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걸음
마침표를 찍어도 다음 문장을 쓰는 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전지적 독자 시점 448화]
악곡의 끝을 의미하는 [마침] 그리고 문장의 마지막임을 알려주기 위해 사용하는 문장부호 [마침표]. 살면서 몇 번의 마침과 마침표를 찍었을까? 자발적인 마침과 타의적인 마침이 존재했던 것 같은데. 어떤 비중이 더 컸을까?
웹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살면서 경험해 왔던 다양한 이야기를 버무려서 표현해 내기에 [마침맞다]고 생각했어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형식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길고 지속되는 형태의 이야기를 충분히 적을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한몫했던 거 같다.
'일단 써보자.'
나머지는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주리라. 이상한 믿음과 함께 쓰기 시작했고, 써가는 과정은 예상과 달랐지만 결국 소설의 [마침]에 도달했다.
그토록 재직 시절 부르짖던 키워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단어는 바로 [성장]이다. 나도 그도 그녀도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성장에 대해 갈망했었다. 당시에 생각했던 성장은 아마도 연봉이 오르고, 몸담고 있는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의 인지도도 올라가는 그런 모습을 성장으로 봤지 않았을까? 추가적으로 내 실력에 자신감도 생기면서.
퇴사 후 그토록 갈망하던 성장력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더 이상 회사 소속이 되기를 거부한 그 순간부터 어쩌면 내가 부르짖던 성장은 저 멀리 사라진 건 아닐지.
마음은 헛헛해졌고 일상은 무미건조해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정적으로 있는 삶도 무척이나 원했던 거긴 한데, 막상 이루어지니 아쉬웠다. 마치 나의 이야기는 더 이상 뻗어 나갈 곳이 없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터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할 곳도 없었다. 자칫 배부른 소리로 들릴 여지가 상당했기에 굳이 애써가며 미운털 박힐 이유가 없다고도 생각했다. 그럴수록 나의 고립은 깊어졌다. 고립을 의식하게 된 순간부터는 더 이상 축복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이대로 가라앉는가..'
40대 초. 지금의 내 모습이 누군가에겐 한심해 보일 수도 있으리라. 삶이 누군가의 만족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건 아니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여전히 나의 부족함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건 [불행]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불행함과 외로움은 비슷할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한 없이 다른 감정이리라.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익숙함과 격리되고 나면 외로움이 몰려오는 것은 아닐까. 내게는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그런 외로움을 감당해 낼 무언가가 필요했고, 마침 곁에는 책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온라인에 올려져 있는 소설.
아마도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출발 선이었던 거 같다. 이전에도 웹소설이 원작인 영상물을 접하긴 했었지만 이번만큼 몰입해서 본 적은 없었던 거 같다. 딱히 재벌이나 정치적인 이야기에는 큰 관심이 없었음에도 몰입이 깨지지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 밖엔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드라마의 회차 수는 한정적이었고, 아직 그 이야기에서 빠져나오기엔 아쉬움이 컸었다. 결국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고 그다음은 작가의 다른 작품까지 찾아 읽었다. 다 읽고 나서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렇게까진 아니어도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차마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왠지 확신을 하게 되면 반드시 지켜야 죄책감이라도 안들텐데, 자신감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웹소설 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며 읽기만 했다. 여전히 난 독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다음으로 마주한 웹소설은 [괴담 동아리]였다. 제목만 봐서는 유치한 괴담집처럼 보일 수 있는데, 제목과 달리 내용의 몰입도가 대단했다. 특히 오컬트적인 요소에 심취했던 적이 있는 내겐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타인의 대단함을 마주할수록 웹소설을 써보자는 목표는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소위 [기가 죽었다.]라고 하던가. 그 말이 딱 마침맞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은 보통 이 정도로 기가 죽으면 포기를 하곤 했었는데, 포기하려는 내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많았다.
40대에 현생을 살아내야 할,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허황된 [꿈]을 좇으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알바라도 하는 게 어떠냐며 조소가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조소 같은 건 날아오지 않았다. 전에도 한번 썼던 거 같지만 내 유일한 장점이자 단점인 [친구가 없다]로 인해 조소를 날릴 이가 없어서다.
만약 아내가 말렸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맘대로 하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줄 알고 안심하고 마음대로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집안에 틀어 박혀 글 쓰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아마 아내는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말 한마디의 죄로 인해 아내는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고 나는 무위도식의 편안함을 얻게 되었다.
하루는 아내가 그런 말을 했다.
"오빠.. 이제는 좀 바꿔서 해볼 때 되지 않았어? 어디 편의점이라도 좀 나가볼 생각 없어?"
"알잖아 내 퇴행성 관절염.."
"아니면 전공 살려서 뭐라도 좀 해보거나. 집에 공부방이라도 차려서 개인 코딩 과외라도 해볼래?"
"내가 낯가림이 심해서.."
"..."
말하면서도 아내의 표정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부끄럽게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덕분에 타이핑을 할 수 있어서 매 순간 감사할 따름이다.
얼마 전 썼던 글에서 차기작에 대해 써보겠다는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 쯤 최소 10화 이상은 썼을 법한 시기인데, 결과물은 0이다.
"실컷 웹소설 쓰고 싶다며 징징거릴 땐 언제고.. 하나도 안 썼다고요?"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브런치에나마 날마다 글을 한화씩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써지지 않는 걸 어찌 탓하겠는가. 하루에도 마음이 몇 번씩 오락가락하고는 있다.
중간에 중단을 하더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는 마음과 조금 더 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됐을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마음. 이 마음과 저마음은 전부 내게서 태어난 것인데도 어찌 이리 다른 것일까. 마치 마음이 독립적인 인격체라도 되는 것처럼 날마다 싸우고 있다.
그럴수록 심란해진다. 난 마음과 마음이 싸우는 행동을 [심란하다]라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이 마음도 맞고 저 마음도 맞는데. 단지 실행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인 내 탓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약간의 할 말은 있다.
'지금 쓰고 있는 글 또한 창작의 연장선임.'
이래서 내가 확언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건데.
마침표를 찍고 난 뒤, 다음 문장을 쓰기까지 참 힘들다는 걸 느끼고 배우는 중이다. 쉽게 시작하고 지속하는 능력을 가진 이를 부러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칭얼거리기만 하며 시간을 보내서도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글 한편, 한편을 마무리 짓고 있는 요즘 모습이 꼭 나쁘다고만 볼 수도 없을 거 같다. 칭얼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라며, 나 자신과 최소한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배가 고프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러 움직여야 하듯, 뭐라도 쓰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리라. 이런 일련의 행위가 나의 성장 어느 부분과 맞닿는 부분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은 써보자.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고. 그리고 휴식을 취하더라도 지금처럼 매일의 글쓰기는 손에서 놓지 말도록 하자. 그렇게 하나의 글쓰기가 완성되고, 다음의 글쓰기가 완성되는 한, 아직 나의 이야기는 마침이 된 것이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