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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Apr 05. 2024

그냥 써 보는 이야기 2

"오늘 공포영화 콜?"

"좋아!!"

"뭐 볼 건데?"

"파라노말 액티비티 봤어?"

"아니 근데 그거 옛날 영화 아님?"

"옛날 거라고 무시하다간 큰코다침. 보기 싫어?"

"아니야 보자."


공포 영화 동호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영화를 선별하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많지는 않지만 나포함 총 4명의 접점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우리 회사는 자율적으로 동호회를 만들거나 활동하는 걸 권장하는 편인데 인당 월 3만 원씩 활동비가 지급된다. 보통은 숙소 하나 잡아서 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 이것저것 먹으면서 영화 한 편을 감상한다. 불을 끄고 TV 화면 속 영화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친밀도도 올라간 느낌이 든다.


"회장님. 오늘은 어디서 볼 건가요?"

"아니 무슨 회장님이야 민망하게.."


선혜 누나. 나랑 같이 동호회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웹디자이너를 하고 있는데 처음엔 차가운 인상 때문에 친해지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좋아하는 장르가 비슷하고 생각하는 관점도 비슷해 항상 영화를 보고 나면 우린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오늘 멋 좀 부려봤어? 어때?"


검정 톤의 원피스. 조금 짧은가?


"잘 어울리는데?"

"끝?"

"??"

"아니야. 내가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여자가 물어보면 대답을 잘해줘야 한다고! 누나 있을 때 많이 배워둬 알았지?"

"뭘 배워?"

"휴.. 다른 부원들은?"

"글쎄.. 왜 아직 안 오지.“

“톡 보내봤어?"

"아직 안 읽었네.. 아 대실 시간 있는데."

"먼저 가 있을래? 어차피 장소는 공지해 놨잖아."

"우리끼리?"

"응. 뭐. 왜?"


그렇다고 단 둘이 숙소로 들어가는 건 좀 이상하잖아.라고는 말을 못 하겠고. 우물쭈물하는 새 부원들이 왔다.


"여어! 히사시부리."

"일본말하지 말랬잖아 매국노야!"

"와따시는 친일파가 아니라능. 근데 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봤는데 다른 거 안됨?"

"하아.. 진짜. 이거 일주일 전부터 정한 거잖아요. 상민 씨? 이러기예요?"

"칙쇼.. 알았다능... 와까라나이."


선혜 누나는 다른 거 보자는 말에 살짝 기분이 나빠진 듯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상민이는 원래부터 본인 보기 싫은 걸 안 봤어도 봤다고 하는 편이기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얼마 전 들어온 신입 부원 혜진. 아직까진 어색한 듯 살짝 거리를 두고 배시시 웃고 있다.


'보통 저러다가 그만두던데..'


그래도 최소 동호회 유지 조건인 네 명은 유지해야 활동비가 지급되니 나가지 못하게 잘해주긴 해야지.


"혜진 님은 오늘이 처음이죠? 원래 공포영화 좋아해요?"

"그런 건 아닌데요. 들어가고 싶은 동호회도 없고 했어서. 그리고 선혜 언니가 같은 팀이기도 하니까요. 들어오면 잘해준다고 했어요."

"현상아 나 잘했지?"

"네네. 누나 덕에 그래도 겨우 활동할 수 있게 됐네요. 자 이제 먹을 거랑 맥주 좀 살까요? 두 달 만에 활동이라 쌓인 활동비가 좀되니까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사도 돼요!"


그래봤자 편의점이다. 웃고 떠들며 이것저것 양손 가득 챙겨서 방에 들어왔다. 사실 우리에게 숙소가 어떤지는 크게 중요치 않은 데 TV 화면만큼은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행히 큰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새로 들어온 혜진은 남녀 넷이 모텔에 들어가는 게 영 어색한지 떫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괜찮아 혜진아. 영화 보고 떠들고 하다 보면 어색함도 풀려."

"언제 적 파라노말 액티비티냐능.. 칙쇼.."

"쟤는 무시하고."

"자! 오늘의 영화는 페이크 다큐기법으로 찍은 파라노말 액티비티인데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평소 관찰카메라처럼 이상현상을 찍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인지 더 무섭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번엔 제가 영화를 골랐지만 다음엔 다른 사람이 고르면서 돌아가기로 해요. 일단 보기 전에 말을 많이 하는 것도 별로니까 일단 볼까요?"

"네!"


불을 끄고 TV 불빛에 의존한 채 우리는 화면에 집중했다.


바스락 -


바쁘게 과자 봉지에서 과자를 움켜쥐는 소리.


꼴꼴꼴 -


상민이는 목이 마른 지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신다. 한 공간에 다 같이 있으니 온갖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는 신기한 기분이다. 영화는 어느새 초반의 지루한 부분을 지나 조금씩 이상현상에 대해 보여주기 시작한다. 몰입이 되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긴장감이 생긴다.


"핫!"

"쉿.."

"고멘나사이. 미안미안. 무섭네.."


선혜는 극혐 하듯 상민이를 살짝 째려보고 슬그머니 내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영화는 점점 무서워지면서 알 수 없는 초현상에 대해 계속 보여준다. 몸이 바짝 굳어버릴 듯 웅크러지고 긴장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과자... 과자라도 좀.'


눈은 화면을 향한 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과자를 찾는다.


!!?


'어..?'


과자.. 가 아닌데. 따뜻한 느낌. 손이구나. 이 이런.. 옆에 있던 누나의 손이었다. 순간 민망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지란 생각에 머리가 정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손을 확 뺄 수도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도 없고. 슬그머니 손을 빼야 하나? 그런데 누나의 손이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다. 너무 놀라 화면이 아닌 누나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누나도 날 쳐다보고 있었다. 민망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눈 그리고 깍지 낀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함과 땀. 다행히 다른 부원들은 영화에 집중하느라 우리는 안중에 없어 보인다.


'뭐.. 뭐지..?'


깍지를 풀더니 부드럽게 내 손을 터치하고 누나의 손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이동했다. 꿈인가? 깍지에서 풀려나 좋을 줄 알았는데 좀 아쉽다. 어느새 내 머릿속에 영화가 사라진 지 오래. 한참 동안 누나의 손이 스쳐간 체온을 느끼며 멍하니 화면을 보고 있지만 도무지 집중이 되진 않는다.


다시 한번 누나를 쳐다봤다. 이번엔 다행히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상당히 예쁜 편이다.


'보라는 영화에는 집중 안 하고!'


하지만 어떡하지. 이미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공포 때문이 아닌 누나 때문에 심장이 쿵쾅거리니. 참나.. 응? 내가 누나를 보는 걸 느껴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아까처럼 누나의 손이 내 근처로 와 있었다. 영화는 점점 절정을 향해간다.


"꺄!!!!"

"아악!!!!"


집중을 못해서인지 저들이 왜 비명을 지르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이젠 관심대상도 아니고. 내 눈엔 근처에 와 있는 누나의 손만 보일 뿐.


'잡아볼까? 잡고 싶은데..'


어?????? 분명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우리는 손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손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 그 뒤로 파라노말 액티비티는 내게 손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가 되었다.


누나와는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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