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걸음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
어디선가 봤던 문장이라 간직하고 있었는데 찾아보니 영화에 나온 대사였다. 그 이전에 [시어도어 로스케]라는 시인이 한 말이라고 한다. 아직까지 은교를 보진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는 알고 있긴 하다.
당연하게 주어졌던 젊음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 물론 늙음의 정의라는 건 개인이 정하기 나름이니 "난 늙지 않았어‼️"라며 기세를 펼쳐볼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기세를 떠나 확실한 건, 시간은 계속해서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몸의 시간이 변했음을 가장 먼저 인지 중이다.
최애의 음식은 주로 고기류였다. 특히 돈가스를 좋아했으며 한때는 단일 종목으로 타인 대비 엄청난 인풋량을 자랑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그 좋아하던 돈가스를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할 때가 많아졌다.
여전히 입맛은 식탐을 간직한 탓에 음식을 보는 순간부터 침이 고였고, 바삐 손을 놀려 고기 조각을 입에 넣기 바빴다. 그리고 후회했다. 집에 돌아와 [백초]를 마시고 아픈 배 주위에 핫팩을 붙이며 속을 달래는 수밖에.
'다음부턴 절반만 먹자.'
하지만 다시 돈가스를 마주한 순간 다짐은 어느새 뒤로 물러나고, 식탐이 다시 내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후회하고의 반복.
점점 고기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이제는 건강을 위해 적당히 먹고 놓아주는 연습이 필요한 때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운동은 좋아하지 않지만, 걷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물론 이렇게 썼다고 해서 열심히 걸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몸이 찌뿌둥하게 느껴질 때가 많고, 목과 허리 쪽의 저림이 느껴지는 빈도가 늘었다. 평생 관심도 없던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딱히 무리한 강도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는데도 스쿼트로 인해 무릎에 부하가 생겨버렸다.
'아.. 아프잖아.'
건강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도리어 병을 얻어버렸다. 공부에도 때가 있다고 하듯, 운동에도 때가 있는 것일까? 일찍부터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집중력이 낮아졌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어도 지속 시간이 상당히 짧아졌다는 걸 느낀다. 한번 몰입을 하게 되기까지의 시간도 상당히 소모된다. 그래서 선택한 건 스스로를 [파블로프의 개]로 만드는 것이었다.
지속적으로 특정 행동과 노력을 반복하게끔 스스로를 바꿔놓으면, 최소한 그것만큼은 해내리라 생각했다.
대신 반작용으로 해당 루틴이 깨지게 되면, 하루를 망쳐버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주변 사람이 고생이다.
재미를 많이 잃었다. 원래부터 작은 일에도 흥미를 많이 느끼는 편이라 잡생각 하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갈수록 흥미를 느끼는 것이 줄어들고 있다.
"아니 무슨 고작 40대 초입이면서, 인생 다 산 것처럼 얘기해요‼️"
그러게 말이다. 아직 아는 것도 많이 없는데 벌써 다 깨달은 것처럼 행동하다니. 그래도 일단 지금의 느낌대로 기록은 해보겠다.
강제로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 하나인데, 쓰기 위해선 재미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내 글을 읽어줄 누군가에게도 재미가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술과 담배 같은 것에서 재미를 느끼지 않는 게 어쩌면 좀 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로 인해 많은 인간관계가 정리되었지만,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건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요즘 내가 느끼는 재미의 8할은 [관찰]에서 나온다. 가까이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다. 아이들이 하는 행동, 대화, 표정 등을 유심히 살펴보거나 아내의 행동과 얼굴도 유심히 살펴본다.
"뭘 봐?"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도 다정하게 뭘 보냐며 다정히 말을 건네주는 모습. 완전 럭키비키잖앙? >_<"
이처럼 가끔 눈이 마주치면 다정한 아내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난 행운아다.
같은 층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한분이 계신데 가끔씩 복도로 나와서 마주칠 때가 있다. 보통 할머니는 창 밖의 풍경을 멍하니 한참 동안 바라보곤 하신다. 처음엔 무얼 보는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굳이 찾아가서 "뭐 보세요?"라고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 정도로 넉살이 좋진 않다.
어느 순간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나를 인지할 때가 있다.
'어? 뭐야.. 할머니도 설마 이런 마음이신 걸까?'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던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 보니.. 이대로 할머니와 대화가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 그러게 시골에서 뭐 하고 사는 거유."
"젊어 보여요?"
"뭐 아닌가? 내 눈이 해태인가?? 자세히 보니 아닌 거 같기도 하구먼.."
젊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어르신들의 눈엔 아직 아이돌로 보일 나이 아니던가.
"아닌데요? 요즘 어르신들 임영웅 좋아합니다만?"
"아......"
나도 모르게 장탄식이 나왔다. 그러네. 요즘 어르신들도 젊은 사람 좋아하지 참.
여러모로 40대라는 건 조금 애매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살지는 개인재량이니 정확히 판단은 못하겠지만 80대 정도까지 수명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면 이제 절반 정도 살은 셈인가?
원래 중간 지점쯤 왔을 때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괜히 뒤돌아보며 "여기까지 온 것도 참 신기해 허허."라며 감회에 젖기도 하고, 아직 남은 거리를 보며 한숨을 지을 수도 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야 하는 건 중요한 문제 아닐까?
이 정도 살았으니 충분하다며 자포자기하고 싶은 맘은 없기에, 잘 살아갈 방법을 더 고민하는 게 현명한 것 아닐까.
몸과 마음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게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움츠러들 수는 없다. 지금도 자꾸만 늘어가는 나이에 기대어 나의 모든 포기 행위를 정당화시키려 하는데, 계속 그래서야 되겠는가.
우연히 찾아와 준 고마웠던 젊음의 시간이 있었듯, 앞으로의 다가올 시간도 고맙게 생각하자. 그리고 기록하자. 지나고 나면 다시는 지금의 감정, 느낌을 떠올릴 수 없을 테니. 그 기록의 끝에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자. 그러다 보면 늙음이 형벌이라는 생각 같은 건 안 하는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