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남

93 걸음

by 고성프리맨

루틴이 깨지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엄청난 루틴을 지속 중인 건 아닌데. 찰나의 몰입이 깨지는 순간마다 화가 머리끝까지 제로백을 무시한 채 올라버리곤 한다.


그런 나의 급발진 때문에 곁에 있는 아내가 가끔(자주인가..) 괴로워한다.


"아.. 별 것도 아닌 걸로 정말."


별 거 아니다. 별 게 아닌가? 어느 순간 별난 사람이 되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인생에 상수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변수와 마주칠 상황도 꽤나 생기는 거 같다. 날마다 변수와 마주한다면 그 또한 괴롭겠지만, 상수처럼 일정하고 고정된 값을 유지하는 것도 지루하지 않을까?


역시나 균형이 중요하다.

그리고 변수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루틴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스스로 만들어 낸 편견의 집합일지 모르겠다.


나름의 순서를 정해 일과를 진행하는 것.

개인화된 나만의 습관.


최적화 됐다고 생각하는 루틴은 사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타인이 바라보면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유지하고 싶은데.'


그러자. 나 대신 누군가 해줄 수도 없는 일이니, 어쩔 도리가 없지.


인간의 한계라기엔 맞지 않는 거 같고, 결국 내 문제일 거 같다. 찍먹을 해봐야지만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해보는 수밖에. 그렇게 만들어진 나만의 루틴은 고집과 편견의 또 다른 이름처럼 남았다.




하루 루틴을 정리해 볼까?


1. 수시로 책 읽기
2. 수시로 멍 때리기
3. 글짓기, 때로는 글쓰기
4. 깨작거리는 무산소 운동 10분
5. 뭐해먹고 살지에 대해 찾아보기


음.. 생각보다도 더 없어 보이는 루틴인데?


하나하나 살펴보자.


[1] 수많은 독서법이 존재하지만 무시하고 그냥 읽는다. 억지로 뇌에 뭔가를 새기고 싶지 않기에 읽다가 와닿는 부분이 있으면 간직하고 다시 읽고를 반복한다. 그리고 까먹는다. 그리고 고민한다. '어째서 기억에 남았을까? 어째서 마음에 와닿았을까?'. 그런 감정을 느낀 나 자신의 상태에 주목해 보려 노력한다.


[2] 의도적으로 비우는 연습이다. 컴퓨터가 강제종료되듯 하던 일을 일시에 놔버리는 연습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의도대로 잘 되지 않다 보니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할 듯하다.


[3] 주로 [글짓기]를 한다. 교양적인 것보다는 그나마 문학적인 글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주는 [글짓기]고, 부가 [글쓰기]이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지식을 전달하기엔 모자란 점이 많아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4] 살기 위해 뒤늦게 시작했다. 목과 허리의 고질적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깨작거리는데 하다 보니 생각보다 재밌다고 느끼는 중이다. 실제로 몸에 큰 변화가 없음에도, 가끔 거울 속 나를 보며 취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근육맨 되면 어쩌지?'라는 망상과 함께. 하지만 그럴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고 조금씩 시간을 늘려보자.


[5] 현실적인 고민과 학습의 시간이다. 트렌드에 대한 학습일 수도 있고, 이런저런 소식을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익히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을만한 부분을 좀 더 집중해서 살펴본다. 회사를 나온 이상, 먹고살 걱정은 늘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처음에 어째서 아내분한테 화를 낸 거죠? 대체 어떤 루틴을 방해했길래."


아..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짧고 굵게 정리하면 성격이 못돼 서다.


"그런 거 같더라니.."

"아아니.. 저기요. 제 말을 끝까지 좀 들어-"

"들을 것도 없어‼️"


판타지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태생은 잡몹인데 인간의 마음을 가진 몬스터 같은 존재가 나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태생적인 본능, 그리고 어떤 집단에 속해서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생각의 결과 삶의 태도가 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타고나기를 몬스터로 태어나서 인간을 사냥하며 살아야 되는 운명인데, 인간의 삶을 동경하는 존재. 중2 시절 때부터 쭉 그렇게 생각하곤 했으니 중2병이 40대까지 이어진 셈이다. 중2 버릇 40 간다.


"?"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시작하려던 순간 방해받는 느낌이 들면, 이유 없이 화가 날 때가 있다. 화를 내는 기준도 통일성이 없어서, 똑같은 이유더라도 어떨 때는 급발진으로 되기도 하고 허허 웃으며 넘길 때도 있다.


곁에 두기엔 최악의 유형.

감정의 분출을 잘 못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싶을 때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가끔씩 몬스터의 본능이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본능을 통제해야 한다.


아내에겐 그래서 늘 뒤늦게 사과를 한다. 외양간은 이미 망가졌는데도, 도망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어주는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글도 메타인지를 가장한 스스로 돌려 까기.

어쩌면 지금 글의 주인공인 내게 스스로 시련을 내리는 건 아닐까?

기복 있는 성격 덕에, 헤쳐나갈 미션을 알아서 잘 만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꼭 아내에게 사과하자. 반복되는 지겨운 사과일지라도 하도록 하자.


그런 다음 루틴을 지켜내자. 비록 오늘의 시작은 안 좋은 상태에서 하게 됐지만 훌훌 털어내고 해 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