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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Apr 02. 2024

그냥 써 보는 이야기 1

"이게 아니야!!!!"


오늘도 시작된 고통. 종이에 쓴 글을 갈기갈기 찢어내자 내 마음도 같이 찢겼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글. 이 상태로 감히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이딴 걸 글이라고 부를 수 있어? 이건 그냥 한글로 된 쓰레기야!'


스스럼없이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감정 폭력. 언젠가부터 당연한 듯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난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제는 쓰고 나면 으레 치러지는 행사처럼 되어버렸다.


[이토록 재능이 없다니!]

[신은 불공평해. 나의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이지?]


창작은 잔인하다. 익숙해지지도 않을뿐더러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든다. 책상 위에는 친구가 쓴 책이 한 권 올려져 있다.


[나도 당신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쓰기 전까진.]


'재수 없어. 저딴 글이 뭐가 좋다고 저렇게 인기가 있는 거야?'


제목도 이상하고 내용도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책. 하지만 그와 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거리 이상처럼 느껴진다. 그래.. 대학교 때였던가?




수업이 끝나고 갈 곳도 딱히 할 일도 없이 교실 안에 앉아서 멍하니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뭐가 그리들 신나는지 "야! 야!"소리 지르며 웃고 떠드는 목소리가 어우러지며 경쟁하듯 "난 행복해!"라고 외치는 듯했다.


'책이나 읽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 한 권을 펼쳐 읽으려는데 문득 교실에 남아 있던 다른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관심도 없었던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가 하는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샤프가 아닌 연필을 쓰는지 휴대용 연필깎이에 연필을 넣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어 깎았다. 그리고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준비한 노트를 펼쳐 뭔가를 바삐 적는다.


'뭘 그렇게 적는 거지?'


이상하게 오늘따라 궁금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다가갈 때 까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듯 몰입 중이다.


"저기."

"..."


들리지 않나? 뭘 그렇게 열심히 쓰는 거지?


살짝 어깨너머로 보이는 그의 글씨. 생각보다 악필이다. 음.. 뭐지. 외계인? 은하계? SF 이야기??


"뭐야? 너?"

"엇?"


멍하니 보고 있는데 그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아니.. 미안.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고. 뭐 하나 싶어서 와봤어. 근데 불러도 네가 대답을 안 하길래.."

"날 불렀다고? 왜?"

"말했잖아. 그냥 궁금해서라고."

"음. 글 쓰고 있었어."

"글을? 소설? 일기?"

"소설. 한번 볼래?"

"봐도 돼?"

"안될게 뭐 있나? 보여주고 싶어 쓰는 건데? 아.. 쓰기 전에 어떤 내용으로 쓰려했는지 한번 말해줄까?"

"어..? 그래 뭐."


한참 동안 신이 나서 떠들었다. 정작 그 애의 작품은 읽지도 못한 채 설명해 주는 세계관 그리고 왜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설정했는지. 앞으로 어떤 내용을 보여주고 싶은지 한참을 설명했다.


내 기준에선 너무 신기한 사람. 딱히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그의 말에는 흡입력이 있었다. 마치 외계인 주인공이 된 것 마냥 감정이입도 되고.


"너도 글 써?"

"나? 아니. 써본 적도 없어."

"왜 안 써?"

"왜 써야 되는데??"

"그냥 써봐. 너 책 좋아하지?"


책은 좋아한다. 특히 소설 읽는 건.


"싫어하진 않는데.. 그렇다고 쓸 수 있다거나 써야 하는 건 아니잖아."

"재밌어."

"?"

"책을 좋아한다며. 그러니까 해주는 말이야. 쓰면 재밌어. 같이 쓰자."


지금 생각해 보면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같이 쓰자며 해맑게 웃는 녀석을 보자 그러고 싶어 졌으니까. 그 뒤로 우리는 꽤나 친해졌다. 서로가 쓴 글을 돌려가면서 봐주기도 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서 서로 써가며 깔깔대기도 하고.


그의 말처럼 글쓰기는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대신 그가 함께해 줄 때만 가능한 일. 혼자서라면 다시 외롭고 지루했던 일상으로 바로 돌아갈 테니.


그러다 전학을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른 건 아쉽지 않은데 친구와 헤어지는 건 아쉬웠다. 왠지 헤어지고 나면 글도 쓰지 않을 거 같은데.


"글쓰기를 포기하지 마. 너 재능 있어."

"그렇게 생각해?"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도 거기까지였다.




저주에 걸린 것만 같았다.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미친 듯이 썼다. 그때의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라도 있었던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불편해지는 마음. 죄책감. 자괴감. 


웃긴 건 쓰면 쓰는 대로 느껴지는 우울함. 피로. 절망.


성인이 된 후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발견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어 있던 [나도 당신처럼 똑같은 사람이었어요. 쓰기 전까진.]이라는 책. 


작가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찍혀 있었는데 한눈에 그라는 걸 알아봤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그는 그였다. 순간적이지만 너무 반가워서 연락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물론 연락처도 알지 못하지만.


'작가가 되었구나. 그래 될 줄 알았어.'


자연스럽게 집어 결제까지 끝마친 책을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한 장 넘겨서 봐볼까?'


멈칫했다. 왜 이러지? 갑자기 두렵고 서글퍼졌다. 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데 왜 난 이렇게 되지 못한 거지? 말해봐. 나보고 그랬잖아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책표지의 웃고 있는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생겨나는 막연한 질투심. 증오.


'혼자만 잘 됐네?'


이게 화낼 일인가? 근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단 한 페이지도 읽지 않은 채 그의 글을 폄하한다. 저 글도 쓰레기일 게 분명해라며.


'흥.. 두고 봐. 내가 더 잘 쓸 테니.'


그렇게 시작된 알 수 없는 증오심 가득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오늘도 고통 속에 내던져졌다.


'제발.. 도와줘.'


증오가 들어가서일까? 질투가 묻어서일까? 내 글은 쓰는 족족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선하게 아름답게 포장하려 해도 뒷맛이 쓰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책을 펼쳐 저자에 대한 소개글 밑에 있는 이메일 주소를 찾아본다.


.. 답변을 보내주려나?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에게 메일을 보낸 상태였다.





그냥 써 보는 이야기입니다. 주제도 내용도 꼭 이어질 거라는 보장은 없는데 그냥 끄적이듯 낙서하듯 의식의 흐름대로 한 번씩 써볼까 해서 마음대로 제목을 붙여봤어요. 이렇게 쓰다 보면 재미난 이야기로 발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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