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걸음
8살. 초등학교 1학년의 삶도 쉽지 않아.
집에선 내가 제일 막내야. 나보다 두 살 많은 형은 착해.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말을 안 듣는 거 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로블록스. 하고 싶은 게임 같이 해주기로 약속했으면서 또.. 또! 약속을 어겼어.
"형! 해준다고 했잖아! 또 거짓말이야?"
"아~니이.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그렇지. 내가 뭐. 너가 해달라고 하면 꼭 해줘야 해?"
"어! 해준다고 했으니까‼️"
알고 있다. 형은 나랑 하는 게임을 유치하게 생각하는구나. 그래도 한번 발동한 오기를 여기서 꺾을 순 없지. 결국 고집을 부리다 보면 내 말을 따라줄 거야.
"안 해!"
"뭐?"
이 형이 왜 이러지? 이 정도 하면 보통은 내 말을 들어줬었는데..
"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해달라고"
"저리갓!"
"악!"
뭐야 날 쳤어? 네가? 감히??
게임이고 뭐고 넌 오늘 내 손에 죽었다.
"둘이 싸울 거면 게임하지 마‼"
아빠는 맨날 형 편이다. 거짓말 아니고 진짜 오늘은 같이 해준다고 약속해 놓고선. 게다가 먼저 맞은 건 난데. 왜 형만 감싸고 도는거야.
"빨리 말 안 해? 형 왜 때렸어?"
"아니.. 형이 먼저 거짓말했다니까."
아 뭐야.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닌데.. 왜 꼬여서 나오는 거야. 짜증 나.
"빨리 형한테 사과해."
"..."
"싫어?"
"네.. 형.. 미안해."
"나도 미안해."
눈도 안 쳐다보네? 휴.. 일단 아빠 맘부터 진정시켜 놓고 보자. 두고 보자고.
"같이 게임할래?"
"응? 좋아!"
헤헤.. 어라? 이렇게 쉽게 용서해도 되나?
"뭐 할 건데? 뭐해줄 건데?"
에이 몰라. 형은 역시 사랑이야.
아침부터 엄마, 아빠는 또 바쁘다. 청소 간다고 하는데, 따라가면 귀찮은데.. 어쩌지.
"형 따라갈 거야?"
"그냥 집에 있을래?"
"안돼!"
귀도 밝지. 언제 들었는지 엄마가 단호하게 말한다.
"아니. 그냥 집에서 게임하고 있으면 안 돼요?"
"게임을 너무 오래 해서 안 되겠어. 같이 가자."
"아.. 그냥 있고 싶은데. 혼자 있을게요. 동생만 데려가세요."
"형! 같이 가야지."
엄마도 힘들겠지. 그래 같이 가자. 가서 TV라도 보지 뭐.
역시나 예상대로 청소하느라 두 분은 바쁘시네.
"뭐 볼까?"
"음 나 보고 싶은 거 있는데."
"싫어! 나 탑블레이드 볼래."
"야! 난 그거 재미없어. 엄마~ 아니 아빠! 또 탑블레이드 본대요. 나 저거 싫은데 맨날 저래요."
아.. 형은 왜 맨날 이르는 거야. 보나 마나 아빠가 또 한 소리 하겠네.
"그럼 막내가 탑블레이드 볼 동안 유튜브라도 볼래?"
"네! 좋아요!"
"아빠‼️ 불공평해. 내 건? 난 뭐 해?"
"탑블레이드 보면 되잖아. 그치?"
"싫엇! 패드 가져왔어?"
"아니. 네가 오늘 안 한다고 했잖아."
"아 뭐야!!!!!!!"
"어디서 버릇없게‼️"
형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핸드폰 만지작 거리고 있네? 저게 더 꼴 보기 싫어.
"아니. 형도 그거 하지 마라고!"
"형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망했다.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는데.. 아무도 내 편이 없다. 대체 엄마는 어딜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 이놈의 집구석. 나가주마.
"흐에에에에엥.."
8살의 표현력 한계인가. 설명은 안 나오고 왈칵 울음부터 쏟아졌다. 이래서야 내 기분을 제대로 이해해 주려나?
"으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악!"
"소리 지르지 마라."
"흥! 흐아아아아앙!"
딸칵-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너무 뜨겁네. 뜨겁다 뜨거워. 그렇다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괘씸하고 억울하다. 왜 다 나만 갖고 그래? 서럽고 서럽다. 처음엔 그냥 보여주려고 나온 건데 울음이 차올라버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앙.."
엄마가 나타났다. 이제 울고 있는 날 봤으니 챙겨주겠구나.
"흐아아아아아아앙. (엄마. 나 좀 봐줘.)"
???
엄마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집안으로 쏠랑 들어가 버렸다. 뭐야? 내가 이렇게 우는데 날 투명인간 취급해?
힘든 하루가 될 거 같네. 진짜 서럽다. 방학도 싫고, 형도 싫고, 엄마아빠도 싫어.
"휴.. 왜 저럴까?"
"당신 닮아서 그렇지 뭐."
"아니거든? 나 어릴 때 저렇게 유별난 행동 한 적이 없어."
"몰라. 더운데 안에 데리고 들어올까?"
"성격 몰라? 풀리기 전엔 절대로 안 들어올걸? 그냥 냅둬."
"에효.. 덥잖아. 땀 뻘뻘 흘리고 있는 거 안 보여?"
"좀 이따 들어오면 음료수 챙겨줘야지."
막내는 알까.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나의 시선을. 눈의 시선은 애써 너를 무시하는 듯해도, 마음의 시선은 늘 네게 향해 있다는 거.
어째서 8살밖에 안된 네 마음도 이렇게 헤아리지 못할까?
5배 정도는 더 살았건만, 어째서 매번 이렇게 충돌할까?
울다가 지쳤는지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문을 열고 나가자 화들짝 놀란 고양이 같은 시선으로 날 쳐다보더니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렸다. 아무래도 너무 늦게 관심을 가져줘서려나.
다시 문을 닫자,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원래 앉아 있던 의자에 다시 앉았다.
딸칵-
문을 여니 다시 또 몇 걸음 멀어지기를 반복. 그렇게 우리 사이의 간극은 쉬이 좁혀지질 않았다.
얼마나 흘렀지? 10분? 이 정도면 이제 기분이 풀릴 법도 한데. 누굴 닮아 이리도 고집이 센지.
그래도 어쩌겠어. 부모가 먼저 다가가야지. 진작 그랬어야 하는데 나도 괜한 자존심을 부린 거 같네. 미안하다.
딸칵-
다시 또 째려보는 눈빛이 느껴졌다. 그래도 이번엔 꼭 네게 다가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