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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Mar 25. 2024

서울행 5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교실?’


매일 반복됐던 익숙한 아침의 교실 풍경. 그 속에 다시 와 있다니 신기하다.


”자자! 그만 떠들고 수업하자!”


무슨 시간이지? 아. 영어 시간이구나. 어쩐지 친한 애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성적에 따라 특수반을 편성해 놓았었는데 영어 시험 성적이 괜찮은 편이라 난 항상 A 반이었다. 가장 안 좋은 점수를 받은 아이들은 D 반으로 편입돼서 수업을 받아야 한다.


친한 친구들은 주로 B-C 반에 있는 편이었는데 A 반에 있는 아이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받은 아이도 많았다.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으면서 A 반에 있는 거 자체가 별종이랄까? 과한 상상이긴 하지만 가끔은 상위권 애들이 나를 이상하게 힐끔힐끔 쳐다본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네가 뭔데 여기 있어?’라는 듯. 억하심정이라고 생각한다.


수업 진행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영문 독해 고급 편 한 권을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끝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하는 영어 방식은 오로지 외우는 거였다. 단어의 뜻을 있는 대로 전부 외우고 5 형식에 맞춰서 겨우 조합하는 형태. 신기하게 이렇게만 해도 점수는 꽤 잘 나오는 편이다.


말을 할 수는 있냐고? 당연하게도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영어를 배우는 건지 영어 단어를 외우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상한 공부 방식이 먹히니 이대로 계속할 따름. 미리 예습을 해놨었는지 칠판에 적어 놓은 내용이 술술 이해된다. 예습하는 습관이 중요하단 걸 새삼 느꼈다.


그때 뜬금없이 남학생 한 명이 들어왔다.


”어!”


’잠깐만. 인호 씨? 뭐지? 우리 학교는 여고인데. 설마 꿈인 거야?’


”자자! 오늘부터 우리 학교로 전학 온 김인호다. 인사해.”


아무리 꿈이라지만 개연성이라고는. 쯧.


”안녕 김인호라고 한다. 잘 부탁해. 특히 너! 심채원.”


어이가 없어서 주변을 살펴보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입으로 ‘나라고?’라며 뻥긋거렸다. 인호는 맞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래 너!’라고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얘기한다. 여기저기 수군수군 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뭐야.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매?”

”야. 좋겠다. 연애도 하고.”


그 외 째려보는 아이도 보인다. 한심하다는 듯 째려보다 한숨을 크게 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그때 인호가 나한테 걸어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어.. 어.”


어버버 거리는 사이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오더니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내뱉는 한 마디.


”보고 싶었어.”

”으아아아아!!”


개꿈을 꿨다. 그래 개꿈이야. 개꿈이어야 해. 연애를 해본 적이 없으니 그런 거야. 그저 다쳐서 받은 호의였을 뿐인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반응한다. 웃기지 마! 지금 연애할 처지나 돼? 정신 차려. 그냥 한순간 받았던 배려였을 뿐이라고.


’몇 시나 된 거지..’


휴대폰을 봤을 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점심시간에 전 언제든 괜찮으니까 채원 씨가 장소 정하고 얘기 주세요. 잘 도착했죠? 우리 다음에 만나면 대화 많이 나눠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자꾸 내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오려 한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닐 거야. 아니라고!’


현실을 생각하면 불필요한 감정 따위는 밀어내는 게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만 감정이 사라지질 않는다. 상상만 커져가고. 그래도 약속을 정했으니 만나야겠지? 


가만 생각해 보니 얼굴은 잘생긴 편이었던 거 같고. 그래 뭐 상상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 상상만 하자고 상상만. 대신 오늘까지만. 그렇게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생겨났다. 감정의 영향인지 갑자기 없던 용기가 솟아났다. 


[혹시 괜찮으시면 3일 뒤 말고 내일 저녁은 어떠세요? 굳이 시간을 끄는 것도 좀 아닌 거 같고 해서요. 혹시 일 있으시면 그냥 원래 정했던 날에 만나요.]

[좋아요! ^o^]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바로 답장이 왔다. 그것도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혹시 내 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까? 귀여운 이모티콘은 무슨 의미지?’


그를 생각하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도 없어서 외롭고 힘도 안 나던 서울이었는데. 특별한 사이도 아닌 남자에게서 온 문자 한 통에 서울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벌써 내일 뭘 입을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옷을 바꿔 입어보고 만나서 무슨 말을 건넬지 상상도 해봤다. 그러다 괜히 부끄러워져서 베갯 속에 얼굴을 폭 파묻었다. 


띵 -


[근데 몇 시에 어디서요? ^^]


아.. 그렇지 시간하고 장소를 깜빡했네.


[내일은 몇 시에 끝나세요?]

[채원 씨한테 맞출 테니 얘기 줘요. 스케줄 변경 가능해요 ㅎㅎ]

[괜히 저 때문에 막 바꾸시는 거 아니죠..?]

[ㄴㄴ 아니에요.]

[그럼. 내일 저녁 7시 어떠세요? 제가 잘 아는 분식집이 있는데. 아실지 모르겠는데 혹시 S대 근처에 있는 어머니분식 아세요?]

[잘 알죠! 거기 떡볶이 맛집 아니에요?!]

[맞아요!!]

[그럼 내일 봐요 :D 근데 걷는 거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


잠깐만.. 괜찮겠지? 괜찮겠지. 아직 젊은데, 그리고 건강 하나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을 한번 쭉 살펴봤다.


‘휴 입을 옷이 없어..’


그래도 있는 옷 중에 잘 어울릴 만한 옷으로 코디를 맞췄다. 떡볶이 먹으러 가는 일이 이렇게까지 신나는 일일 수 있어? 뭐 어때. 내 마음은 내 거니까 맘대로 할 거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침대에 누웠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마음먹기에 따라서 불행과 행복은 손쉽게 바뀔 수 있는 건가 봐. 앞서나가려는 마음을 겨우 달래며 다시 또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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