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필요한 한 획

101 걸음

by 고성프리맨

빚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IMF 사태가 찾아왔지만 타격받을 일은 생기지 않았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고 한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속보 소식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느꼈지만, 당시 학생이었던 난 크게 관심 가지지 않았다. 그저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조금 즐거워 보이셨다.


"다들 이제 큰일 났어. 빚 무서운 줄 모르더니. 저저 봐라. 이제 다 끝났어."


39살의 아버지는 그렇게 타인의 불행을 안주삼아 소주를 한잔 들이켰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진 주사를 들어주는 건 아들인 내 몫이었다.




어째서 우리 집은 IMF 사태에도 타격을 받지 않았을까?


역설적이게도 가난해서였다. 잃을 게 별로 없었다. 살고 있는 집은 먼 친척의 동정심과 배려로 싸게 대여해 준 집이라 부담될 게 없었고, 돈이 떨어져야 일을 구하던 아버지의 직장 생활은 늘 불안했다.


자급자족이긴 하나 여유는 없던 삶. 생존을 위한 일만이 존재했고, 우리 집은 늘 위태로웠다. 하지만 빚은 없었다. 그래서 타격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믿어보려고 했다.


믿어보려 할수록 마음속에선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아버지의 모습은 결코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은 아니었다.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느냐? 내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니?"

"아는 게 없어서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옳습니다."


주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로도가 올라가니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런 내 태도가 좋게 보이진 않는지 다시 한번 아버지의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나의 정신상태를 전부 뜯어고쳐 놓겠다는 듯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말의 형태를 띤 무언가는 한동안 이어졌다. 그럴 때면 난 꿈을 꾸듯 다른 상상을 하곤 했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결심했던 이야기를 전하려고 마음먹은 날이기도 하다.


"드릴 얘기가 있습니다."

"말해라."

"결혼하겠습니다."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아내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아버지는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마치 신분상승의 사다리로 이용해야 한다는 듯 평소부터 얘기를 꺼내셨었다. 그런 아버지의 관점이 불편했기에 우리 사이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 알아서 해라."


허락을 구하고자 했던 말은 맞지만 뭔가를 기대해서 얘기를 꺼냈던 건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는 병을 얻으셨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나로 인해 병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삶이었다. 너무나도 부모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불효자임을 공언하게 되는 것이지만 부모님과 사는 동안 행복보다는 불행의 기억이 많았었다.


굳이 불행했던 개인사를 들먹이며 동조해 달라는 의도로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부모님과 잘 맞지 않았던 불효한 아들이 있었구나 정도로 정리하는 게 낫겠다.


어쨌건 결혼은 내게 독립의 기회였다. 물론 성인이 된 이후로 언제든 독립할 수 있었지만, 자신감이 부족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독립이 가장 큰 발목을 잡았다.


알게 모르게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경제관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부정적인 상태였다. 쉽게 설명하면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자는 선하다]라는 근본 없는 생각 같은 것. 그리고 [빚은 무조건 나쁘다]라는 것.


결혼을 하고 나서 아내와 가장 큰 충돌을 하게 됐던 문제 또한 부정적인 경제관에서 비롯됐었다. 아내는 많이 갑갑해했었다.


그러던 차에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두려웠다. 혹시나 빚에 잠식당해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생각부터 머릿속에 맴돌았다.


"오빠.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 둘 다 일하잖아. 노는 것도 아니고 일해서 갚다 보면 갚아지는 거지. 그리고 내 주변엔 다 그렇게 살아. 다들 그렇게 대출받아서 갚아 나가며 집도 사고 이러는 거지 뭐."


당시 대출받으려 했던 금액은 2,000만 원 정도였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혹시나 지금의 빚으로 인해 우리 관계가 잘못되면 어떡하지란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바보같이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렸다.


당연히 노발대발하셨다. 내게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진 않으셨지만 아내에 대한 안 좋은 말도 서슴없이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정신 차렸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아내와 똘똘 뭉쳐 살아도 모자랄 판에 [구부(舅婦) 갈등]을 만들어 내다니. 앞으로의 생에서 부모님이 나 대신 의사결정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내의 말대로 대출을 받아 이사를 갔다. 나의 세계가 아닌 아내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결정으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구부갈등이 잠잠해졌다. 그 사이 우리는 다시 한번 이사를 했다. 아이가 태어남을 기점으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보고자 했던 갈망덕이었다. 빚은 이전보다 훨씬 많이 늘어났다. 그래도 처음 대출을 받았을 때보다는 덜 불안했다. 아내와 함께라면 해낼 수 있으리란 믿음이 커져 있었다.


"이번에 집들이를 좀 해볼까 하는데. 괜찮아?"

"그래. 하자."


병마로 인해 많이 쇠약해진 아버지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다른 사람이 아닌 아버지에게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나 보다. 전화를 걸어 집들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자 흔쾌히 응하셨다.


아버지는 외가 친척 중 연락이 닿는 분들에게 전부 연락해 집들이에 초대하셨다. 그리고 그날 아픈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웃으셨다.


"다 얘들이 잘해서 그런 거지 뭐. 나야 뭐.. 해준 게 있나."


음식을 내오던 중 들려온 아버지의 목소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간직했다. 그리고 첫 집들이를 끝으로 다시는 아버지를 초대할 수 없었다.




"아빠 빚이 뭐야?"


어느 날인가 아이가 물어봤다.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려나 하는 순간 다시 이어진 아이의 말.


"머리 빗을 때 쓰는 거야?"


웃으며 아이를 안아줬다.


"숨 막혀!"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쩌면 내가 바란 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거리감 있게만 느껴지던 아버지에게 나 또한 이런 표현을 받고 싶었던 걸까?


"사랑해."

"흥!"


아이는 미꾸라지처럼 내 품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났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알고 꺼낸 이야기인진 모르겠지만 아이가 꺼낸 [빚]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내게 빚은 무엇일까? 살아가는 동안 감당해야 할 무게?


여전히 빚이 많다. 과거보다 빚은 분명 늘었다. 빚 때문에 한숨 지을 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잘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빚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빚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잘 유지해야겠지.


"뭘 그렇게 걱정해?"


아내가 말을 걸자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빚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외식 좀 줄이고! 정신 차려야지 안 그래?!"


괜한 말을 꺼냈구나.


"괜찮아. 잘될 거야."

"정말?"

"어! 나만 믿어. 가장 님의 말을 잘 들으란 말이야."

"알겠어‼️"


빚에 한 획을 추가하면 빛이 된다. 내게 있어 아내의 말 한마디는 한 획이 되어주었다.


"사랑해."

"... 어."


빚이 주는 두려움을 밝힐 빛을 찾아 열심히 살아야지, 그리고 지금의 고민 또한 먼 훗날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겨났다.
그 빛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이렇게 첫날이 밤, 낮 하루가 지났다.

- 공동번역 성서 창세기 1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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