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걸음
20대 시절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서울이었던 신촌에서 자주 놀았었다. 그나마 가깝다고 표현했지만 1시간 30분 정도는 걸렸던 거 같다.
놀다 보면 시간이 애매하게 늦어지곤 했는데 저녁 10시 이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집에 갈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해 줄을 스러 가봤는데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내 20대가 풍족 치는 않았기에 마음 놓고 숙소를 잡거나 택시를 탈 수는 없었다. 친구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겨질 때면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끼여서 광역버스를 타고 돌아갈지 아니면 여기 남아 첫차를 기다릴 동안 어떻게든 시간을 때울지를.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게 있었으니 바로 [동시상영관]이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어서 늘 지나치며 보긴 했었는데 직접 들어가 볼까를 생각해 본 건 처음이었다. 보통의 동시상영관과 달리 신촌에 있던 극장은 3개의 영화를 상영했다. (지금도 극장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첫차 타기 전까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렇다고 해서 상영하는 영화의 질이 나쁜 편도 아니었던 게 나름 인기작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집에 들어가 봤자 잠이나 자겠지. 영화나 보자."
집이 주는 안락함을 포기한 채 극장을 택했다. 어떤 과정으로 표를 구매하고 자리에 앉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피곤함과 약간은 과할 정도의 취기가 합쳐져서 일수도.
들어가는 순간부터 극장은 깜깜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고 다정한 연인의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도 했다.
자리는 많이 남아 있어서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이동해 앉았다.
좌석에 몸을 기대자 피곤한 기운이 확 몰려왔다.
"하아아아암~"
영화를 보기 위해 눈을 부릅떠 봤지만 피곤함을 이길 순 없었다. 그대로 여러 소음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여전히 캄캄했다. 그리고 무슨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는데 어떤 영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낭만적이다. 그치? 오늘 여기 오길 잘했어."
"잠 좀 자지 그랬어. 집에 갈 때 안 피곤하겠어?"
기분 나쁜 숙취와 함께 깨어난 나와 달리, 챙김을 주고받는 연인의 대화가 부럽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 중에 한 명이라도 붙잡아 놓을걸.
시간을 보니 어느새 5시가 넘었다. 이쯤이면 지하철도 운행하고 있으려나? 지금처럼 어플로 운행시간을 알 방법이 없어서 불편하지만 역사로 걸어가야만 운행시간을 알 수 있었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어두컴컴한 극장을 빠져나왔다.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던 거 같은데.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일은 내게 특별한 이벤트였다. 자주 보고 싶어도 데려가주지 않았기에 한번 보러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설렜다.
동네에는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라면 다소 잔인한 영화여도 같이 보러 갈 수 있었다. 그날은 어떤 바람이 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웬일로 아빠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
"영화 보러 가자."
"와!"
뭘 보러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좋았다.
30분 정도 걸어 극장에 도착했을 때 상영되는 영화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브레이브 하트] 그리고 [나쁜 녀석들].
사전 정보는 없었다. 뭔지도 모르고 그냥 들어가 부모님과 함께 좌석에 앉았다.
첫 번째 상영 영화였던 브레이브 하트에 대한 기대치는 0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스코틀랜드 역사까지 알게 뭐람.'
착각이었다. 다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영화를 보며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날 그렇게 슬프게 만들었는지 그때의 감정이 떠오르진 않지만 여하튼 브레이브 하트는 내게 강렬한 기억과 함께 추억까지 남겨줬다.
첫 번째 영화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에 나쁜 녀석들에 대한 기대는 더 없었다. 이미 장시간 영화를 본 상태라 피곤하기도 해서 지루하면 잠이나 자야겠다 싶었다.
하. 지. 만..
두 번째 영화마저 너무 재미있었다.
영화 두 편을 하루에 몰아서 봤는데도 피곤함 보다는 벅차오름 비슷한 감정이 더 커져 있었다. 보러 오길 정말 잘했다.
고등학교 시절 동시상영관은 친구들과 함께한 기억이 난다. 그 시절 우리는 무한리필 되는 고깃집에 가고 영화를 보는 게 최대의 행복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답게 성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야! 영화 보러 가자."
"뭐 재밌는 거 해?"
"장난 아니야. 원래 청소년 관람불가인데 극장에서 들여보내준대. 갈래 말래?"
물어볼 것도 없이 콜!
어허. 절대로 야한 게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지적 호기심을 좀 해결하고자 하는...
- 구차하긴.
제목부터가 자극적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그리고 [옥보단].
남중, 남고를 거치며 여자 하고는 대화조차 나눠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였기에 더 동경했던 것일까?
- 포장 그만하고 그냥 써요.
내용? 은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난다. 보고 나서 그냥 굉장했다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우와.. 진짜. 와 씨.."
그날 우리의 상태였다. 그 뒤로도 친구들과 동시상영관을 몇 번 더 갔었던 거 같은데 어째서 이 영화만 떠오르는지에 대해선 이유를 모르겠네.
볼 것이 넘쳐난다. 더 이상 동시상영관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볼 정도의 열정이 남아 있지도 않다. 설령 동시상영관을 발견했다 쳐도 장시간 동안 집중해서 볼 자신이 없다.
가끔은 특정 시절이 생각나고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별 거 하지 않아도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누구와 함께 하고 어떤 기분으로 선택했는지에 따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느끼던 순간들.
아직 40대 초반 밖에 안 됐지만 참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고 있구나 싶었다. 어째서 과거보다 삶은 나아진 거 같은데도 바라는 건 이토록 많아지는 건지.
잊었던 감정은 문득 아이들을 보면서 되새기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아.. 나도 저랬었는데."
"좋겠다. 별거 아닌 것만으로도 저렇게 행복해하다니."
과거에 아버지가 동시상영관에 데려갔던 그날이 생각났다. 어쩌면 어린 아들과 함께 잃어버렸던 감정을 느껴보고 싶으셨던 건 아니었을까?
'나중에 나도 한번 해봐야겠어.'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런 기억 중 하나가 내겐 동시상영관이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기억 하나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무심한 듯, 꾸미지 않아 보이는 특별한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다. 함께했었다는 기억만으로도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을 남겨주고 싶다.
오랜만에 옛 영화가 떠오르는 날이다. 아마 찾아서 보진 않겠지만 예고편이라도 한 번 슬쩍 살펴보며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