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일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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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처음 상품을 올리는 과정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먼저 앤디가 만들어준 상세페이지용 이미지는 템플릿으로 미리 지정해 놓았다. 구매대행을 이용하며 생길 수 있는 주의사항과 안내사항을 잘 정리해 준 덕분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문제는 상품 이미지를 어떻게 가져오느냐였는데 함부로 국내 쇼핑몰에 있는 이미지를 가져올 수는 없다. 자칫 하다간 법적인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끙끙 머리를 싸매다 앤디에게 물어봤다.


[앤디. 보내준 상세 이미지 너무 고마워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세세하게 써놔 줘서 읽으면서 놀랐어요. 저 상품 올릴 걸 찾았는데 이미지를 어떻게 가져오면 좋을지 고민이 되네요. 그냥 프로그램 같은 거 깔고 다운 받아서 써도 될까요? 그리고 다른 나라 말로 되어 있는 것도 맘에 걸리는데 이미지 문구도 번역을 해야 할까요?]


잠시 기다리며 다른 구매대행 쇼핑몰을 구경해 봤다.


“음.. 그냥 퍼왔네? 상관없는 건가..”


심지어 어떤 상품은 따로 번역 없이 원문 그대로 이미지가 노출되기도 했다.


“무성의해 보이는데 이게 팔릴까?”


다른 건 몰라도 이미지에 쓰여 있는 언어만큼은 한글로 번역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이요 제프. 상세 이미지는 저도 예전에 만들어서 쓰던 거라 크게 손 본 건 없어요. 요즘 바뀐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변할 건 없을 거 같아요. 이미지는 프로그램 이용해서 다운해도 되고요. 아니면 브라우저 뭐 쓰세요? 브라우저에 플러그인 형태로 되어 있는 거 깔아서 쓰면 더 편할 거예요. 그리고 이미지 번역은 할 여력이 된다면 하는 게 좋다고는 생각하는데 굳이 처음부터 거기에 너무 많이 힘쓸 필요는 없으실 거 같아요. 나중에 잘 팔리면 그때 가서 번역해도 되지 않을까요?]

[고마워요. 이미지 번역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괜히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어요. 이미지 번역은 외주로 맡겼었어요?]

[아니요. 이미지 번역도 셀프로 했죠 ㅎㅎ 모든 게 비용이니까요. 생각보다 별거 아니에요 막상 해보면. 아니면 다소 어색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웨일 브라우저 사용하면 거기서 이미지 번역 한글로 가능하니까 그거 이용해 보셔도 좋고요. 근데 번역 품질이 완벽하진 않아서 많이 어색할 거예요.]

[너무 고마워요. 잘 자고 제가 다음에 커피 살게요. 더 좋은 거 사주고 싶은데 앤디가 너무 바쁘니.]

[ㅎㅎ 괜찮아요. 좋은 밤 보내세요.]


앤디의 문자에 힘을 얻고 소싱에 박차를 가한다.



처음 타깃으로 삼은 상품은 바로 [피규어]다. 해외 쇼핑몰을 뒤져 보니 엄청 많은 수의 피규어를 팔고 있었다. 정품 여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팔고 있었다. 번역을 돌려 보니 대부분 정품으로 분류되어 있기는 했다.


‘올려봐도 괜찮겠지? 고민만 하다가는 평생 아무것도 팔아보지 못할 거야.’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이미지를 다운로드하고 지희스토어에 첫 상품을 등록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겐 역사적인 순간이다. [상품이 등록되었습니다.]라는 화면에 뜬 팝업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등록되었음을 보여준다. 때마침 희수를 재운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지은아! 지은아!”

“쉿. 방금 잠들었어. 왜?”


어깨를 으쓱하며 화면을 가리킨다.


“응? 어? 상품 올린 거야?”

“하나 올렸어. 이제 이런 식으로 하루에 10개 이상은 올리려고.”


아내는 신기한 듯 마우스로 지희스토어를 띄우고 올라가 있는 상품을 확인해 본다.


“근데 이거 팔릴까? 별로인 거 같은데..”

“별로야? 그냥 일단 피규어 종류로 한 번 쭉 올려보려고. 딱히 생각나는 상품군이 없기도 해서.”


문득 예전 회사에 일하던 수많은 MD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오며 가며 가벼운 인사만 주고받고 그들이 하는 일에 크게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는데. ‘그때 내 성격이 조금만 친화적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아쉬워졌다.


“잘했어. 뭐 계속 해보다 보면 늘겠지. 난 피곤해서 먼저 잘게. 언제 자려고?”

“조금만 더하다가 잘게. 고생 많았어. 잘 자.”


잠자러 들어간 아내를 뒤로하고 열심히 올릴 상품을 검색한다.



그 뒤로도 상품을 꾸준히 하루에 15개씩 올렸다. 처음에는 30개는 올려야지라며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반복작업은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 솔직히 10개 올리는 것도 많이 버거웠다. 그래도 15개 정도는 올려야 어느 정도 성과가 생기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살짝 무리하기로 했다. 어느덧 상품을 올린 지도 2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여전히 판매는 0건. 흔들리지 않고 계속하던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날마다 들어오는 사용자 유입수는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1개라도 팔렸으면 좋겠는데.. 피규어 말고 다른 걸 올렸어야 하나.’


상품을 잘못 선택한 느낌이 든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 진동소리.


[지희스토어 - 신규주문 1건..]


‘주문이 들어왔다!!!!!’


