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짐 주의

91 걸음

by 고성프리맨

감수성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특히 폭발할 때가 있다. 그 결과, 감정과잉 상태가 되어 이상하고 쓸데없는 사소한 부분에 몰입하곤 하는데. 특히 말꼬투리 잡고 늘어지는 일이 빈번해졌다.


시작은 나 때문이었다.


"아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취미 생활 좀 해보겠다는데, 오빠는 그런 것도 이해 못 해? 아니 뭘 하는데 꼭 의미가 있어야 해?!!"

"응. 시간 아깝잖아. 기왕 하는 거 잘하는 게 좋지."

"해보다가 결에 맞으면 계속하는 거고, 아니면 접고 그러는 거지. 아오 귀찮게 진짜‼️"


시간을 의미 있게 쓴다는 것에 집착이 심해진 나머지, 아내에게 자꾸 내 사상을 주입시키려 했다. 그 결과 반발이 심해졌다. 반말은 플러스.


"내가 알아서 할게!"


파국이구나. 싸울 일도 아니었는데 우리 사이엔 냉기가 흘렀다. 약간 시간이 지나자 없던 화가 조금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눈을 들어 아내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뭘 봐?"


다시 내리 깔았다. 정확하게는 입으로 계속 뭔가를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나의 뒤끝이 시작됐다.




참 별 거 아닌데.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의미 없이 툭 던져진 말 한마디에도 소녀소녀해 지는 이 마음을 어쩌면 좋을지. 40대 아저씨가 되니 유리멘털과 더불어 소녀감성까지 획득해 버렸다. 글이 아니었더라면 그 어디에도 이런 말은 쓰지 못했으리라.


조금 부끄러워서 [삐졌다]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이것만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는 거 같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잘 삐진다. 삐지기로는 8살 둘째와 비등할 정도로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좋게 포장하면 감정에 충실하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니..




보통 한번 시작된 뒤끝은 최소 몇 시간은 가는 거 같다. 길게는 하루 이상을 가기도 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로서도 보통 고역은 아닐 거 같다. 오빠라서 믿고 결혼한 게 클 텐데 지금 와서 하는 걸 보면 뒷바라지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니. 자칫하면 사기 결혼당했다고 생각하려나?


삐진다는 건 그 감정을 일으킨 대상이 필요하다. 결국엔 내 마음이 왜 불편해졌는지에 대해 그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그런 게 있다. 정작 삐지고 싶은 건 아내일지도 모르겠는데, 선수 쳐서 먼저 삐져 버렸다.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에 평온이 찾아온다.


'화해할 구실을 만들어야겠어.'


삐질 때도 내 맘대로였지만, 화해도 내 마음대로 진행이다. 그렇게 내 기준대로 상대를 고려치 않고 화해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아오‼️ 그만해. 화낼 땐 언제고, 뭔 사과야!"

"이익.."


이걸 어쩌지.. 다시 삐져버렸다. 내가 하는 사과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받아도 모자랄 판에 감히?!


- 거.. 요즘 그런 식으로 결혼생활 하면 도장 찍기 딱 좋습니다?


분한 마음을 사그라뜨리며 다시 한번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결국 이 모든 게 [내 위주]로 판을 짜놓고 생각하는 버릇에서 비롯된 악취미였다.


슬슬 눈치를 봤다. 갑자기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아차차.. 우리 집 가장 님인데 내가 뭔 짓을 한 거지?'


그런 내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아내가 말을 꺼냈다.


"졸려 잘래. 내일 난 출근해야 해. [너!]처럼 한가하지 않다고."


너라고 했다. 보통 아내는 화가 나면 존칭을 바꾸는 편인데 [오빠->너]로 호칭이 격하되면 기분이 많이 상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 시간이고 떠들 준비가 늘 되어 있는 난, 마지못해 아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삐진 것에 대한 해명까지 하면 더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누웠다. 아내는 이내 잠이 들었고, 침대에 누운 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두운 상태에서 글을 읽는 게 눈에는 좋지 않겠지만, 감정을 표출할 창구가 필요했다. 단방향이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 마음이 진정되고 평온해지길 바라는 행위였다.


"하아아암~"




"@#$@#$@#$@#$!!! 꺄하하하하하핫!"


아침이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6시..


'일찍도 일어나네 이놈들.'


미처 다 읽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지 휴대전화를 켰을 때 중간 정도 읽다만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나머지를 마저 읽었다. 당연히 머릿속에 잘 담기지는 않지만 그냥 아침을 여는 나만의 의식 같은 행동이다.


문득 자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처 해결하지 못한 화해를 어떻게 신청하지?'


어제의 감정은 연장이 되어 아침까지 이어졌다. 갑자기 다정하게 해주고 싶었다. 다가가 팔을 만졌다. 여름이라 그런가 습기 때문에 팔이 끈적하다.


"저리 치웟!"


노호성을 지르는 아내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공손해졌다.


"미안해."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맨날 혼자 화내고 풀어지고 사과하고. 난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뒤끝이 심해서 말이야 쯧."

"...?!"


갑자기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시 또 뭔가가 올라오려 했다.


"그만해라? 아침부터 진짜. 가장 님 출근하게 애들 밥 좀 차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내의 말 때문이 아니라 다시 또 삐져버릴 뻔한 상황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을 달리 먹게 됐다.


'오호? 이거 잘만하면 소재 하나 건지겠는데?'


그렇게 이 글이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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