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걸음
현대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발달된 시기에 살아가며, 매일매일 대량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현대인 천재론은 이러한 현대인들이 중세나 판타지 세계로 이동하면 그 세계 사람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뛰어난 지식 덕분에 천재처럼 보인다는 해석이다. - 나무위키
나무위키의 신봉자답게 오늘도 하나를 들고 왔다. 이름하여 [현대인 천재론]. 웹소설의 소재 중 하나로 가끔 사용되기도 한다. 상상력에는 제한이 필요 없으니 현대인 천재론과 타임슬립을 잘 버무리면 꽤나 흥미로운 내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러긴 힘들 거 같다. 과거의 사람에 비해 분명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느끼지만, 막상 해당 시대로 돌아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에서도 유용할까?
게다가 능력으로 치면 육체적인 힘이 더 필요한 상황이 많을지도 모르는데, 현재로서는 한숨이 나오는 저질 체력을 가지고 있으니..
지금은 인터넷을 이용해 온라인에서도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환경도 그렇고, 굳이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지 않더라도 소통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라면..?
오프라인 세계에서 중요시되는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다면 훨씬 나을 거 같은데, 더 늦기 전에 그런 부분을 계발해 보는 게 필요하려나..
"정신 차리고 밥이나 먹어."
"네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히려 나보다는 아내가 훨씬 적응을 잘할 거 같다. 내겐 어째서 저런 카리스마가 없는 것일까.
예전 선비들을 보면 약관의 나이를 전후로 입신양명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르게는 15세가 되기 전후로도 있는 거 같은데, 동나이대의 내 모습과 비교해 보면 격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게다가 평균수명 자체도 현대사회보다 압도적으로 짧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만들어냈다.
'오히려 천재는 과거 시대의 사람들 아닌가?'
그리고 어렸을 때 아무렇지 않게 보던 장면들도 생각해 보면 머리가 띵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노숙도 하고 산 넘고 물 건너가던 장면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단순히 지(智)에만 투자한 게 아니라 체(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거 같다.
내 경우 하루 만보를 걸어본지가 언제인지.. 부끄럽지만 하루에 몇 km 걷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날 하루는 끙끙 앓을지도 모른다.
정확히 과거시험의 장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는 입장이라 섣불리 말은 못 하겠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시험 치러 온 지망생이라면 족히 100km 이상은 걸었으리란 생각이다.
최근 열심히 보고 있는 [차박차박]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 하루 20-30km 걷는데 8시간 내외로 소요하고 있다. 100km를 쉼 없이 걷는다고 가정하면 못해도 5일 이상은 걸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어느 정도 걷기에 단련된 사람일 경우에나 가능한 일.
그리고 지금처럼 숙소가 잘되어 있을 리가 없다. 정처 없이 걷다가 해가 지기 전에 어떻게든 잠자리를 구해야 한다. 지도도 미비하고, 정보량도 턱 없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환경을 떠올리니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아무리 과거 시험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면 뭐 한단 말인가. 일단 시험장까지 갈 체력이 안되는데.
'지금 시대에 태어나서 천만다행이구나. 그러니 겨우 밥이라도 먹고살고 있지.'
문득 혜초스님, 삼장법사 같은 분이 떠올랐다. 배를 탔는지 여부를 떠나 순수 피지컬적인 힘으로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찍었던 분들 아닌가. 게다가 비상한 기억력과 해석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놀라운 업적까지 남길 정도였으니 진정한 천재시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트레킹(Trekking) + 여행 유튜버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인기를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 그만큼 뭘 했어도 될 분들이었다는 생각이다.
"밥이나 먹고 정신 차려‼"
범부로 지낸 지 어언 40여 년. 하지만 여전히 배는 고프고 밥은 맛있다.
"잘 먹겠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칼로리 소모가 되는지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퍼 먹었다.
"천천히 먹어. 맨날 속 안 좋다면서 빨리 먹긴."
"마있어. (우걱우걱)"
꿀맛. 꿀이다. 그렇구나. 현대 사회는 내게 꿀맛 같은 세상. 과거에 태어났다면 밥벌이하기도 힘들었을 내가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기적이다.
기적을 경험 중인 내가 감히 불평불만을 가져서야 되겠나?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힘내보자. 비록 현대인 천재론에 부합되는 인물이 내가 아니라서 아쉬운 면은 있지만 꼭 천재여야 할 필요도 없는 법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최선을 다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