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걸음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영화 [시]
정말인 거 같다. 꼭 시가 아니더라도 창작을 한다 하면 두려움부터 들기 시작한다.
'감히 내가 건드려도 되는 걸까? 써봐도 되는 건가?'
두려움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를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부터 아닐까. 어려서부터 눈치에 대한 이해를 요구해 온 환경 덕에, 소위 [튀는 행동]을 자제하려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난해한 수식을 바라보며 '어떻게 풀라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친절하게 수학 선생님이 풀이를 써줘봤자, 내 귀에, 머리에 닿지 않았다.
"자! 질문 있는 사람?"
눈치 보는 소리가 들려온다. 분명 소리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눈치 보는 행동은 청각화되어 귀로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솔직히 손을 들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내가 손을 듦으로써 돌아올 원망의 눈빛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질문 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질문자에게 향했다. 다양한 감정의 교차된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의 질문은 공교롭게도 내가 궁금해하던 부분이어서 탓을 하려던 시선을 거두고 선생님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자~ 또 질문 있는 사람?"
"저요. 다시 하나만."
- 아아아아아아..
- IC...
"자자 조용‼️ 질문자에게 집중!"
같은 아이가 두 번째 질문을 하자 대놓고 탄식이 들렸고, 심지어 노려보는 아이도 생겼다. 제삼자로서 그 모습을 보며 '질문 안 하길 잘했네.'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가락질, 시선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건 [영어] 때문이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영어라는 과목을 학습했음에도 문장하나 입에서 떼기가 참 힘들었다.
분명 수능에서는 꽤 괜찮은 점수를 받았던 거 같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벙어리였다. 한국에서만 있을 때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영어권인 외국 생활을 해보니 초라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었던 건, 같은 한국인들끼리 서로 눈치 보며 우물쭈물하는 처지가 비슷해 보였다는 정도?
무리 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영어를 사용했다. 유창하지 않은 발음과 어설픈 문장구성. 하지만 그는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의 노력으로 모두가 편해졌다.
"야.. 근데 저게 맞는 문장이야?"
"아니지 않아? 발음도 좀 이상하던데.. 그치?"
"어. 괜히 내 얼굴이 화끈해지더라고."
소곤소곤 들려오는 배경음 같은 목소리가 내 귀에 닿았을 때, 대화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대지 마. 무난한 게 최고야. 가늘고 길게 가자고."
입버릇처럼 오늘도 팀장의 훈시가 이어졌다. 회사 생활이란 게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킨 상태다 보니 참 쉽지가 않다. 그중에서도 내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의 말을 무시하기란 특히 어려운 일이다.
"프리맨. 잠시 면담 좀."
"네."
불길하다. 보통 이렇게 호출당하면 뭔가 일거리를 잔뜩 주던데. 아니나 다를까, 슬픈 예감은 어째서 틀리질 않는 것인지..
"이번 프로젝트 일정이 빡빡해서 그런데 지원 좀 해."
"어.. 저. 저번에 다른 거 요청하신 것도 아직 못 끝냈는데요.."
"아니. 그걸 아직까지 붙들고 있으면 어떡해? 아직도 못했다고?"
"아... 죄송합니다."
"얼마나 걸리는데?"
"한 일주일이요. (사실은 더 걸릴만한 분량이었지만)"
"안돼 3일 안에 끝내고 이거 해. 그리고 자꾸 지시사항에 토 달지 말고. 그거 안 좋은 습관이다?"
"네.."
속에서는 선과 악이 충돌하고 있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 지는 정의 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거 같다.
'이사님께 보고해 볼까?'
팀장보다 높은 직급에 있는 사람에게 직접 보고해 본 적은 없었기에,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그거 들었어? 와.. 완전 미쳤던데?"
"뭘요?"
"아니 다른 부서 A씨 말이야. 그렇게 안 봤었는데 부사장님한테 팀장 잘잘못을 따졌다더라고."
"정말요??? 그래서요?"
"뭐.. 정리는 잘됐어. A씨는 다른 팀으로 발령 났고. 그러게 생각 좀 하고 행동했어야지 쯧."
"아... 그렇군요."
하마터면 내가 발령의 대상이 될뻔했다고 생각하니, 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끝도 없는 야근지옥에 빠져버리게 되었지만.
인생을 돌이켜보니 늘 자제하기만 했던 거 같다. 최대한 튀지 않기 위한 삶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러지 못할 때마다 자책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고 있길래 자책만 해야 하는 거지?'
퇴사를 하고 귀촌을 결심하는 순간만큼은 자책하고 싶지 않았다.
"가서 뭐해먹고살게?"
"금방 돌아올 텐데 얼른 정신 차리고 돌아와."
부정적인 말 외에 응원해 주는 목소리도 있었다.
'내가 남의 평가 때문에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게 맞을까?'
어느 순간 다시 눈치를 보려는 습성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지독한 악연을 끊어내자.'
싹둑-
혼자서 작업(?)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여전히 눈치라는 걸 보고 살긴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하고자 하는 걸 포기하진 않게 되었다.
무수히 많은 부끄러움의 순간들이 지나갔고, 지나갈 예정이다.
날마다 침착한 마음으로,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글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약간의 홍보를 한다.
'나 이런 거 쓰고 있어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소곤소곤 알리는 행위랄까.
계속하다 보면 부끄러움의 정도도 조금은 약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부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선, 먼저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부끄러움과 눈치에서 해방될 수 없다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수많은 시선이 결코 나를 해할 수 없음을 믿자.
바라보는 시선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잘하는 거 외엔 방법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정말 최악의 상황은 아무도 바라봐 주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영화 [시] 속의 주인공이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무수히 많은 번뇌와 사색의 시간을 거쳐 쓸 수 있게 변했듯, 내게 주어진 이 하루의 글쓰기도 과정 중 하나임을 믿어보자. 그렇게 쌓이는 하루하루의 글이 결국 내게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는 그날을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