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걸음
강원도 고성에서 뭐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아직 생업이라고 딱히 지정해서 부를만한 게 없다 보니 부업을 여러 개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숙소 청소]다.
해당 부업을 구한 건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운영하는 숙소를 청소하고 있다.
한참 전에 그만둔 회사였지만 이렇게 다시 또 연이 이어질 줄이야. 이래서 퇴사도 최대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게 좋은 거 같다.
간혹 청소를 하고 있다고 하면 정색하는 분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나 버는 금액에 따른 계급화가 어느 정도 존재하기 때문일까?
어려서부터 몸 쓰는 일에 대해 별로인 것처럼 교육받는 것도 한 몫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그런 편견이 가득했던 사람 중 하나였기에 어쩌면 자업자득인가 싶기도 하다.
"오빠.. 누가 들으면 혼자 청소하는 줄 알겠네?"
"아하하.."
여기서 바로 짚고 가야 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 부업의 90%는 아내가 담당하고 있다.
- 아니‼️ 입은 비뚤어져도 똑바로 말해야죠. 본인이 직접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럼.
일종의 매니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글을 아내가 본다면 아마 오늘 집에 붙어 있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서 업혀 가는 건 아니니 조금은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청소 부업을 해보겠다고 예전 회사 부사장님과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부사장님이 잔뜩 걱정하셨었는데..
"고오급 인력께서 이런 일을 해도 괜찮겠어? 그리고 기왕이면 우린 오래 일할 사람이면 좋겠는데.."
다행이다. 아직까지 누군가에게는 고오급으로 분류될 수 있다니.
- 그냥 한 말일 텐데 뭘 모르네요.
듣고 싶은 대로 듣도록 하겠다. 나름 PR을 했다.
"청소에 혼을 담아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몇 년 정도는 이곳에서 지내볼 생각이니 걱정 마세요 :)"
"그.. 그 정도의 열정이라면.. 합격! 목걸이를 주겠네."라고는 안 하셨지만 어필은 성공했다.
그리고 나 대신 청소에 혼을 담고 있는 아내는 언제나 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곤 한다. 하지만 난 그 눈빛조차 애정이라고 여기는 중이다.
"그만해라? 청소하는데 짜증 나게 진짜."
소위 3D 업종으로 분류되는 일에 대해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내 일은 키보드를 뚜둥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무더운 햇볕이 쨍쨍 내려쬘 때 밖에서 땀 흘릴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온실 속의 화초 그 자체였다.
그러던 내게 변화가 찾아온 건 거의 30을 눈앞에 두고 낯선 캐나다라는 곳을 가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를 떠나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생활을 하다 보니, 비로소 내가 얼마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주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각자가 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몸 쓰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아닌 분도 있었지만 일자리는 한정적인 데다 캐나다인들도 원하는 직업을 뚫고 입사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난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삼촌이 가게를 창업하며 불러줬기에 변변치 않은 비자였음에도 나름 취업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삼촌 가게에서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웠던 거 같다. 일의 힘듦을 떠나 내 머릿속에 장착되어 있던 한국식 사고관을 많이 뜯어고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는 몸 써서 일하는 것에 대해 다시는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강원도 고성. 이곳은 어떠한 곳인가?
공기 좋고, 물도 맑고, 산과 호수 바다가 공존하는 도시. 자연환경만 놓고 보자면 캐나다 부럽지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이곳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겠다.
여기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양질의 일자리는 무엇일까?'
타협이 필요하다. 특히 기반이 없는 사람이라면 업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변화해야 한다.
허드렛일을 싫어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한 가지로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면.. 안타깝지만 고성 생활이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충분한 재력이 있으면 된다.
- 역시.. 지방은 일자리가 문제라니까.
맞는 말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타협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이곳은 기회로 다가올 수도 있고 아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 아니. 그래도 생활비 정도는 감당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축도 좀 해야 하고.
그래서 감히 제안드린다면 N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이 아닌 필수.
물론 여기까지 이사 와서 자연경관을 누리기는커녕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일만 하는 거면 뭐 하러 왔나 싶겠지만. 부업의 강도를 잘 조절해서 선택하면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고 싶다.
- 흥. 그래서 N잡으로 어떻게 좀 짭짤하신가요?
싱거운 상태다. 짭짤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서울에서 살다 고성으로 이사 온 게 아직까진 너무 좋다. 비록 이곳에서도 집돌이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 드라이브하며 바라보는 산과 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다.
애초에 이주 목적이었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의 면으로만 보자면 그 부분은 성공적이라고 자평도 할 수 있겠다.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만 얻는 게 있으면 놓아야 하는 것도 있는 법.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삶을 대하다 보면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제 3년 차 고성생활에 접어든 지금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잘 사는 기준을 직장 생활했을 때로 맞춰서 보자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다른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잘 살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간간히 강원도에서의 생활도 조금씩 기록으로 남겨봐야겠다.
혹시 알고 싶거나 궁금한 내용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봐 주세요. 알거나 경험한 내용이라면 글로 다뤄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