착해 알려준 곳으로 가니 허름한 오피스가 나타났다.


"여기겠지?"


주소를 여러 번 확인 후 벨을 누르자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간단히 가져온 물건 내역확인을 끝마친 후 준비한 현금을 손에 쥐었다.


'와? 너무 쉬운데?'


알바를 소개해준 메이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 맛있는 거 한번 사줘야지.




본국에 도착했는데 출국장의 분위기가 소란스럽다.


"야! 잡아!"

"잘못했어요."


공안이 나타나 다짜고짜 남자를 완력으로 제압하더니 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만들었다. 잡힌 남자의 옆엔 잔뜩 면세점에서 산 물품이 있었는데 공안에 의해 포장지가 전부 뜯겨 있었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저 사람도 따이궁인 거 같은데..'


"밀수 꾼 놈!  去你的!"


마음이 진정이 되질 않는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남자가 마치 내 모습이라도 된 거 같기도 하고 속도 울렁거린다.


'아니야. 난 밀수꾼이 아니야! 그냥 아르바이트생이라고.'


우웩 -


나도 모르게 토해버렸다.


'큰일이야. 망했어. 어떡해!!!'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밀수꾼에게 손가락질하던 사람, 공안, 노인, 어린아이. 모두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그냥 알바였을 뿐인데.. 봐주시면 안 될까요? 다신 안 그럴게요.'


다시 속이 울렁거린다.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빙빙 돌아가는 느낌.


'어지러워. 집에 가고 싶어.'


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피가 통하지 않는 느낌. 잠에 빠지듯 의식이 흐려져감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快点儿 : 서둘러.
去你的 : 꺼져.

우연히 본 중국어 단어 때문에 써 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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