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drun

90 걸음

by 고성프리맨

"야‼️ 이번에 내가 얼마 번 줄 알아? 너 들으면 깜~짝 놀란다?"

"허세 부리지 말고! 얼마 벌었길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고등학교 때 버릇이 나왔다. 예전처럼 슬금슬금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내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귓속말을 건넸다.


"이 정도야."

"뭐!???????"

"쉿! 놀랄 거라고 했잖아. 하하. 이게 형님의 재력이시다 이 말이야."


믿기 힘들었다. 내가 받고 있는 급여의 몇 배인가..


'세상에. 다섯 배는 되겠는데?'


우쭐하는 녀석이 다르게 보였다.


"너도 할래? 처음에나 어렵지. 자리 잡으면 금방 돈 번다?"

"그래?"


잠시 동안이지만 혹하긴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쓸모해 보이기도 했고, 당장에 돈이라도 많이 버는 게 인생을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몰라봤는데 그러고 보니 녀석이 입고 있는 옷도 꽤 비싼 옷인 거 같네. 처음 보는 브랜드긴 하지만.


동창회에서 만난 여러 친구들은 서로가 서로의 위치를 과시하기 바빴다. 그곳에 나의 자리는 없었다.


"야? 넌 좀 어때? 그거 뭐 컴퓨터 좀 뚜둥긴다고 돈이 되냐?"

"그냥 그렇지 뭐."


당시만 해도 내가 하는 직업에 대해 큰 관심도 없었고, 컴퓨터 수리 하는 것과 코딩에 대한 구분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 집 컴퓨터 고장 났는데, 언제 한번 좀 고쳐줄래?"

"야이씨. 내가 뭐 수리공이야? (수리공 비하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 좀. 간단한 문젠데 내가 몰라서 그래. 너가 보면 금방 고칠 거 같아서 그래. 봐줄 거지? 응? 응?"

"후.. 봐서."


[스피드런]

- 특정한 비디오 게임을 최단시간으로 클리어하는 행위. 파고들기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으며, 꿈의 플레이 중 하나이다. (나무위키)


불현듯 떠오른 생각.


'어째서 나만 별로인 길을 걸어가는 걸까?'


모두가 각자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는데, '나 이래도 돼?'


우울해서 그날따라 폭음을 해버렸다.


"야! 간다. 컴퓨터는 봐줄게."

"잘 가 인마!"


그리고 분명 택시를 잡아탔던 거 같은데.. 어째서 지금 난 경찰서 앞에 있는 거지???




꼼수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게임을 할 때 소위 [얍삽이]라 불리는 루트를 찾거나, 핵을 발견하는데 능했던 거 같다.


한정된 자원인 100원을 가지고 최대한 오래 오락실에서 버티기 위해선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해야 했다. 누군가가 플레이하는 게임 화면을 바라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아‼️ 저거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게임하던 형이 날 쓱- 하고 쳐다봤다. 딱히 자극하려던 목적은 아니었는데 게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헛소리가 계속 나왔다.


"와! 저게 뭐야. 진짜 못해."

"야? 너 뒤질래?"


쾅- 소리를 내며 기판을 내려치고 일어난 동네 형의 위압감에 쫄았다.


"죄.. 죄송해요."

"한 번만 더 나불거리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저리 꺼져."


이런 식이었다.


'다른 자리에서 진행 중인 게임 보러 가면 되지 뭐.'


최대한 100원을 아껴야 했다. 수많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쳐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게임 하나를 선정해서 해야 한다. 당시의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목표였다.




"저기.. 좋게 좋게 화해하세요 좀. 다 큰 성인끼리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부끄럽지 않아요?"


과거의 내 모습을 왜 떠올렸던 걸까? 정신을 차렸을 땐 담배를 뻑뻑 피우는 택시 기사의 화난 얼굴이 보였다. 갑자기 분해져서는 나도 화를 냈다.


"아니! 소님이 마리ㅑㅇ.. 내가 그러니까. 저... 뭐냐. 엉뚱한 고스로 데려다주면 어떡하냐 이 말이지? 사기 치는 거 아니냐고?"


뭐지.. 혀가 꼬부라져서 원하는 대로 말이 안 나오잖아.


"뭐라는 거야!"

"자자. 진정하시고. 그러니까 기사분이 엉뚱한 곳에 데려다줘서 화가 나신 거 맞나요?"

