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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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프리맨

[KC인증 소명접수 안내]


귀사의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상품 중 KC인증 민원이 접수되어 안내드립니다.

이에 해당 판매 상품이 인증을 받았음을 증빙하거나 인증이 필요 없는 상품임을 증빙하는 자료를 제출하시어 소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메일의 내용을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법원이라도 가게 되는 걸까..’


메일 내용만으로는 정확하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불안함 마음에 앤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프. 어쩐 일이에요?”

“앤디 안녕하세요. 미안하지만 한 5분 정도만 시간 내줄 수 있을까요?”

“급한 일이죠? 음.. 제가 30분 뒤에 전화해도 될까요? 지금 급하게 처리하던 게 있어서.”

“네네.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그럼 이따 할게요.”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싶어 검색을 시작한다. 여기저기 카페도 들어가 보고 가입되어 있던 오픈채팅방에도 물어봤다. 대부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는 반응이었다.


[일단 상품을 내려야 합니다. 삭제를 하고 삭제했다는 증거를 캡처 형태로라도 남겨놔 주세요.]


비슷한 조언이 많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전화가 왔다.


“제프. 무슨 일이에요.”

“그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앤디가 메일 내용도 보내달라고 해서 캡처 후 전송했다.


“음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거 같아요. 이런 메일은 보통 경고성이거든요. 올려놓은 상품은 빨리 삭제하긴 해야 할 거 같아요. 라이선스 문제가 커져서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알겠어요. 지우기만 하면 괜찮을까요?”

“상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보통 삭제하면 괜찮을 거예요. 많이 놀라셨겠네요.”

“앤디말 들으니 갑자기 안심이 되네요. 메일 보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구매대행이 좀 그래요. 첨에 대충 하다가 이것저것 법적인 것도 많이 공부하게 되고.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죠.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본질은 그렇지 않거든요. 안 해 본 사람들이 쉽게 얘기할 뿐이에요.”

“맞아요. 예전에 저도 그랬잖아요. 날마다 소싱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아. 미안해요 시간 너무 뺏었네요.”

“괜찮아요. 그래도 생각보다 큰 일은 아니었네요 하하. 다음 주 정도에 시간이 괜찮을 거 같은데 한 번 보실래요?”

“네 저야 좋죠.”

“그럼 제가 문자로 비는 시간 몇 개 보내드릴게요. 시간 맞는 날 있으면 얘기 주세요. 이번엔 제가 제프 있는 쪽으로 갈게요.”

“아휴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남는 게 시간인데요.”

“일단 그러면 한 번 보고 얘기 주세요. 파이팅이요.”

“앤디도요.”


앤디와 전화를 끝마치자 마음이 편해졌다. 별거 아닌 증상도 의사의 말을 듣고 나면 개운해지는 느낌이다.


‘그나저나 구매대행만 할 수는 없는데..’


들어가는 노력대비해서 성과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자체가 엄청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단순 노동처럼 들어가는 시간 자체가 많았다. 그리고 오늘처럼 이런 메일을 계속 받는다면 제명에 못 살 거 같은 느낌도 든다. 아무래도 내 그릇이 너무 적은 게 아닐까 싶다. 일단 문제가 생긴 상품을 삭제했다.



오늘은 장모님 생신이 있어서 오랜만에 가족 모임이다. 건강이 악화되고 나서는 장인 장모님을 볼 면목이 없어졌다. 뭔가 제대로 된 일이라도 빨리 해야 할 텐데.


“오빠 뭐 해. 빨리 가자.”

“어어. 잠시만 배가 아파서.”


아내의 재촉 소리. 그래도 희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마도 희수와 시간 보내는 걸 더 좋아하실 테니. 최대한 관심을 희수에게 돌리도록 하자.


“오늘 엄마 생일이라서 근처 한정식 집 예약했는데 괜찮아?”

