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미혹당하지 않을 나이?

75 걸음

by 고성프리맨

40대가 되고 나서 좀 더 명확해진 게 있다면 확실히 선을 긋는다는 거다. 이전까지 내가 주로 듣던 말 중 하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이면을 살펴보면 '나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라는 바람이 있었달까. 그런 나의 바람과 달리 우유부단함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박쥐처럼 인식당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유부단함의 또 다른 모습 중 하나는 욕심이었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며 놓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놓지 않고 싶다는 희망사항만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을 뿐이다.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나선 [선택과 집중]만 하기에도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이 사나웠다. 그러나 욕심을 뒷받침할 노력은 없었기에 늘 망상 수준에서 그친 게 전부였다.




40대를 특정해 글을 쓰고 있긴 하지만 딱히 나이에 대해 구분을 짓는 편은 아니다. 단지 화자인 내 나이대를 강조해 글을 쓰는 게 좀 더 편하게 느껴져서다.


이상한 근자감이 있다. 상대방은 고려치 않은 채 나이를 불문하고 소통왕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하곤 한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중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나란 사람의 존재감도 빛나려니 생각한다.


과연?


스스로 생각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근자감을 뒷받침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면 겸손도 필요하다.


설령 충분한 근거가 있더라도 주목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한 행동은 삼가도 되지 않을까?


관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내 이야기는 줄이고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노력하자. 자꾸 입이 근질거리더라도 말이다.




흥밋거리를 많이 잃었다.


밤새워가며 했던 게임도 시들하게 느껴지고, 몰입해서 보던 콘텐츠도 하루종일은 못 보겠다. 몸 담았던 업계 소식에 관심이 뜸해졌으며, 한때의 관심사였던 것도 차게 식었다.


반대로 식지 않고 타오르는 이상한 흥밋거리도 존재한다. 원래부터 관심이 있었던 건지 뒤늦게 발현된 건지는 모르겠다.


조금은 꾸며진 나에 대해 관심받고 싶어졌다.


일상을 살아가는 나, 아버지로서의 나, 남편으로서의 나를 벗어나 [작가로서의 나]와 같은 부캐를 얻고 싶은 욕심?


욕심이 뒷받침되기에 글을 쓸 수 있는 거 같긴 하다. 젊었을 때의 원동력 중 하나가 열등감이었다면, 지금의 원동력은 [관심]인 거 같다.


뭐가 됐건 움직이게 만들어 준다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된다.




바닷가에서 살다 보니 놀러 온 커플을 많이 본다.


풋풋해 보이는 커플, 서로에게 밀착해 사랑을 확인하는 커플,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사연이 있어 보이는 커플, 인생의 후반기를 같이 보내는 듯 보이는 아름다운 노년의 커플 등.


다양한 사람을 보며 나를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여러 커플의 모습 중에는 과거의 모습이 보였고, 현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도 보이는 듯했다.


사람, 인류 그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범주에 속해 있는 만큼 유사한 면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들의 모습을 관찰하며 넋 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흘러버리곤 한다. 풍경 속에 물들어 있는 모습도 좋았지만 풍경 밖에서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느껴진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생각했던, 1인칭 시점으로 바라보는 나이대가 있었는데.

한발 떨어진 상태에서 3인칭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걸 즐기는 나이대로 변했음이 느껴진다.




몸의 변화가 생겼다.


자칭 푸드파이터라 부를 만큼 특정 음식에서 만큼은 남다른 식성을 보였었는데 이젠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이 생각나지 않는다.


가끔은 추억을 벗 삼아 먹을 때가 있지만 예전의 그 느낌이 들진 않는다. 소화도 잘 안되고 식성도 변한 탓이리라.


식욕이 정말 많이 줄었다. 식욕이 완전히 사라져서가 아니라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양이 변해버린 탓이다. 먹고 싶은 욕심만큼 먹다가는 체하거나 장염에 걸리기 일쑤다.


부정하고 싶어 억지로 많이 먹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건 병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변화를 받아들일 때가 된 거 같다.




어쩌면 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쓴다는 행위는 보여주고 싶고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드러내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만약 과거의 내가 쓰는 글이었다면 좀 더 많은 욕심이 내포되어 있었을 거 같다. 지금의 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쓰는 걸 목표로 한다.


없는 무게를 억지로 만들어 내지 않으려 하고 있으며, 생각한 적 없는 특별한 메시지를 떠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포장은 덜하되, 너무 거친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의 글이 쓰고 싶다.


몸의 변화만 생긴 게 아니라 정신적인 변화도 생긴 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식욕의 크기를 조절해야 했던 것처럼, 자의식에 대한 표현의 크기도 조절이 필요해진 거 같다.


하루하루의 변화는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일 년, 이년 그 이상의 단위가 흐르고 난 뒤의 변화는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자. 나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좀 더 맞춤형의 글을 쓸 수 있도록 공들이자.


느린 듯해도 착실히 쌓아가는 발걸음이 결국 나의 길로 인도해 주리라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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