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걸음
오늘은 어떻게 한 걸음을 떼면 좋을까?
언제나 그렇듯 첫 시작이 중요하다. 보통은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글의 방향이 결정된다.
최근에 느끼는 즐거움 중 하나가 있다. 몇 달 전 아내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좋은 의자를 하나 사줬는데, 거기 앉아서 목받이에 목을 기대고 앉아 있는 순간이다. 물론 내가 원하던 좀 더 상위 기종의 의자를 획득하는덴 실패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도 행복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노트북을 켠다. 딱히 뭔가를 쓰려고 의도한 것도 없는데 습관적으로 켜는 것이다. 목과 허리를 의자에 맡긴 채 잠시의 여유를 즐겨본다.
'아차. 커피가 빠질 수 없지.'
꽈드드드드득-
갈리는 원두소리를 들으며 다시 의자에 기댔다. 의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하다니. 가성비로 따지면 꽤 좋은 편 아닌가? 하지만 사람의 삶이 가성비나 효율만으로 정의될 수는 없겠지.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남의 연애사를 들여다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딱히 연애고수라거나 아쉬움이 남아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재밌어서다. 그렇다고 개입을 하려 하진 않는다. 당연하게도 도울 깜냥이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자의 마음은 어렵다. 특히 아내의 마음은 여전히 모르겠다. 같이 지내다 보면 많이 알게 될 거 같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특히 귀촌 이후엔 가끔씩 보는 아내의 새로운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반대로 아내 또한 그럴 거 같다.
아이들이 잠든 저녁 시간이 되면 우리는 거실로 나와 영상을 튼다. 대화를 트기 위한 예열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영상이 없더라도 대화는 진행할 수 있지만, 좀 더 공통의 관심사에 부드럽게 접근할 수 있기에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
화면에는 내가 좋아하는 연애 프로그램이 나오는 중이었다. 주책이지만 가끔은 출연자가 되었다고 상상을 해본다.
"나 저기 나가면 몇 표나 받을까?"
"미친 거 아니야? 당장이라도 나가게 해 줄까?"
"아니.."
실언을 내뱉자 아내는 강경하게 대응했다. 나에 대한 파훼법 정도는 이미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이라 역시 무섭다.
그래도 기왕 상상해 본 거 밀어붙여보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서 하는 거라면 딱히 방해받을 것도 없잖아?
나이 : 40대 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직업 : 프리랜서(...)
좋아하는 이상형 : 아내(진짜임)
자녀유무 : 2
형제유무 : X
흠.. 흐음.. 흐으으으으음???
섭외 가능성 0. 출연할 필요가 없는 자기소개다.
"지금 머릿속으로 상상했지?"
"아닌데?"
"나니까 살아주는 거야. 저기 나가면 누가 좋다고 하겠어 안 그래?"
반박은 못하겠네.
은둔생활을 하고 싶어서는 아닌데 성향이 점점 그쪽으로 바뀌고 있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 소식에 어두워지고 싶지는 않은데.'
어쩔 수 없이 글과 영상을 많이 보게 됐다. 글과 영상만으로 접하는 세상도 많이 왜곡돼 있겠지만, 스스로 곡해하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딱히 새삼스럽지는 않다. 회사에 속해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던 게, 하는 일을 렌즈 삼아 다른 세상을 엿보곤 했었다. 결국 지금이나 예전이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크기는 내가 이해하고자 하는 크기만큼만 보이는 거 같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왔었다. 대충 눈치는 채고 있었다. 나로부터 어떤 추가적인 메시지를 바란다는 것을. 하지만 상대방이 바랄 메시지를 전달하진 않았다. 정확하게는 못했다에 가깝다.
일상적인 안부를 묻는 메시지에는 만남을 원하는 이면이 느껴졌었다. 전부 내 착각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고 느끼기에 그랬다. 지인을 기피해서는 아니다.
만남을 가정했을 때, 어떠한 말을 꺼내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였다. 전적으로 내 문제일 뿐이다. 혹시나 오해할지 모를 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끝내 표현하진 않았다.
몸의 노화 속도와 별개로, 머릿속은 거꾸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여전히 상상과 호기심은 많은데, 막상 시작하려면 머뭇거리게 된다. 그중에서 건강관리를 잘하지 못해 실행할 수 없는 문제를 마주할 때면 아쉬움이 배로 커진다.
'지금이라도 운동을 해야 해.'
오래전부터 살기 위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지적받았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일이 우선이었고, 남는 시간엔 자거나 쉬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위한 운동 같은 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나 하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과, 몸은 배신하지 않고 아픈 부분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통증이 시작된 곳은, 많은 사무직 사람이 그렇듯 허리와 목, 손목 같은 부분이었다. 다음으로는 소화불량, 위염, 비염 등이 찾아왔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에서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다.
언제까지고 건강할 줄 알았던 무릎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걷기 만큼은 자신 있었는데(라며 걷지 않는 자가 말을 합니다.) 어느 날부터 통증이 시작되었고, 오래 걸을 수 없게 되었다.
하체운동을 해야 하는데 무릎이 아프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막막해졌다. 그렇다고 운동을 아예 놓아버리면 아픈 부위는 점점 늘어나겠지.
일단 차선책으로 선택한 건 상체운동. 유산소운동도 무릎이 아프니까 꺼리게 되었다. 근력이 부족하다 보니 오래 지속은 못한 채 10여분 정도로 부하를 일으킨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체 운동을 조금 하다 보니 목에서부터 손끝까지 이어지던 저림이 약간 둔화된 거 같다.
'진작부터 하체운동까지 해왔으면 무릎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미 벌어진 일은 일이고, 지금의 상태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게 평생 운동과는 담쌓았던 사람도 운동이란 걸 하게 되는구나.
"아니. 누가 들으면 뭐 보디빌더라도 되는 줄 알겄어? 깔짝 거리는 게 전부면서."
"어허. 시작이 반이오."
"말투 뭐지? 건방지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사옵니까."
기왕 언급한 김에 운동이나 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