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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아.. 미안해.”
“갑자기 뭐가?”
“그냥.”
“그러니까 건강이나 더 잘 챙겨. 우리 엄마 은혜 잊지 말고!”
“그럴게.”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잠깐이지만 장모님이랑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김서방. 혹시 농작물이나 즙 같은 것도 팔아볼 생각 있나?”
“농작물이요?”
“응. 생각 있으면 말해. 알겠지만 우리 동생들이 농사짓잖아. 한 번 알아보니까 그 애들도 온라인에서 어떻게 팔아보려고 하는 거 같은데 쉽지 않다더라고. 김서방 개발자였던 거 다들 아니까 혹시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얘기 꺼내봤더니 다들 좋아하더라고.”
‘농산물 위탁판매라..’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일이다. 얼핏 키워드로만 봤었는데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만 느꼈던 일. 아니 상관이 전혀 없다고 여겼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데 이참에 하겠다고 할까?
“엄마. 둘째, 셋째 삼촌 말하는 거야? 왜 온라인에서도 뭐 팔고 있대?”
“응 몰랐는데 시도 중이었더라고. 근데 잘 안되나 봐. 거기 애들도 뭐 컴퓨터도 잘 못하고 그러니까.”
“주소 알아?”
“내가 한 번 물어보고 메시지로 보내줄게. 어때 관심 있어?”
“오빠랑 한 번 얘기 나눠봐야지. 그렇지 오빠?”
“네에. 한 번 이것저것 좀 알아보고 얘기드릴게요. 하게 되면 좋은 기회일 거 같긴 해요.”
“그려. 이것저것 해봐. 그리고 지은이 이모가 맛집 운영하는 거 알지? 거기서도 슬슬 온라인 판매를 생각 중인가 보더라고. 이번에 공장도 짓는다던데.”
“와.. 그렇게 커졌어? 이모 돈 많이 벌겠네.”
“잘은 몰라. 근데 많이 벌겠지. 네 이모도 고생 많았잖니. 그래도 참 다행이야.”
생각보다 주변을 활용하면 길이 있을 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었는데. 그래도 친척과 일해야 하는 건 따져 봐야 할 게 많다. 수수료 정산 기준부터 배송, 교환/반품에 이르기까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복잡할 거 같아 머리가 아프다. 무엇보다 중요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많이 두렵다.
“오빠.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아니 그냥..”
“혹시 아까 엄마가 얘기한 농산물 판매 때문이야?”
“으.. 응.. 맞아.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어. 근데 괜히 잘못되면 어떡할까 싶어서. 친척이기도 하고.”
“아 그러게. 근데 삼촌네도 자녀들이 다 컸는데. 우리가 괜히 뺏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 같긴 해. 그건 나도 걱정되네.”
“좀 그렇지?”
“어떻게 그래도 한번 해본다고 얘기는 해볼까?”
“하아. 일도 저질러야 뭐 어떻게 수습이라도 하는 거긴 한데. 괜히 나쁘게 보일까 봐 신경 쓰인다.”
“뭐 어때. 삼촌들도 괜찮은 반응 보였다잖아. 만약 해보다가 이상하다 싶으면 접어도 되고.”
“어디 일이 그렇게 맘대로 되나. 당신은 어떻게 하면 좋겠어?”
“나? 나야 뭐 오빠 생각이 중요하지. 사실 난 잘 모르겠어. 하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뭐.”
‘속 편해서 좋겠다.’
“일단 생각 좀 정리해 볼게.”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운전에 온 신경을 집중시킨다.
—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다. 머릿속에는 장모님께 들었던 농산물 생각만 둥둥 떠다닌다.
‘일단 좀 알아보자.’
인터넷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있었다. 솔직히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만한 장단점 위주의 글이라 100%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사실 구매대행 시작할 때도 그랬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 영상을 보면 누구나 손쉽게 적은 자본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일에는 다양하나 변수가 생길뿐더러 그 사람이 해왔던 경험이나 성향과 맞물려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으니까. 그나마 내 경우는 앤디라는 지인이 있어서 약간의 도움을 받기라도 할 수 있었다. 근데 다시 또 생각해 보자 농산물 판매도 삼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 아닐까? 모르는 곳에서 하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좋은 일일 수 있다. 다만 걸리는 건 역시나 돈 문제다. 정산과정을 어떻게 해야 하고 수수료 비율은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고 쇼핑몰을 운영하면 나름의 인건비와 홍보를 하게 되면서 생기는 마케팅비가 들어갈 텐데. 이런 부분에서 설득은 가능할까? 역시나 한번 시작된 고민은 꼬리를 물고 계속 커져간다. 이대로라면 안 해야 될 이유만 계속 생길 거 같다.
‘해보자! 안되면 접으면 되잖아.’
긴 고민 끝에 일단 저질러 보기로 마음먹었다. 해보고 안 되는 걸 배우는 것도 경험이 아닐까? 어느샌가 예전보다 약간은 용감해진 느낌이 든다. 현실은 알바생 보다도 못하지만.
“지은아. 혹시 어머니한테 농산물 판매 한번 해본다고 자리 마련 부탁드려도 될까?”
“마음먹었어? 안 할 줄 알았는데.”
“뭐라도 해봐야지. 게다가 알아서 판까지 깔아주시는데. 해보고 판단하려고.”
“그래. 아무래도 그러면 삼촌댁에 한번 가봐야겠지?”
“그래야지. 너무 왕래가 없다가 갑자기 가려니까 조금 낯 간지럽긴 하다.”