믿을 수 없어서 한참 동안 핸드폰에 뜬 메시지를 쳐다만 봤다. 떨리는 마음으로 푸시 메시지를 눌러 관리자 페이지로 접속했다. 화면의 신규주문 라인에 1이라는 숫자가 또렷이 보였다. 진짜 주문이 들어왔다.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고작 주문 1건이었지만 생애 처음으로 혼자서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나도 할 수 있어. 할 수 있구나.’


정확히 어떤 제품 주문이 들어왔는지 상세 내역을 살펴보고 해외 사이트로 접속해 물건을 찾아서 주문했다.


‘이 뒤엔 뭘 해야 하더라..’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상품을 배송대행지로 보내면 배송대행지에서 상품 검수 후 수수료 청구를 한다. 수수료 계산 후 한국에 있는 고객 주소로 배송이 진행된 후 구매결정을 하면 그걸로 일이 마무리된다. 아직 모든 과정이 다 끝난 게 아닌 시작일 뿐이니 정신 차리고 잘 해내자. 그리고 아내와 앤디가 생각났다.


[지은아. 신규주문 들어왔어!!]

[앤디! 고마워요. 첫 주문 들어왔어요 ㅠㅠ]


들뜨지 말자고 생각한 것과 반대로 머릿속에선 이미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됐다.


[축하해요 제프. 드디어!!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파이팅 하세요 ㅎㅎ 아참 그리고 상품 주문 들어오고 나면 배송상태 변경 미리 잘해놓으세요. 안 그러면 페널티 받을 수 있어요.]

[아.. 거기까진 생각 못했는데 페널티가 있군요. 잘 찾아서 내용 확인해 볼게요.]

[네네. 페널티 관리 잘해야 해요. 벌점이 많이 쌓이면 상품 판매 못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구매대행은 게다가 받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고객 중에서는 국내 배송처럼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어서 이런 문의 들어오는 게 있다면 잘 얘기해 주시고요 ㅎㅎ]

[꿀팁 감사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역시 대단해요 앤디 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아직 많다. 팔리기만 하면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해야 될 게 더 많았구나.


[오빠 축하해 :) 이따 집에서 봐.]

[ㅎㅎ 응 힘내고 조심해서 와.]


빨리 판매량을 늘려 가장의 역할이 하고 싶다. 부푼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피규어 판매는 그 후로도 간간히 발생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만큼 많이 팔리진 않아 이렇게 해서는 주업으로 삼을 수 없다. 한 달이 지나자 판매건수와 판매량을 기준으로 스토어의 등급이 산정되었다. 하지만 최하 등급을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판매량을 최소 3배는 끌어올려야 한다. 판매건수와 판매량 기준치에 모두 미달이다. 이번달 판매건수는 15건. 그래도 자신감은 조금 생겼다. 판매금액은 48만 원.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순수익은 8만 원 정도인 거 같다.


‘한 끼 외식비 정도 벌었네..’


첫 판매했을 때의 감사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얼마 벌지 못했다는 생각에 입맛이 쓰다. 하루 15개 상품 올리는 데 들어가는 시간은 2시간에서 3시간 정도는 쓰고 있으니 시급으로 얼마나 되는 걸까. 8만 원을 한 달 기준 90시간 잡고 나눠보니 약 888원이 나왔다.


‘시급 888원.. 하.’


최저 시급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초라하다. 차라리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까? 아무리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진정이 안된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잠시 한숨을 내쉬고 아내에게 전후사정을 털어놨다. 아내가 당연히 그만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얘기를 건넨다.


“그게 어디야. 지금 처음으로 해보는 건데 수익이 난 거잖아. 그렇지?”

“그건 그렇지..”

“그래도 마음먹었으면 최소 1년은 해봐야 되는 거 아니야? 어디 회사를 가도 1년은 지나야 퇴직금도 받고 경력으로라도 써먹을 수 있잖아. 고작 한 달 해보고 접을 거면 지금 접는 게 맞고.”


아내의 말이 맞다. 순간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그러게. 내가 초심을 잃었네..”

“억지로 하라는 말이 아니야. 오빠가 해보겠다고 한 일이잖아. 만약에 정말 아니다 싶으면 빨리 그만두고 다른 일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잘 생각하고 결정해 봐.”

“고마워 지은아.”


그렇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다 보니 자꾸 본질을 놓친다. 앞으로 평생 해야 할 일일 수도 있는데 너무 쉽고 당연하게 돈이 벌릴 거라고 생각했다는 게 우스웠다. 개발자로서 돈 벌던 시절은 이미 끝났다. 그때처럼 벌 수 있으려면 다시 바닥부터 굴러야 해. 느슨해진 마음을 붙잡아야 한다. 화장실로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이미 중년의 아저씨. 자꾸 과거의 나를 떠올리려 하지 말자. 지금은 지금의 내 모습에 충실할 때니까. 지금의 내 일터는 집 그리고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 오히려 좋지 않은가? 컴퓨터만 활용해서 돈도 벌 수 있는 세상이니. 컴퓨터가 없었다면. 인터넷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이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잊어버렸던 감사한 마음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시 상품을 올리자!’


자리에 앉아 습관적으로 메일함부터 들어가 본다. 메일의 제목을 훑어가며 스팸 메일을 지우던 차에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제목을 읽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며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메일을 클릭해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내가 큰 실수를 한 건가..’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겨우 움직여 메일을 클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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