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하긴 한데.. 먹고는 살아야 하니..

15

by 고성프리맨

“오.. 오빠..”


“지은아! 괜찮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뭔가 쾅하고 부딪쳤던 거 같은데.. 아야.”


“어.. 어디 아파? 괜찮으니까 지금은 그냥 푹 쉬어.”


“골반이 삔 것처럼 엄청 아프네. 머리도 지끈 거리고. 교통사고 난 거지?”


“맞아. 그래도 정말 천만다행이야. 진짜 기적처럼 살은 거래. 살아줘서 고마워.”




울지 않으려 했는데 아픈 아내의 모습을 보니 눈물이 흐른다.




“울지 마 오빠. 미안해. 내가 좀 더 안전에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니야. 가해자가 술 마시고 운전해서 그래. 그건 어떤 누구였어도 피하기 힘든 사고였어.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


“하아.. 그렇구나. 혹시 내 휴대폰 못 봤어?”




아내는 두리번거리며 휴대폰을 찾는다.




“어디 전화하게? 어머님한테는 내가 연락드렸는데.”


“아 엄마.. 참 희수는?”


“대신 봐주고 있으셔..”


“다행이네. 나 전화해야 하는데 회사에.”




아내가 출장 중에 사고당했다는 걸 깜빡했다. 아마도 회사에서 연락이 왔었을 텐데.




“기다려 봐. 내가 물어보고 올게.”


“알겠어.”




때마침 들어온 간호사가 있어 다가가 물어본다.




“저기 혹시. 환자 휴대폰은 어디 가서 찾으면 될까요?”


“어? 아.. 환자 캐비닛에 소지품 보관되어 있는데 혹시 열쇠 못 받으셨을까요?”


“네 아직.”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지금 환자분들 체크해야 해서. 끝마치고 갖다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간호사와의 대화를 들은 아내는 한숨을 크게 내쉰다.




“큰일이다.”


“회사 때문에?”


“응.. 요즘 엄청 바쁘거든. 그래서 나도 출장을 나온 거였는데.. 치료받는 동안 쉰다고 얘기해야 하니.”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움직이기도 힘든데..”


“휴.. 일단 통화해 봐야지 뭐. 나 병원에는 얼마나 있어야 한대?”




아직 의사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보험사 직원만 만나봤는데 그래도 일반 병실로 옮겨온 거 보면 오래 있지 않아도 될 거 같은데. 의사가 오면 들어봐야 할 듯해. 좀 이따 간호사 오면 물어볼게.”


“알겠어. 이러다 나까지 일 그만두게 되면 어떡해..”




아픈 와중에도 아내는 생계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의 모습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게 무능한 내 탓은 아닐까?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리 잡아야 하는데 게으른 탓에 너무 느긋하게 있었다. 하아.. 근데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 거지? 도무지 방법을 모르겠다. 그래도 찾아내야 하는데.




“그냥 해본 소리야. 복직하고 나서 만난 팀장은 나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거 같고. 맨날 틱틱댔는데. 걱정이야.”


“팀장이 뭐라고 해?”


“좀 그렇긴 해. 아마 내가 일하는 게 못 마땅해서겠지 뭐. 근데 나도 오랜만에 복직이라 적응이 잘 안 돼서. 새로운 파트에서 일하려니 힘들어.”


“갑자기 미안하네.”


“아니야. 이제 미안하단 소리 좀 그만해. 내가 다쳐보니까 오빠 마음이 이해가 가는 거 있지.. 그때 너무 모질게 굴어서 내가 더 미안해.”




어쩌다 보니 부부가 다 사고를 당했다. 아무리 불행이 한꺼번에 몰아서 온다고 해도 이렇게 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한편으로는 아내가 크게 다치지 않고 살아줘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지은이가 잘못되었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을 거 같다.




“살아줘서 고마워. 난 당신하고 희수만 있으면 돼. 어떻게든 내가 우리 가족 먹여 살릴 거야.”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쳐다봤다. 삶은 우리 부부에게 시련을 주었지만 그 시련 덕분에 냉랭했던 관계가 다시 끈끈해짐을 느꼈다. 어쩌면 불행은 또 다른 기회가 아닐까? 행운이나 불행에 대한 정의도 사실 바라보는 입장에서 보고 싶은 대로 판단할 뿐이다.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건 내가 그렇게 바라볼 뿐이다. 앞으로 불행을 행운으로 바꾸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살면서 내게 1순위는 뭐였을까? 얼마 전까지는 회사라고 착각했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착각하도록 교육받았다. 회사를 벗어나면 무능한 인간이 된다는 생각이 못 박혀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정말로 회사를 못 다니게 되자 거짓말처럼 무기력해졌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순간들. 이제는 변해야 한다. 우리 가족, 그리고 나를 위해. 스스로 증명하고 싶다. 다친 아내 곁에서 그렇게 강한 동기 부여를 받았다.







“아내분은 3주 정도는 병원에 있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병원이 집에서 거리가 좀 멀어서 그런데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요?”


“가능은 합니다. 어떻게 진행해 드릴까요?”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단 옮기고 싶으신 병원에 자리가 있어야 할 테니 연락 취하고 알려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몇 가지 신청서 작성이 있을 수 있으니 절차대로 따라주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잠시 기다렸다 전원 신청서를 작성하고 병실로 돌아왔다.




“뭐래?”


“병원에 3주 정도는 입원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하는데.”