"예.."

"기사님 취객 말대로 사기 치셨습니까?"

"절대요!"


기사의 말은 그러했다. 정상적으로 집에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벌떡 깨더니 방향을 바꿔 지금 경찰서가 위치한 지역으로 오자고 했다는 거였다.


'내가?? 대체 왜?? 연고도 없는 곳인데?'


가장 화가 났던 건 지급해야 하는 택시비가 어마어마했다는 것.


"저.. 기사님 말대로라면 택시비 주셔야겠습니다. 좋게 마무리 하시겠어요? 서로 들어가시겠어요?"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했음을 직감해서인듯하다.


"젊은 사람이 쯧. 곱게 마시고 다녀요!"


결국 경찰의 중재로 무사히(?)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새벽이 가까워져 가는 와중에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입에선 욕이 튀어나오려 했다. 하지만 삼켰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누워서 침 뱉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었다.


취해서 속은 울렁거리고 몸에서는 찌든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거울이 없어서 보진 못했지만 눈은 충혈됐을 테고, 머리는 떡져 있겠지. 얼굴에 낀 기름이 번드르르한 게 눈 안으로 기름이 흘러들어와 따갑기까지 했다. 게다가 폰도 방전되어 있었다.


예상치 못한 택시비 지출을 해버렸으니, 집으로 돌아가려면 가까운 역이나 버스 정류장으로 가야 할 테지. 그런데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저.. 경찰선생님."

"네? 무슨 일이시죠?"

"죄송하지만.. 여기서 가까운 역이나 정류장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다행스럽게 멀지 않은 곳에 역이 있어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일 년이 지나고 다시 또 동창회가 열렸다.


'이번엔 술 안 마신다. 마시면 내가 XXX다.'


다짐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 놈들은 술을 강권했다. 꼴에 남자라고 지기 싫어서 결국 다짐은 지켜내지 못했다.


"어.. 근데? oo 왜 안 왔어?"


매번 동창회에 나와서 으스대던 녀석이 왜 안 왔지? 저번만 해도 벌이 자랑하며 기죽이더니.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상황이 좀 안 좋아졌대."

"그래?"


20대 술자리에서 들리는 단골 대화 중 하나였다. 20대 답게 부침이 있었다.


"누구누구가 다단계였대.." 라거나

"걔네 집 사정이 안 좋아졌어." 혹은

"사기꾼 얘기 꺼내지도 마! 내 돈 갚지도 않았어." 같은 이야기들.


오랜 기간 지속된 동창회는 아니었지만 매년 동창회 속 인물은 자연스럽게 물갈이가 이뤄지곤 했다. 갑자기 술맛이 썼다.


"뭐 해. 안 마시고."

"그만 마실래."

"아 재미없게."


오늘도 택시 타고 엉뚱한 곳에 내리기 싫었다. 그리고 그곳이 경찰서가 되는 건 너무 끔찍했고.


"간다."




공략이 있을 줄 알았던 인생이었는데. 지나고 나니 그런 건 없구나라고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며, 공짜라고 여겼던 것 또한 응당 치러야 할 대가가 있었을 터.


부러워했던 누군가의 삶도 말 못 할 사정이 있었을 텐데 겉으로 보이는 결과만 쏙 빼닮고 싶어 했던 거 아닌가.


동창회에 안 나간 지 10년이 넘은 거 같다. 아마 어디선가 내 얘기도 술안주가 되어 빠르게 올라왔다 먹어 치워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별로 맛없는 메뉴라 안주로는 어울리지 않으려나?'


20대에 그렇게 찾아다니던 나만의 [파랑새, 공략, 해법, 스피드런]에 대해선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더 이상 술은 마시지 않으며, 누군가의 모습을 닮지 못함을 애달파하지도 않는다.


대신 나만의 스피드런. 아니 러닝을 하고 있다. 스피디할 필요가 없으니 페이스대로 꾸준히 달리면 된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만이 전부라고 여겼던 시절을 지나, 꾸준하게 살아가는 하루의 완성을 꿈꾸게 되었다. 무엇이 좋고 나쁘다의 문제는 아니다.


가끔은 생각난다.


'스피드런을 하던 이들은 모두 행복해져 있을까?'


그리고 생각을 덮는다.


다시 또 나의 일상을 살아갈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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