“다들 먹고살기 바쁘니까 그렇지. 다 이해해 주실 거야.”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를 나누러 이동한다.
—
“송지은 씨 보호자 되십니까?”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자마자 저음의 목소리가 말을 건다.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느낌 때문에 불안하다.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관계가 어떻게 되십니까?”
“남편입니다만. 어떤 일 때문이시죠?”
“지금 주소 알려드릴 테니 메모 가능하실까요?”
“네 잠시만요.”
‘무슨 일이지? 설마 보이스 피싱?’
불안한 마음이 커져가면서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한다. 너무 크게 쿵쾅거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든다.
“네. 불러주시겠어요.”
주소지는 서울 외곽에 있는 병원이었다.
“혹시 아내가 다쳤나요?”
“네 지은님이 좀 다치셨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하아.. 근데 누구신가요? 의사는 아니신 거 같은데.”
“아 죄송합니다. 저는 보험회사 직원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하셨는데 가해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라 대리인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 명함은 따로 만나서 전해 드리겠습니다.”
“저기.. 아내는 많이 다쳤나요?”
“죄송하지만 제가 정확한 상태를 알지 못해 설명은 못 드리겠습니다. 직접 보시는 게 좋으실 거 같습니다. 그럼 좀 이따 뵙겠습니다.”
“저.. 저기.”
상대방은 차가울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전화를 끊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사고 소식 때문에 머리가 하얘진다.
“자.. 장모님께 전화를 드려야 해.”
급하게 떠오른 장모님 생각에 전화를 건다.
“김서방 어쩐 일이야?”
“어머님.. 큰일 났어요.”
“왜 그래? 무슨 일 생겼어?”
“그게.. 저도 가봐야지 알 거 같은데요. 지은이가 병원에 있다고 연락이 왔어요.”
“뭐야?”
“죄송하지만 희수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당장 병원부터 가봐야 할 거 같아서요.”
“아.. 알겠네. 이게 무슨 일이야.. 희수 걱정 말고 어서 먼저 떠나. 그리고 병원 도착해서 지은이 상태 확인하면 꼭 연락 주고.”
“네. 감사합니다.”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한다. 예상도착시간은 58분으로 뜬다.
‘지은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
진정이 되지 않는 마음으로 운전을 시작한다.
—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까 걸려왔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음이 울리다가 받는다.
“저.. 송지은 보호자입니다. 방금 병원 도착했어요.”
“아. 3층 303호로 올라오시면 됩니다. 다행히 지은님은 일반 병실로 옮긴 상태입니다.”
“깨어났나요? 빨리 갈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전후상황을 알아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일단 멀쩡한 아내의 모습을 꼭 확인해야겠다.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였지만 숨이 금방 차오른다. 계단 말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할걸. 303호에 도착했을 땐 정장을 입은 40대 후반 정도로 느껴지는 남성이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네 맞습니다. 일단 아내부터 좀 봐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병실에 들어서자 아내가 누워 있다. 다리와 팔 쪽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고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았다. 혹시나 깨우면 안 될까 싶어 잠시 아내를 살펴보고 장모님께 전화를 건다.
“그래 김서방! 지은이는 어때? 괜찮지?”
“어머님. 지은이 상태는 좀 더 봐야 되겠지만 일단 일반병실로 옮겨져 있더라고요.”
“정말 다행이야. 어쩌다가 다쳤대?”
“이제부터 들어봐야겠지만 교통사고를 당한 거 같아요. 아까 보험사 직원 말로는 가해자가 의식 불명이라고 했으니..”
“알겠네. 희수 걱정하지 말고 지은이 잘 챙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걱정 마세요.”
깊게 한숨을 한번 내쉰 후 보험사 직원을 만나러 갔다.
“잠시 대화 가능하실까요?”
“네 괜찮으시면 저 쪽 의자에 앉아서 얘기 나누시겠습니까?”
우리는 말없이 병실 복도 한편에 놓여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어떻게 된 건가요?”
“아내분 께서는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직원은 좀 더 상세하게 얘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아내는 차를 운전하고 출장을 가는 중이었던 거 같고 그때 음주운전을 하던 가해자의 차량 때문에 차를 측면에서 받치면서 가드레일을 그대로 들이박았다고 한다. 조금만 강하게 박거나 가드레일이 아닌 다른 곳을 들이박았다면 생명이 위독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 상황은 천운이 따랐을 정도라고 하는데 병실에 누워 있는 사람을 보고 이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휴우.. 가해자는 어떤 상탠가요?”
“현재 응급실에서 급하게 수술실로 이송된 상태인데 저도 경과를 봐야 해서 기다리고 있는 입장입니다. 가해자에 관한 부분은 신경 쓰지 마시고 아내분을 잘 보살피시면 될 거 같습니다. 경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릴 예정이며 병원비는 내규에 맞게 지원될 예정이니 필요한 만큼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추후 합의에 대한 과정이 있을 텐데 그것도 정리가 되는대로 얘기드리겠습니다. 유감스럽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처음 전화를 들었을 때만 해도 아내가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이 됐었다. 너무 앞서간 상상이지만 이 세상에 나랑 희수만 둘이 남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까지 들었다. 잠시 동안의 상상이었지만 막막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아내가 아니라 내가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평소 찾지도 않던 각 종교의 신을 찾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부처님. 신령님.’
다시 아내를 만나러 병실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평소 없던 걱정도 만들어내던 성격 탓인지 최악의 상황이 떠오르며 우리 가족이 먹고살 수는 있을지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