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걸음
8월 중순이 되어가니 한풀 무더위가 꺾이는 느낌이 든다. 바깥은 여전히 뜨겁지만 숨 막힐 정도로 폐부를 압박해 오던 무더위의 느낌까지는 아니다.
소소한 일이지만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보니 운전을 자주 한다. 운전을 하며 바라보는 창밖 속, 사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일이 공공 속에서 이뤄지고 있음도 알게 됐다.
도로가 파이면 보수 공사가 이뤄지고, 바람에 휘어진 도로표지판을 비롯한 각종 공공재를 손보기도 하며, 길가에 펴 있는 아름다운 화단을 관리하거나, 해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날마다 치우는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부터 이런 일을 해오는 사람은 존재했겠지만, 어째서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그만큼 주변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는 증거겠지.
하다못해 살고 있는 아파트 내의 직접적인 대소사를 해결해 주는 관리직원 분들을 볼 때면 감사함의 크기는 더욱 커진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었다는 걸 40대가 돼서야 체득하다니.
'나도 누군가에게 감사함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일단 멀리 목표하지 말고 가족부터 시작해 보는 게 좋을 거 같다.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거나, 아이에게 친근한 아빠가 되어 보는 것. 사실 이것도 어려운 일인 거 같다.
다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온기를 전파시킨다.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익숙함으로 인해 감사함에 대해 표현을 못한 부분이 많은 거 같다.
그렇게 주변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신뢰하는 단계를 거쳐, 비로소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까지 그 신뢰를 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가 왜인지 물어본다면 사실 뚜렷하게 대답할 말을 찾진 못하겠다.
좋은 사람 되기 증후군에라도 걸린 건 아닌데.. 갑자기 샘솟는 알 수 없는 인류애라니.
영향력.
요즘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뚜렷한 색깔을 가진 개인이라면 충분히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된 세상. 그런 사람을 가리켜 인플루언서라고 부른다. 사전적인 정의로 영향력의 범위를 좁혀 보면 [Internet celebrity or Internet personality]로 쓰여 있다. 즉 인플루언서는 온라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뜻한다고 봐도 될듯하다.
글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내게 익숙한 형태는 종이의 형태로 이뤄진 책이었는데, 지금은 노트북으로 타자를 쳐서 활자를 조합하는 디지털화된 텍스트가 더 익숙해졌다. 특정한 형태에 갇히지 않고 형태를 다양한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매력.
그렇게 쓰인 글은 플랫폼에 발행되고 다양한 이에게 퍼진다. 조회수가 적게 나오는 순간도, 조회수가 평소보다 많이 나오는 글 모두가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해본 적이 있다. 많은 수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무척 떨렸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며칠 전부터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고민도 많이 했고,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며 부디 무사히 연설이 끝나기를 바랐었다.
그때 모였던 인원이 대략 20여 명 정도였던 거 같은데, 나를 둘러싼 채 안광을 뽐내던 그들의 눈빛을 감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딱히 내게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처음의 미약한 떨림이 결국 눈에 띌 정도의 손떨림으로 변해있었다. 떨리는 손을 진정하려 두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지만 결국엔 두 손이 다 떨리더니 오한 증상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머리는 하얘졌고,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지나 마무리 인사로 "감사합니다."를 토해내고는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했었다.
글을 써서 발행하고 나면, 발표 당시의 떨게 만들었던 인원수를 훌쩍 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서 덜 떨리는 걸 수도 있겠지만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가끔은 "에라 모르겠다!"하고 글을 내던지고 도망칠 때도 있다. 어떻게 꾸역꾸역 쓰긴 했는데 막상 발행하려니 한 없이 부끄러워 져서였던 거 같다. 그렇다고 새로 쓸 자신은 없고.
그렇게 올린 글을 읽게 될 독자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올렸다. 부끄러운 모습조차도 기록이 되고, 연습이 되고, 생의 한 장면으로 남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책과 달리 온라인에 올린 글은 [수정]도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부끄러웠던 부분을 몰래 교정해 버릴 수도 있다. 간단하게는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바꾸고, 일이 커졌을 때는 문장을 재수정하거나 아예 삭제해 버리고 싶어 진다.
처음에는 그렇게 하는 게 예의라 생각해서 뒤늦게라도 바꿨다.
전에 썼던 글을 읽다 보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왜 그렇게 많이 보이는지. 그런 감정이 쌓이다 보면 어느새 손은 [삭제] 버튼으로 향해 있다.
'하지 마. 쌓았던 기록을 함부로 없애지 마.'
내가 쓴 글이니까 내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려나? 언제든 내 소유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다 생각한 안일함일지도 모르겠다.
삭제 버튼으로 향했던 커서를 치우고 노트북을 닫았다.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쉽게 발행한 글이 있다면, 대가는 스스로 감내할 필요가 있겠지.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씩이라도 진중한 마음으로 글을 써보는 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글도 시간이 지나 미래의 내가 읽게 되는 순간이 올 거라 생각한다. 미래의 난, 현재의 날 보며 무슨 기분이 들까?
미래의 나에겐 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어."
어쩌면 영향력을 끼치는 가장 작은 단위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함 아닐까?
돌고 돌아 결국 나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