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이

107 걸음

by 고성프리맨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짤막하게 읽었던 소설이 있었는데, 단박에 눈을 사로잡았다. 길상이라는 인물에 대한 묘사였는데 읽는 내내 정말로 그를 뒤쫓아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다 읽고 났을 땐 전집이 읽고 싶어졌다.


무작정 도서관에 찾아가 마주한 토지는 21권 정도 되는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이었다. 처음부터 양이 거대하다고 생각하자 읽는 게 두려웠다. 그렇게 마음속 깊이 묻어둔 채 토지 읽기는 미뤄졌다.


토지.jpg [구매해서 완독한 버전]


이십 대의 끝자락 즈음해서 삶의 방향성을 잃었었다. 뭘 해도 재미있지 않았기에 부평초 마냥 회사도 옮겨 다녔었다. 옮기는 기준도 별로였는데, 몇 백만 원 인상해 준다고 하거나, 복지가 지금 속해 있는 곳보다 낫다고 하거나, 상장되어 있는 회사라는 타이틀에 혹해서 쉬이 옮겼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는 제1덕목인 [연봉인상]이라는 측면에 충실했으니 잘한 거 아닐까?


하지만 경력 관리 측면에서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어디 하나 진득하게 붙어 있질 못하고 짧게 짧게 이직하기 바빴다. 결국 그러한 행보는 마이너스가 되어 부메랑처럼 나를 타깃 삼아 돌아왔다.


당시 이직이 쉬웠던 이유는 단 하나. 병역특례를 마무리 짓고 싼 몸값으로 시장에 나온 매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른 직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연봉으로 일을 해왔기에, 어느 정도 연봉을 올려 불러도 회사 입장에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상태였다.


그러기를 몇 번. 무수히 많은 면접을 보고, 이직과 퇴사를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도 정신 상태가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처럼 보일 얘기였지만, 목적성을 잃은 난 의욕이 없었다. 그냥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전부였을 뿐.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는 신앙이 될 수도, 부모님이 될 수도, 혹은 연인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찾기 힘들었다.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세상이 날 억까하나?"랄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뜬금없이 [토지]가 생각났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우연히 작가인 [박경리]님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봐서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뭐 하는 분인지 잘 몰랐다. 보통은 작가보다는 작품에 관심도가 높기 때문에 작가의 삶은 웬만큼 팬이 되지 않고서는 굳이 찾아볼 일이 잘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다큐멘터리 한편은 잃어버렸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오랫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 속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렇게 토지 전집을 구매했다.




오늘의 제목 [박금이]는 박경리 선생님의 본명이다. 여자로서는 다소 불행한 삶을 사셨다. 그 시절의 분위기와 환경을 고려하면 억울한 생을 살다 간 여자가 한 둘이 아니었겠지만, 작가의 일대기를 보며 많이도 울었던 거 같다. 특히 토지의 후반부 집필 과정에서 병마와 싸워가며 집필을 한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먹먹해져서 잠시 멈췄다 다시 읽기를 반복해야 했다.


"휴우.. 21권이구나."


이상하게도 눈앞에 떡하니 21권이라는 숫자가 맞닥뜨리자 숨이 콱 막히는 듯했다. 시작도 하기 전부터 질린 느낌이랄까.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뒤로하고 일단 1권을 펼쳤다.


그렇게 2권, 3권.. 10권을 돌파, 이윽고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원래 빨리 읽는 편이 아닌 탓에 다 읽는 데만 반년 가까이 걸렸던 거 같은데 토지에 바친 눈물의 양으로만 따지면 생수 한 병은 채울 수 있지 않으려나? (과장이 너무 심한가..)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토지 읽기를 마무리지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들었다. 생각보다는 덤덤했다. 긴 호흡으로 여러 등장인물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행복했으며, 감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리지 않을 감사함을 담아 마음속으로 작가님께 메시지를 보냈다.




토지는 대하소설답게 수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슬펐던 시대 상황과 맞물려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모습을 함부로 욕하기도 힘들었기에 읽는 동안 그렇게 힘들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과연 나였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수많은 등장인물 중 내 눈에 띈 인물은 [이홍]이었다.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우여곡절을 겪고 나름의 터전을 구축하는 그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었다. 내가 유년시절부터 했던 고민을 그대로 하는 그에게 몰입했고, 그의 미래를 보며 롤모델로 삼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홍처럼 살자.'


그렇게 토지의 완독과 함께 거짓말처럼 나의 방황도 끝이 났다. 그리고 작중 이홍이 만주로 떠났던 것처럼, 나도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그곳에서 터전을 이루었고, 나는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잊고 있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어째서 소설을 쓰고 싶었던 거지?'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늘 의문이었는데.. 이유를 찾았다. 그건 바로 토지 때문이었다. 사실 이유라는 건 만들어내기 나름이겠지만 감명 깊게 읽었던 소설 하나가 때로는 이유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까맣게 잊고 살아왔을 뿐, 마음속 깊은 곳에 상흔처럼 남아 있었던 것뿐이었다.


물론 감동을 받은 것과, 쓰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게다가 순문학인 토지와는 다른 방향의 결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엔 언제나 토지의 자리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을 것임을 믿는다. 그 언젠가 방황 속에서 괴로워할 때 내게 힘을 줬던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박경리 선생님의 붕대 투혼이 다시 떠오른다. 아니 이제는 조금은 와닿는다. 어째서 병환 중에도 집필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무엇이 쓰게 만들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예전 [무릎팍도사]라는 프로그램에 황석영 작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부모님이 그렇게 안타까워 하시더라고요. 작가는 자신의 삶을 내어줘야 하는 일인데.. 어찌하여 선택하려 하느냐고."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다. 내가 기억하기에 이런 기조였던 기억이.. (나중에 제대로 된 대사를 알게 되면 정정해야지.)


대작가들의 마음가짐과 능력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 다만 꿈은 높게 가지랬다고 그분들의 열망과 자세를 본받고 싶다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비록 표현의 부족으로 인해 아쉽게 밖에 못 쓰는 상태지만 언젠가는 좀 더 나아지리란 믿음으로 다시 한번 오늘의 글을 완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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