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그리고 비타민을 선물받았다.

113 걸음

by 고성프리맨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잘못말했다.


적어도 난 위로받고 싶은 때가 있다.


혼자서 모든 걸 감내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별개로, 타인에게 받는 위로.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한 마디에 '그럴 수도 있겠어.'라며 간직하고 있던 고민을 놓기도 한다.


어제는 그런 순간이었다. 말을 하면서 혹은 말을 들으면서, 더듬더듬 무언가를 만져가고 있었다. 단순한 일상 얘기로 치부할 수도 있었을 얘기 사이마다 와닿는 말이 있었다.


"우리같이 집안에만 있는 사람들은 가끔씩 햇볕을 쐬는 게 좋아요."


부정할 수 없던 말이었다. 늘 집에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햇볕을 쐬러 나가본 지도 오래된 거 같다.


"아침마다 달리기 하고 나면 근심, 걱정이 사라져요."


부러웠다. 무릎이 안 좋아지기 전에는 왜 달리지 않았을까? 믿고 싶지 않지만 약간의 퇴행성 관절염이 찾아온 이후 달리는 것도, 걷는 것도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하다.


언젠가의 장모님은 사위를 걱정하며 말 한마디를 보태셨었다.


"나도 무릎이 안 좋았었는데 수영하고부터 좋아졌다니까~ 꼭 해! 그리고 허리 안 좋은 거는 뒤로 걷기 하라구우~"


역시나 그 말도 웃으며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벌써 몇 년 전에 들었던 얘기 같은데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해보면 좋을 것도 알고 있고,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내 의지의 크기는 왜 이리 좁쌀 만한지..




"비타민B인데 한번 먹어봐요. 3번밖에 안 먹었는데도 활력이~"

"오..? (어디에 좋은지는 잘 모르지만 건강식품에 약한 편이다.)"


얼마 만에 받아 본 선물인지. 선물의 종류는 상관없었다. 받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 공짜 좋아하나 봐요?


공짜라서 그런 게 아니다. 평상시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고 믿는 편이다. 마음이 감사했다.




부부 모임이었다 보니, 나의 얘기 혹은 너의 얘기에만 집중하진 않았다. 각자의 반려자에 대한 이야기에도 집중했으며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부부로서 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타인을 보면 배우는 점이 있다. 특히 나의 사고로는 닿지 못할 생각과 배려를 하는 이를 만날 때면 많은 반성도 뒤따른다.


'어째서 난 그렇게 못했던 걸까?'


평소 모임 자리에서 과묵한 편인 아내가 한 마디를 꺼냈다.


"참 많이 다른 사람이지. 그래서 내가 양보해 주로."


부끄러웠다. 하지만 사실이어서 말의 무게를 감내해야 했다. 가끔씩 아내와 일대일로 대화할 때도 비슷한 얘기를 나눌 때가 많았다.


"오빤 진짜.. 똑같은 사람 만났으면 벌써 돌싱 됐을 거야. 당해봤어야 하는 건데 정말. 결혼 잘 한 줄이나 알고 있으라고."


예전 같으면 아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어떻게든 반격에 나섰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변했다.


끄덕끄덕-


"당신 말이 다 맞습니다. 옴마니 반메홈-"

"뒤질.. 죽을래? 제대로 말해."


가끔 입에서 거친 표현이 나오는 그녀지만, 그런 것만 일부 감수한다면 분명 결혼을 잘한 건 맞을 것이다. 아멘.




대화의 주제는 다양했다. 40대 부부.


"아니 우리는 30댄데요??"


그렇구나. 아내분들은 아직 30 대구나. 까먹고 있었네. 뭐 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에, 그깟 한 두 살..


"중요해요‼️"


가볍게 경제 얘기가 흘러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게거품을 물며 신나서 경제 얘기로 티키타카를 했을 텐데 다소 흥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돈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흘러가는 순리에 만족하게 된 탓이리라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의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늘 흥미롭고 재미가 있다.


다음으로는 먹고 살 얘기. 일상 얘기. 고민에 대한 공유. 살아온 이야기 등이 뒤따랐다. 조금만 더 털어놓다 보면 자칫 신파로 빠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 고질병 중 하나는, 과거의 불행이야기를 화두 삼아 불행 자랑을 하려 한다는 것이다. 불행도 콘텐츠로 사용하려 하는 이 몹쓸 병. 그냥 마음속에 담아두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넘기면 될 텐데. 어찌도 그리 티를 내보고 싶어 하는 건지 참.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오후 2시가 넘었다.


"세상에.. 시간이 벌써."


다음을 기약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말하는 걸 좋아하는 탓에 일어서는 게 아쉽긴 했다. 그만큼 사람이 그리웠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헤어질 땐 아무리 아쉬워도 쿨하게 헤어져야 해요. 그래야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대요."


쿨하지 못한 성격이지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아내를 바라봤다.


"뭘 봐?"


눈을 깔았다. 그냥 사랑스럽게 바라보려고 했을 뿐인데 풍기는 압도적인 시선 앞에 몸이 덜덜 떨렸다.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장난이야. 오늘 좋았지?"

"하하. 응. 오랜만에 외출한 거 같아."


트레이를 반납하고 출구로 나오자 하늘에서 햇볕이 쏟아져 내렸다. 살짝 뜨겁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제대로 된 햇빛. 아마도 예의 대화에서 들었던 햇볕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의식하게 된 거겠지.


"비타민 잘 있지?"

"어. 뭐 내가 다 먹었을까 봐?"

"허허. 농담도 참."

"의심했잖아악!?"


그럴 리가. 선물 받은 비타민 그대가 몽땅 먹어도 상관없다. 내게 당신은 그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니까. (찡긋)


내 표정을 보며 아내가 몸서리쳤다. 아마도 좋아서겠지.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였다. 잊고 지냈던 햇살과 누군가의 피로회복을 담당하고 있는 비타민까지 선물 받았던 날.


오늘 아침은 선물 받은 비타민 복용과 동시에 상큼하게 시작해 봐야겠다.


그런데 내 비타민 어디 갔어 여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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