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걸음
으음.. 어제의 내가 대체 무슨 글을 쓴 거지?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어제 썼던 글을 읽어보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기왕 시작한 이야기니 마무리는 짓자.'
- 그럴 거였으면 전에 마무리 안지은 소설은 어쩌고요?!
언젠가,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아니 두물머린지 세물머린지는 모르겠고 귀찮다니까?"
"내가 좋아했던 하트시그널에 나왔던 장소라고‼️"
차마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을 똑바로 마주하진 못했다.
"아무튼 그렇다고. 온 김에 가보는 건 어때?"
"아빠. 주렁주렁(참고로 동물원이다.) 간다고 했잖아요?"
"시간이 좀 있으니 우리 두물머리 들렀다 가자."
"아잇! 싫어어어어엇‼️ 주! 렁! 주! 렁!"
산 넘어 산이구나. 결국 모든 원망을 뒤로한 채 나의 독단으로 두물머리를 향해 질주했다. 그래도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흰소리를 보탰다.
"거기 연잎이 반죽에 들어간 핫도그가 맛이 아주 좋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됐고."
"안먹어욧!"
1차 실패.
"금방 보고 가면 되지 뭐~"
"나 잘래."
"흥!"
2차 실패.
"아앗‼️ 길을 잘못 들었다. 아니 옆에서 내비게이션 좀 잘 봐달라고 그랬잖아!"
"아니 뭐 내가 내비 보는 사람이얏? 누가 오쟀어???"
"미미안."
3차 실패 삼진 아웃.
두물머리에서 가장 가까운 주차장은 유료라기에 일단 무료 주차장으로 알려진 곳에 주차하고 걷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1km 정도만 걸으면 되네 하핫."
마침맞게 비까지 내려줬다.
"후.. 우산 꺼낼게."
지도 어플을 켜서 도보 모드로 바꾼 후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철석같이 어플만 믿고 호기롭게 걷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함이 조금씩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는 체육공원 깊은 곳으로 인도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 마주한 막다른 길. 분명 어플에서는 이대로 살짝 돌아서 직진하면 된다고 표시돼 있건만.. 굳게 잠긴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철문이 열려 있었더라도 우거진 잡초 숲을 걸어서 지나갈 자신도 없었다.
"이.. 길이 아닌가 봐."
"아잇!@#$@#$"
"끼야아아아아아악! 주! 렁! 주! 렁!"
"흑흑.. 미안해. 퇴각하자. 차로 갑시다."
결국 3,000원의 주차비를 아껴보려던 내 계획은 실패했고, 다시 한번 원성을 듣기엔 충분한 사유였다.
"도착했습니다!"
험난했지만 결국 무사히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유료 주차장인만큼 주차와 동시에 두물머리를 바로 볼 수 있었다. 3,000원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와.. 좋네. 근데 여기 아까 길거리에 문구 쓰여 있던 거 봤어?"
"아니 뭐라고 쓰여 있었길래?"
"주말엔 차가 많나 봐. 극심한 정체랑 두 시간 이상 걸릴 거라고 쓰여있던데?"
"허??"
"그래도 다행이지 않아? 오빠가 백수라서 시간이 많으니까 이렇게 바로 올 수도 있고. 하하하."
"..."
사실이라 반박은 못했다. 시간 부자(백수란 표현을 피하고 싶었다.)다 보니 이런 경험도 가능하구만.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산책을 했다. 커다란 느티나무도 보고, 또 다른 느티나무도 보고, 또티나무를 또 보고. 그러다 두물머리에 대한 설명이 쓰인 안내판을 마주했다.
"음.. 이래서 두물머리구나."
혹시나 두물머리의 유래에 대해 설명해 줄 거라 기대했던 분이 있다면, 정답.
- 두물머리
두물머리는 일반적으로 두 강물이 머리를 맞대듯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흐르는 곳의 지명으로 사용되는데, 합수머리, 두 머리, 이수두(二水頭), 양수두(兩水頭) 등으로도 불린다. (위키피디아)
양수리라고 불리기도 하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구나.
한국의 요괴 중 [두억시니]의 느낌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괜히 무서운 설화가 얽혀 있으리라 생각한 건 내 판단착오였다.
소원을 비는 나무를 거쳐 두물경까지 걸어갔다. 비가 내린 뒤라 선선해져서 걷기엔 괜찮은 날씨였다.
'하늘까지 도와주는구나.'
막 갖다 붙이긴 했지만 정말로 산책하면서 기분전환도 되고 옛날 살던 곳 근처의 유수지를 걷던 느낌도 들었다.
"좋다. 오길 잘했어."
"그치?"
"주! 렁! 주! 렁!"
"핫도그나 먹을까?"
불만을 잠재울 땐 역시 군것질이 최고다.
주차장 인근에 위치한 핫도그집으로 향했다. 평일임에도 꽤나 많은 사람이 찹찹 거리면서 핫도그를 먹고 있기에 없던 신뢰감이 막 생겼다.
"핫도그 몇 개 드릴까요?"
이전에 남양주 카페에서 빵을 먹고 왔기에 각자 하나씩 먹기엔 부담스러웠다.
"두 개 주세요. 순한 맛으로요."
참고로 매운맛과 순한 맛의 구분이 있었는데 무슨 차이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맵찔이답게 순한 맛으로 주문.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고양이 한 마리‼
처음엔 인형인 줄 알았다. 미동도 없이 사진처럼 가만히 누워 있길래 조심스레 다가갔더니 그제야 눈을 떠서 노려봤다.
"핫도그 받아 가세요~"
고양이의 눈빛에 잔뜩 쫄아서는 만져볼 생각은 접고 핫도그만 잽싸게 챙겨 왔다. 통통한 핫도그에 설탕가루와 케첩+머스터드의 조합을 보니 사라졌다고 생각한 식욕이 다시 생겨났다.
"와아앙. 헛.. 엄청 맛있네?"
핫도그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주차장에 돌아왔다.
"이제 가는 거예요? 주렁주렁?"
끝까지 꺾이지 않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어필하는 막내의 패기에 혀를 내둘렀다.
"응. 이제 갈게!"
아름다웠던 두물머리 안녕. 맛있던 연잎 핫도그도 안녕.
이제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펼쳐질 하남으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