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걸음
정체되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아무래도 교류가 줄어들어서는 아닐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한 게, 회사를 다니며 성장한다고 느끼고 산 세월이 길어서인 거 같다. 연봉이 오르거나, 나를 부르는 호칭이 바뀐다거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다거나 등.
[집토끼 -> 야생토끼]의 삶으로 바뀌고 나자 모든 환경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 때가 되면 챙겨주던 따뜻한 음식도 살갑게 다가와주던 주인의 손길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집토끼 시절의 기억만 그대로 남아 오지 않을 주인의 손길을 하릴없이 기다려 보다 시간만 늦어 버렸다.
꼬르르륵-
"배고파.."
현실을 깨닫게 되는 건 단순한 것에서 시작된다. 배고픔 같은 근원적인 문제와 마주하는 순간 "아.. 맞다. 나 이제 야생토끼지?"라며 먹이를 찾아 나서게 되니까.
처음엔 야생토끼가 된 걸 후회했다. 내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수많은 아쉬움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찌르는 느낌이었다.
한번 누군가의 손길을 탔던 개와 고양이가 야생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달라. 비록 지금은 어딘가에 속해 있지만, 나중엔 내 의지대로 떠날 거야‼"
불안해서 외친 말이었다. 언젠가 회사에서 벗어나게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니까 괜찮다고 하고 싶었다.
나의 쓸모 있음을 여기저기 떠벌이며 "제발 내 기여도를 알아줘."라고 PR 하기 바빴다.
그 습관은 여전히 남아 있는지, 이렇게 온라인상에서도 "글 좀 읽어주세요!"라며 PR을 하고 있잖은가. 내향인답지 않게 여전히 누군가의 손길을 바라며 애정을 갈구한다.
긁?
여느 인터넷상 조어가 그렇듯 처음엔 살짝 거부감이 들었다. 이미 자리 잡은 좋은 단어가 많은데 굳이 새롭게 만들어 낼 이유가 있는지.
어느 순간부터 [긁혔다]라는 표현을 많이 봤다. 긁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거라 생각한다. 그 행동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마저도 쓰기 귀찮을 땐 줄여서 "긁?"처럼 쓰기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여러 면에서 긁혔다.
아무래도 쌓인 습관이라는 게 있고, 성향이라는 게 존재해서 그렇겠지만, 여러 부분에서 별로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1.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서지 못해 긁혔고
2. 시기하는 누군가를 부러워해서 긁혔고
3. 글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긁혔고
4. 그냥 자존감이 낮아져서 긁혔다.
긁힌 순간의 감정은? 매우 아팠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지. 왜냐하면 난 엄연한 어른이니까. 그러다 밖에서 긁혀서는 괜히 집에 와서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얼굴이 붉어진다.
정신을 차려보니 야생토끼로 산지도 3년이 지났다. 첫해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바뀐 환경 때문인지 멍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건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도 아이도 다들 각자만의 적응 시간을 가지느라 고생이 많았다. 그나마 아이가 오히려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시간이 더 짧았던 거 같다.
그리고 매 순간 불안했다. 지금도 불안은 늘 존재하지만 첫해의 불안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게다가 야생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집토끼로 사는 다른 이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 좋았다.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지만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초조하지 않은 척, 여유로운 척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티가 났을 거 같다. 완벽히 위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게 느껴지는 부분이 상당하니까.
그리고 그런 1년여의 시간은 호기심을 덮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트렌드가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고작 개인의 경험 하나가 얼마나 오래갈 거라고 기대한 건지.
그래서 2년 차에는 나름 바삐 살았다. 최대한 생각을 없애야 했고, 그럴수록 불안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대신 고립은 찾아왔다. 점점 나만의 세계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았다. 굳이 공감에 대해 바라지도 않았던 거 같다.
그러다 뒤늦게 알았다.
공감을 바라지 않았던 게 아니라 바라지 않는 척하고 살았다는 것을.
3년 차의 난 노련해졌을까?
이제 야생에서의 삶은 많이 적응된 걸까?
확신은 못하겠다. 대신 "버티고는 있어요."라고 말할 수는 있을 거 같다. 틀린 말은 아닌 게 실제로도 버텨나가는 삶에 가까워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가 시켜서 선택한 삶이 아니기에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다. 버텨나간다는 게, 부정적인 느낌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버티지 못하면 어쩔 것인가? 어차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버텨나가야 하는 삶이 주어졌으니 기꺼이 즐기는 모드를 취하는 게 낫겠지.
대신 첫해보다 많이 보수적으로 변했다. 새로운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기보다는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마치 새로운 걸 해야지만 정체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알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이 계속 다가왔다 사라진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라며, 마음을 어지러이 흔들어 놓고 간다. 그럴 때마다 왜 이리 흔들리는지.
3년 차를 지나 4년 차, 5년 차가 되면 좀 더 나아져 있으려나?
야생토끼가 주의해야 할 점은 뭐가 있을까?
그리고 어째서 자꾸 토끼에 비유하는 걸까?
"쥐며느리, 노래기 같은 벌레로 비유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그렇다고 상위포식자로 표현하기엔 안 어울리는 느낌이기도 하고요."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야생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기대를 해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글이라는 게 교훈적인 내용도 좀 들어가고 해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 설마 이렇게 글을 끝내진 않을 거야. 뭔가 쓸모 있는 팁 하나 정도는 쓰지 않겠어?"
안타깝지만 없다. 한때 팁이라고 생각했서 기록해 놓은 것조차 금방 상폐된 주식처럼 쓸모가 사라졌다.
"하.. 뭐라는 거야?"
대신 3년 차의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냥 모든 게 다 일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 그러려니 하게 된다. 그 어떤 일이 생겨도 "이게 말이 돼?"라며 길길이 뛰며 분노하지 않고 "그럴 수 있어."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달까.
애초에 정해진 규칙이란 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집토끼로 살아갈 때 필요했던 것들은 집에서 살아감을 전제했기에 성립될 수 있던 것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밥이나 차렷‼️"
아내의 정겨운 소리에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여기.. 아내의 집?이구나.
'오호.. 나 야생토끼가 아니었네?'
지금까지 야생토끼인 줄 착각하고 살았는데 알고 보니 집만 바뀐 집토끼였구나.
'안심이다. 휴 정말 다행이야.'
하지만 어째서인지 밥 하러 가는 발걸음이 왜 이리 떨어지지 않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