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걸음
"자자 어서 나가요 다들~"
"아 왜요‼️ 집에서 쉬고 싶은데 왜 자꾸 나가래. 엄마! 아빠 이상해!"
"그럼 엄마도 나가고 빨리 다들 나가렴."
어이없어하는 모두를 전부 내쫓고 나자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됐다.
'럭키!'
오랜만에 들른 장모님 댁에서 드디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됐구나.
"다른 사람을 내보낼 게 아니라 본인이 나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내 집이 아님에도 그냥 집에 있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집돌이라 그 습성이 남았달까. 결국 모두를 몰아내고 강제로 혼자만의 시간을 득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왜 좋을까? 계속해서 혼자여도 좋을까?'
혼자여서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 같이 붙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어쩌다 주어지는 시간이기에 그 가치가 더 높게 느껴진달까? 막상 주야장천 혼자만 있게 된다면 조금은 외로울 수도 있을 거 같다.
여하튼 지금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 30분 정도의 짧은 텀이 주어졌지만 막간을 이용해 지금처럼 글도 쓸 수 있고, 여유롭게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제는 제법 날씨도 쌀쌀해졌다. 고성을 떠난 지 이틀 밖에 안 지났는데 그곳은 어떠려나. 대한민국이 좁은 나라라고는 하나 생각보다 지역에 따라 날씨가 참 다름을 느낀다. 특히 강원도 하면 무조건 추울 거라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의외로 서울, 수도권보다도 속초나 고성 쪽은 따뜻하다. 오히려 더운 날도 많고. 물론 눈이 오는 시기에는 무서울 정도로 적설량이 쌓일 때도 있지만,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지도 않았다.
아침에 글을 쓰니 참 좋긴 한데,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탓에 [의식의 흐름]에 가깝게 글이 쓰이는 거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예찬에서 갑자기 고성얘기로 전환까지. 아무튼 아침의 여유로 인해 글을 쓰고는 있는데, 생각이 감상에만 머무르는 탓에, 오늘은 왠지 가벼운 글이 써질 것 같다.
'엇. 나간 지 벌써 30분이 지났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돌아오기 전에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은데. 아무래도 아이들이 떠들고 아내가 말을 거는 환경에서라면 집중력은 순식간에 흩어지기 마련이다.
"핑계 대지 말아욧‼️"
집중을 못하는 이유가 마치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썼는데, 내가 원래 환경에 쉽게 지배당하는 편이라서..
이토록 나약한 내게 있어 [혼자 있는 시간]은 어느 정도 필수인 건 맞는 거 같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하려는 일의 완수여부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이런 부분까지 극복해 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AI가 부럽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영혼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띠디디딕-
'아아악.. 들어오는구낫! 결국 몰아내고 쟁취했던 혼자만의 시간이 이렇게 끝나버리는구나.'
"똑똑똑- 문 열어주세요."
못 들은 척하고 싶지만 아버지가 돼서 아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지.
"커피 배달 왔어요. 똑똑똑. 빨리요. 무거워요. 무겁습니다. 아버님. 아버지? 아빠? 뭐 해?"
방문을 조심스레 열자 둘째가 자기 팔뚝길이 만한 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 앞으로 들이밀었다.
"고마워. 이거 들고 온 거야?"
"됐고. 맛없는 사탕은 서비스입니다~"
'나간 김에 또 불량 식품 하나 샀나 보네.'
혼자 있는 시간의 평화는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함께 있는 가족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장모님 댁의 인터넷 사정이 불안정한 관계로 여러 번 [저장]을 눌러가며 글을 쓰고 있다. 혹시라도 쓰고 있던 글을 날려버린다면, 견디기 힘들 정도의 허탈함이 밀려올 거 같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임시 자동 저장]이 어느 정도 적용되는 관계로 완전한 글의 소실을 경험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애초에 싹을 잘라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시간의 장점 중 하나가 더 떠올랐다.
감정의 소거가 가능한 시간. 다시 말해 내 안에 쌓여온 일정량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털어내고 정비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단순히 비워내겠다에서 그치는 게 아닌, 감정을 글로 써내리며 다시 한번 복기해 볼 수 있는 기회.
'아.. 그래서 혼자 있으면 편했던 건가?'
"오빠.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이지 마. 원래 그냥 혼자 있는 거 좋아했잖아? 뭘 시시콜콜하게 되지도 않는 이유를 갖다 붙이고 있어 쯧."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는 내 허락도 없이 마음의 소리를 캡처했다. 이래서야 프라이빗하게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도대체 조용한 나만의 공간은 어디에?!'
"왜 혼자만 그런 공간 찾아? 난 벌써 십 년째 그런 공간이 없는데 ^^?"
이곳이 장모님 댁이었다는 것을 깜빡했다. 게임 속 캐릭터로 치자면 이곳에서는 본인의 능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는 소위 [버프빨]을 받을 수 있는 장소였는데, 그래서 내 마음의 소리를 더 잘 읽을 수 있었겠구나.
"아직 글 다 못 썼어? 뭐 이리 굼떠?"
"이게 글이라는 게 막 정해진 시간대로 딱 써지는 게 아니라서.."
"난 그런 거 모르겠고! 자꾸 정해진 약속 어기는데? 약속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약속한테!"
휴우.. 속이 후련하다.
???
"이 정도면 된 거 같아."
"뭐가?"
"원하던 짤도 사용했고 분량도 충분해."
"..."
결국 오늘도 완벽히 진지한 글을 쓰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다에 가까울 거 같다. 한 없이 진지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맥락 없이 드립만 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오늘 정도의 기승전이라면 됐지 뭐.
"결은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열린 결말]을 추구해 볼까 싶은데..
"^^?"
언제나 [결]을 생각하면 참으로 어렵구나. 혼자만 있다면 굳이 끝맺음이 없더라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혼자만의 시간은 끝이 났고, 어울림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다. 어울림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해야 하는 법. 그러니 그에 맞는 결말을 쓰는 능력도 필요하다.
"대신 다음 글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ㅎㅎ"
멀리서부터 누군가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일단 오늘의 일정이 있으니 오늘 글은 여기까지 써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