“응 좋지. 매번 장모님 생신 때마다 직접 음식 다 만드셨었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맨날 하지 말래도 집에서 먹는 게 좋다면서. 날이 날인만큼 오늘은 사 먹자고 했어. 자꾸 거절하길래 오빠 몸도 안 좋고 해서 집에 오래 못 있을 거 같다고 하고 밥만 먹자고 했어.”

“난 뭐 괜찮은데..”


생각지도 않았는데 불편해하는 내 기색을 알아챘나 보다. 그런 아내가 기특해서 슬쩍 손을 잡았다.


“왜 이래 징그럽게! 하던 대로 하세요?”

“뭘 화까지 내고 그래..”


한정식 집은 서울 외곽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는데 정원도 있고 상당히 넓었다. 하지만 그 넓은 주차장에 차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다.


“와.. 사람 엄청 많네.”

“주말이잖아. 그리고 여기 유명한 음식점이야.”

“부럽다. 돈을 얼마나 쓸어 담는 거야?”


팔자 좋은 사람이 참 많구나. 주차장엔 외제차도 꽤나 많았다. 대충 살펴봐도 절반 이상이 외제차인 거 같다. 나만 빼고 다 부자인 거 같아 갑자기 기분이 우울해진다. 더 슬픈 건 계속해서 회사를 다녔다고 해도 어차피 저런 차는 내 삶에서 만나볼 일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차야 뭐 굴러가면 되는 거지..’


여우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이 순간 난 여우가 되어 있었다. 먹어보지도 못한 포도를 보며 쓴 입맛만 다셨다.


“오랜만일세 김서방. 건강은 어떤가?”

“안녕하세요 아버님. 재활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어쩌다..”


말끝을 흐리는 장인어른의 눈길을 황급히 피하며 장모님께도 인사를 드린다.


“어머님. 생신 축하드려요.”

“고맙네. 이렇게 좋은 데도 데려와주고. 그냥 집에서 먹자니까..”

“엄마는 또 왜 그래. 그냥 이럴 땐 편하게 먹어. 이런 것도 먹어보고 해야지.”

“알겠어. 근데 여기 얼마나 하니? 비쌀 거 같은데.”

“그건 걱정 말고. 맨날 사 먹는 것도 아니잖아.”


신경을 안 쓰고 싶었지만 얼마나 나올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4인분이면 얼마나 나올까? 인당 한 3만 원 잡으면 될까. 아님 5만 원?’


순간 째려보는 아내의 시선이 느껴져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예상대로 장모님은 희수에게 정신이 팔리셨다. 장인어른은 보고 지낸 지도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몇 마디 대화를 끝으로 침묵을 유지하신다. 뭔가 어색함을 풀기 위해 대화를 던지고 싶지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김서방. 요즘 그거 뭐야. 인터넷에서 뭐 판다며? 그건 좀 어때?”

“열심히 해보고 있어요. 아직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크게 벌지는 못해요.”

“그런 거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되긴 할까? 다른 것도 좀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시선은 희수에게 가 있지만 질문의 타깃은 나다. 장모님이 계속 정곡을 찌른다.


“엄마. 아직 오빠 몸도 다 회복 못했어.”

“알지.. 그래도 아직 젊은 사람인데. 계속 집에만 있을 수 없지 않니.”

“아냐. 오빠 하려고 하는 거 많아. 아직 몸이 좀 그래서 그런데. 재활하면서 계속 이것저것 하려고 해.”

“그래? 알았어.”


아내의 도움으로 겨우 질문 지옥에서 빠져나왔다. 음식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한다. 나름 넓다고 생각한 테이블이 반찬으로 빼곡히 채워져 간다. 오늘의 메인은 보리굴비다.


“저 혹시 이거 이유식 좀 데워주실 수 있을까요?”


아내가 준비해 온 희수용 이유식을 데워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한다. 직원은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군침돌게 하는 음식이 눈앞에 펼쳐졌지만 아내는 희수부터 신경 쓰이나 보다. 역시 엄마는 대단하구나.


