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걸음
조사와 경사가 겹친 친구가 있다. 경사를 앞두고 조사를 겪는 그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소식을 전해 듣고는 마음이 심란해졌다. 예전엔 경사가 훨씬 많았던 거 같은데, 갈수록 조사의 빈도가 올라감을 느낀다.
사는 곳이 멀다 해도 안 가 볼 수는 없었다. 특히 조사를 겪어봤던 입장에서 겪을 경황없음이 걱정되기도 했다. 다행히 그에겐 형이 있었다.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 내가 가질 수 없는 그 모습이 조금은 부럽기도 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래 주변인에 가까웠던 난, 조금은 쭈뼜거리기도 했던 거 같은데, 금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곳에는 반가운 친구와 미안한 친구가 함께 있었다. 철이 없어서 잘 몰랐다며 넘겨 버렸던 그들의 경조사를 떠올리자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물론 친함의 정도에 따라 선택은 자유일 수 있겠으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그게 무슨 상관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참석할 수 있다면 해봐도 충분했을 텐데 당시엔 왜 그리도 안 갈 이유만 만들어댄 건지.
장례식에서 만난 내 또래의 아이들(사회적으로는 이미 중년이지만)은 비슷한 생각과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경험했으며, 육아를 병행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을 보통의 삶이라 불렀다.
"야.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 그거 평범한 거 아니더라."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가 결혼을 하고 출산을 경험하진 않는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을 거 같고. 그러니 지금의 주어진 삶 자체가 어찌 보면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고인이 되신 친구의 아버님께 죄송하지만, 우리끼리 참 많이 웃고 떠들었다.
오랜만에 묻는 안부야 뻔해서.
"뭐 하고 살아?"
"잘 사냐?"
"너 예전에 이랬는데."
같은 뻔한 질답이 오고 갔지만, 그것 만으로도 족했다.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괜히 어깨에 손을 한 번 툭 올려 본다거나, 슬쩍 스치듯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우리는 수많은 대화를 압축시켜서 나눴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웃음 뒤엔 슬픔도 있었다. 과거는 어찌하여 이다지도 빨리 변해버리는지 벌써 20년 이상 훌쩍 지나버린 고등학교 시절도 이젠 세세하게 기억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님 코끼리 만지듯 서로 다른 왜곡된 기억으로 웃고 떠들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웃음이라도 있어야 그 자리가 너무 무겁지 않아 질 거란 걸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나이가 된 걸지도 모르겠고.
오랜만에 새로운 이와 만남을 가지는 경험도 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소개를 통해 나름 편히 말을 나눌 수 있었으며, 다음을 기약했다. 물론 다음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한부 같은 느낌을 내포하고 있지만, 뭐 어떤가. 보게 되면 또 즐겁게 만나고, 아니어도 또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테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인상을 새겼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려 한다.
상주와 포옹을 했다. 그는 체격이 거대하고 마초남에 가까운 느낌이라 학창 시절부터 감히 포옹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초식남인 나와 달리 육식남에 가까웠기에 우리는 평행을 그리듯 하지만 근근이 연을 이어갔다.
상주와 맞절을 하고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가 손을 잡고 안부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포옹을 했다. 누가 시켜서 하라고 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다니. 그래도 좋았다. 마찬가지로 많은 말을 뒤로한 포옹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결혼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어색한 사이의 친구도 분명 있었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본 적 없던 사이. 그래도 얼굴을 알고 있었고, SNS가 없던 시절이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일거수일투족 정도는 구독한 듯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먼저 다가왔다.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자칫 어색하거나 무미건조해질 수 있을 상황이었음에도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느낌에 가까웠다.
예전 경험을 꺼냄으로 시작해 현재의 삶을 공유하는 것으로 대화는 일단락됐다. 그리고 웃음. 지나간 세월 속에 서로가 서로를 챙기지 않았던 상황들도 더 이상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겐 위안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었지만 가까웠다. 텅 빈 고속도로를 달리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길 잘한 거 같아.'
오랜만에 회귀한 기분이었다. 마치 20대, 30대 초 일 때의 내 모습으로. 그곳에는 그 모습을 기억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나 또한 그들의 그때 모습을 기억한다.
맞춰지지 않던 퍼즐을 혼자 끙끙 싸매다 해법을 찾아낸 순간처럼, 펑크나 있던 기억의 조각이 서로를 통해 맞춰졌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또 나만의 시간이 흐를 것이고, 그들만의 시간이 흘러갈 것이다. 다시 또 기억의 조각 중 일부를 소실하고 '뭐였지?'라며 찜찜하게 지내게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래도 이젠 괜찮을 거 같다. 소실된 기억 전부를 굳이 다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실된 기억을 복원하고 싶을 때쯤 아마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만나서 반가웠고, 다들 행복하게 지내기를 멀리서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