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body's watching me.

106 걸음

by 고성프리맨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 서시


으음.. 감히 대시인의 시구절을 가져다 쓰다니. 감당 못할 짓은 하는 게 아니랬거늘‼


부끄러울 일을 세는 거 자체가 부끄러운 게, 잠시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열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합친 걸 훌쩍 넘어서버렸다.


한점 부끄럼 때문에도 그토록 괴로워했다는데.. 나는 이미 부끄러움의 치사량을 넘어선 상태다. 그래도 생은 살아가야 하는 것. 나와 달리 훌륭한 삶을 살아온 대선배님들의 흔적을 보다 보면 숨어버리고 싶다가도, 이 또한 내게 주어진 생이니 오롯이 버티고 살아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첫 시작을 시로 시작하다니.. 그러고 보니 시라는 걸 안 읽어본지도 정말 오래된 거 같다.


고등학교 시절엔 국어 공부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끔씩 시도 읽고 그 뜻을 헤아려 본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그런 시간은 사라져 버렸다.


어디 시만 그러겠는가. 한때는 고전문학도 참 좋아하고 읽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든 행위를사치스럽게 생각했고, 문학에 투자하는 시간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정 지어버렸다.


낭만과 사유를 잃어버린 대가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습득했고, 그로 인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생계와 별개로 문학을 좋아하고 빠져들 수도 있었을 테지만,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가 버렸다.


뒤늦게 생업 전선에서 이탈하고 낭만을 찾아보겠다며 40대 원피스 해적 지망생이 되긴 했는데..


'이.. 이게 맞아?'란 생각이 참 많이 든다.


타인의 생을 볼 땐 쉽게 말할 수 있다.


"하나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 하며 사세요‼️" 라거나

"좋아하는 일을 좇다 보면, 돈이 저절로 따라온답디다."라고 하기도 하고

"40대, 다시 한번 공부에 미쳐라‼️"라며 명령을 내려보기도 하고


결국엔..


"아 다 귀찮다‼️ 그냥 먹던 솔잎이나 먹으며 살도록 할게요."로 돌아가게 된달까. 사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평생 솔잎 먹던 입장에서는 솔잎맛도 꿀맛이긴 하다.




내 인생의 장르를 해시태그(Hashtag)로 정리하면 대표적인 키워드가 뭘로 잡힐까? 브런치 스타일로 최대 3개까지만 지정해 볼까나. 해시태그를 어떻게 정해야 관심도가 높아질지는 모르겠으니, 일단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


40대 남자, 40대 위기의 중년, 영포티(Young 하지 않지만 여전히 영해 보이고 싶은 이 마음.. 정신 차리자.), 40대퇴사남, N잡러, 디지털노매드, 40대 백수, 웹소설작가, 웹소설지망생, 에세이작가, 작가지망생, 전직프로그래머, 현직백수, 애둘아빠, 셔터맨, 져니맨, 집돌이, INFP


으음.. 별로 마음에 드는 것들이 안 보이는데. 일단 떠오르는 대로 나열한 것들이 현재 내 머릿속을 부유하는 키워드들이렸다? 마음에는 안 들지만 차린 밥상에서 그나마 괜찮은 반찬을 골라내보자.


#웹소설지망생 #40대백수 #N잡러


이렇게 3개로 정한다면?


웹소설지망생인 A 씨는 현직 40대 백수로서 N잡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고 볼 수 있겠구나.


"아니지 아니야‼️ 정정이 필요해. 누가 보면 N잡으로 당당히 벌어오는 줄 알 거 아니냐고? 안 그래??"

"오호. 고마워 자기야. 현실을 아주 똑바로 알려주네? 역시 최고 ^^b"


인생을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그래도 과거의 삶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가까이 들여다봐도 완전한 비극까지는 아닌 거 같은데.


'아? 내가 그래서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건가? 지금 삶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이걸 몰랐네!'


"허튼수작 부리며 빠져나갈 생각 말고, 먹고 살 방법 빨리 찾아내‼️"


어째서인지 아내는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져버렸다. 나라는 사람에 한해서는 마치 각성자나 독심술사의 능력을 보유한 거 같달까? 아내는 역시 신이다‼️


은퇴시기가 늦어질 사람들은 내가 하고 있는 지금의 고민을 뒤늦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회사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기다렸다는 듯 중단되는 월급은 너무나도 마음을 차갑게 만들어 버린다. 어디 마음뿐이겠나? 몸은 더 추워진다. 배도 고프고.


나오기 전에 충분히 할 일을 왜 생각 안 했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늘에 맹세컨대, 생각'은' 해봤다. 정말이다. 행동을 많이 덜했을 뿐이다. 그 결과 지금의 찬밥신세가 되어버렸다. 역시 인생은 공평하다. 땀 흘려 일하지 아니한 자, 먹지도 말지어다. 그래서 최근엔 상체 운동을 하며 땀 정도는 흘리고 있다(?)




나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가장 먼저 선정한 #웹소설지망생. 취업준비생과 비슷한 맥락으로 아직 결과는 없지만 "놀고 있는데요?"라고 말하기 싫을 때 붙이기 좋은 표현이다.


지망생이 갖춰야 할 덕목 중 가장 큰 덕목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행동하기]이다.


모름지기 취업준비생이라면 가고자 하는 회사 또는 업종을 정해 그에 맞춰 능력을 만들어내고 면접을 봐야 하듯, 작가 지망생은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정 지은 웹소설이라 했으니 이런저런 핑계를 떠나 써내야 하는 게 필수요소인 것이다.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도 일종의 노력이긴 하다. 하지만 소설은 아닌 에세이에 가깝다. (물론 가끔 MSG를 치기는 하니 반소설로 봐도 될까?)


'그렇지만 써야 한다. 써내야 한다. 쓰자. 써야 해.'


날마다 나를 독려하는 말. 반대로 다그치는 말. 연습 또 연습. 재능이 부족하다면 노력으로 커버해야 한다. 어차피 상위를 노리는 것도 아니고. 평균의 함정에라도 빠져 보는 것이 목표지 않은가. 하지만 내 앞이 캄캄해 보이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이겠지?


북 치고 장구치고 해 봐도 결국 1인 역할극에 불과하다. 그 어떤 소리도, 질문도, 답변도 내겐 들리지 않는다. 닿지 않는다.


노력의 방향과 증명해 낼 결과가 없는 한,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거 아닐까?


10대에 이런 고민을 했다면,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하다며 일부는 좋은 평가를 해줬으려나?


40대에 들어선 난, 스스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아닌 척, 모르는 척해보는 것과 별개로 현실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쓰려한다. 써내고 있다.


정말로 별 거 아닌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이제는 0인 댓글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읽고 [좋아요]라도 눌러주시는 분이 있다.


정말로 별 게 아닐 것이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별 게 아닌 것들이 내게 힘이 되고 있었다. 경제적인 가치로 환산되지 않아도 분명 힘이 되고 있음을,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끼는 자아도취의 순간. 짧은 찰나의 도취감 덕에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Somebody's watching me.]


"좋은 한글을 놔두고 굳이 영어로 쓰다니."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왔을 뿐이다.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 굳이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누군가.


'그렇구나. 분명 내가 모르는 어딘가의 누군가가 나를 봐주고 있어.'


현실은 어쨌든 살아내고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지나고 나서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려면 조금은 고통스럽더라도 해내려고 하는 것들을 해내야 하는 것이겠지. 그러니 글도 포기하지 말고, 생업도 포기하지 않도록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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