“김서방 어서 먹게.”

“네 아버님도 많이 드세요.”


정신없이 먹다 보니 배가 찼다. 그제야 아내는 음식을 먹는다.


“오빠. 희수 이유식 좀만 더 먹여줄래?”

“응. 알겠어.”

“그리고 뭔가 기저귀도 갈아야 할 때가 되었는데 한 번 봐줄 수 있을까?”

“알겠어. 갔다 올게.”


희수를 안고 화장실에 갔다. 다행히 식당에 아이 손님도 많이 와서인가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침대도 준비되어 있었다. 버둥거리는 희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세상 아무 걱정 없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고 있다.


“아빠가 잘할게.”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그런 날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 때문에 꼭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와 배부르다.”

“잘 먹었어? 더 먹어 지은아. 엄마가 희수 봐줄게. 할미랑 나가볼까 우리 희수?”

“왜 엄마도 더 먹지. 오늘 엄마 생일인데.”

“아니야. 많이 먹었어. 요즘 살도 쪄서 또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돼.”


아버님은 이미 자리를 비우셨다. 아무래도 근처 산책을 나가신 듯하다.


“아버님은 나가셨어?”

“응 주변 돌아보신다고.”

“많이 먹었어?”

“조금 더 먹으려고. 맛있네 오랜만에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진 거 먹으니까.”


오랜만에 보는 아내의 웃음. 결혼 전에는 참 많이 보던 모습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희수가 태어나면서부터 싸움도 많이 했던 거 같다. 희수 탓은 아닌데 이것저것 현실적으로 생기는 문제가 우리 사이의 웃음도 많이 가져가 버렸다.


“지은아. 많이 먹어. 내가 나중에 더 많이 사줄게.”


밥 먹다 뜬금없는 소리에 아내가 찡그린 표정으로 쳐다본다.


“오늘 자꾸 왜 이래? 아주 느끼해 죽겠네. 밥 좀 먹게 가만 좀 놔둬.”

“오랜만에 웃는 모습 보니까 좋아서 그렇지.”

“아휴 아저씨. 그만하세요? 알았으니까.”


음식을 마저 먹고 계산을 끝마쳤다. 얼마나 나왔을까 싶어 어깨너머로 쳐다봤다.


‘이.. 이십 이만 원?’


생각보다 많이 비싸구나. 구매대행으로 밥 먹은 돈을 벌려면 얼마나 팔아야 할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오빠.. 돈 좀 썼어. 미안. 근데 엄마한테 맛있는 거 꼭 한 번 사고 싶었어서. 워낙 집에서만 먹으려고 하니까.”

“괜찮아. 알지. 장모님 절대 나가서 안 사드시려고 하는 거. 그래도 꽤 비싸긴 하다.”

“그래도 엄마 덕도 많이 봤잖아. 희수도 봐주고.”

“알겠어.”


그래 까짓 거. 내가 더 벌면 되잖아. 마음속에서의 외침과 다르게 머리는 쓴 비용에 대해서만 계속 생각난다. 거기에 추가로 용돈까지 드려야 하면 오늘 지출은 상당하다. 어쩌겠는가 부자가 아닌 이상 속물일 수밖에. 아내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아깝긴 하다. 조금 더 가성비 좋은 식당을 갔으면 좋았을 텐데.


“오늘 잘 먹었네 김서방.”

“아니에요 어머님. 담에는 더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됐어 이 사람아. 그리고 이거 보태서 좀 써.”

“네? 아.. 아니에요! 어머님.”

“그냥 받아둬.”

“아..”

“엄마. 뭐야. 우리 괜찮아.”

“알아. 근데 병원비도 그렇고 이것저것 많이 썼을 거 아니야. 그냥 조금 준비한 거니까.”


장모님의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아내의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마도 내가 다치고 나서부터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까지 폭발한 건 아니었을까? 속물처럼 오늘 쓴 돈만 생각했던 내가 너무나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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