“입원 치료해야 한대?”


“바로 걷기는 힘들 테니 그래도 치료를 좀 받아야 할 거 같아.”


“병원 옮기는 건?”


“응 신청서 작성은 했는데. 일단 동네 근처 병원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야 해서. 정해지면 알려준다고 했어.”


“그렇구나. 엄마한테도 미안한데.”


“그러게.. 일단 가기 전까진 어머님이 봐주신다고 하시니.”




어딘가 아내의 표정이 어둡다. 아파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혹시 어디 아파? 안색이 안 좋은데.”


“그게..”




회사와 통화를 했더니 팀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첨부터 화를 낸 건 아니지만 병원에서 1-2주 정도 있지 않을까를 조심스럽게 말하는 순간부터 심하게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람이 아프다는데 휴..’




팔이 안으로 굽어서일 수도 있지만 아픈 사람에게 모질게 말하는 팀장이라는 인간의 인성도 좋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좀 그렇긴 한데. 계속 화만 낸 건 아니고. 첨엔 걱정하긴 했어.”


“그거야 그냥 형식적으로 예의 상 한 말이잖아.”


“모르지. 조금이라도 출근을 앞당겨야 하나..”


“교통사고 후유증이 어떻게 올지 모르니까. 일단 치료받을 수 있는 만큼 받자. 그리고 가해자가 명확하니까 이런 거 저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가해자는 어떻대?”


“아직 의식불명이래.”




대화 중에 보험사 직원이 나타났다. 아내는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저 선생님. 가해자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오빠 누구?”


“아.. 보험사 직원 분이셔.”


“아..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잠시 인사치레를 하고 나서 직원은 내게 면담을 요청했다.




“지은아 좀만 쉬고 있어. 얘기 좀 하고 올게.”


“응..”




보험사 직원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어쩌면 최대한 심경을 들키지 않으려 일부러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같기도.




“혹시 의사는 만나 보셨을까요?”


“네 만나봤습니다.”


“죄송하지만 진단이 어떻게 나왔을지 알 수 있을까요?”




이럴 때 바로 알려주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일단 경황이 너무 없어서.. 그리고 보시다시피 아내가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아요.”


“그래도 일반 병실로 옮길 정도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으실 거 같은데..”


“뭐라고요?”


“아.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 병원을 집 근처로 옮길 생각이에요. 여긴 너무 멀기도 하고 시설이 마음에 안 들기도 해서요.”


“그러시군요. 혹시 입원은 어느 정도 하실 예정인지 정도라도 알 수 있을까요?”


“일단 가서 진료를 해봐야 알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치료 잘 받으시고 제가 며칠 뒤에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의 명백한 과실이 인정되니 필요한 만큼 충분히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 회복도 잘되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더 있으실까요?”


“음.. 일단 병원 옮기고 필요한 치료를 받아보겠습니다.”




직원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워졌다. 본인의 생각대로 쉽게 풀리지 않음을 직감했으리라.




‘당신 의도대로 흘러가게 할 수는 없지. 그리고 내 아내의 건강이 최우선이야.’




100% 과실 탓일까. 직원은 별다른 자극적인 말 없이 자리에서 떠났다.







병실은 다음날 오전이 되어서야 옮길 수 있었다. 4인실에 겨우 한 자리가 나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의 몸 상태가 일반 자동차를 타기엔 쉽지 않아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지은아 먼저 가 있어. 차 가져온 게 있어서 같이 이동은 못 할 거 같아 미안.”


“조심히 운전해서 와. 이따 봐.”




아내가 이동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네 장모님. 잠은 잘 주무셨어요? 죄송해요. 맨날 부탁만 드려서.”


“에효 아니야. 희수는 어린이집 잘 갔어. 어떻게 지은이는 좀 상태가 어때?”


“동네 병원에 자리가 나서 지금 이동 중이에요. 여기 의사 얘기로는 3주 정도는 입원치료받는 걸 권장하더라고요.”


“크게 다친 거야?”


“아직 거동은 좀 힘든데. 심각하지는 않다고 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세밀하게 진찰을 받아보려고요.”


“알겠네. 병원은 언제 도착하는지 알아?”


“글쎄요. 일단 1시간 정도는 걸릴 거 같은데. 저도 이동 중이니 병실 알게 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병원에는 먼저 가 있을 테니 운전 조심해서 오고.”


“네 감사합니다.”




운전하며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아내도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고 가정해 봤다.




‘둘이서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장모님이 얘기하셨던 농산물 위탁판매도 해야 할 거 같고. 그 외에 또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그러다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 동료 중에 신기하게도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택했던 사람 스캇. 스캇은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었다. 회사에서도 틈만 나면 부동산 자랑을 했다. 그래서 내부에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저번에 갭투자 한 아파트가 반년 사이에 5천만 원이 올랐어요. 이 좋은 걸 왜 안 해? 2천 정도 여유자금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건데. 제프도 할 수 있어요.”




지금 가진 집 한 채도 애물단지인데 다주택자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스캇은 갭투자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름 투자했던 물건을 팔고 수익화를 실현하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는 고시텔 임대업에 도전했다. 그 얘기를 끝으로 스캇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앤디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처럼 혹시나 스캇에게도 얻어낼 수 있는 정보가 있지는 않을까?’




머릿속에 정리가 되진 않지만 꼭 전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교통체증이 시작되었다.




‘일단 운전에 집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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