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tacognition

가볍게 떠올려 보기

인지의 시간 1

by 고성프리맨

오랜만에 소설 [링 1] 편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 만에 몰아치듯 오들오들 떨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내용을 알고 있어서인지 예전만큼의 무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공포의 감각에도 트렌드가 있거나 경험치가 적용되는 것일까? 시절이 변하는 것처럼 나의 공포심 또한 변해 있음을 느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명절이나 여름이 되면 TV에서 납량특집 영화가 방영되곤 했었다. 혼자 볼 자신은 없어서 주로 부모님과 함께 봤었는데, 잠자리에 들 때면 무서웠던 장면이 떠올라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땀을 한 바가지 쏟다가 잠들곤 했다.




그중에서도 [13일의 금요일] 시리즈는 내게 무수히 많은 땀을 쏟게 했던 영화 중 하나다. 시리즈 물답게 최근에도 이상한 콜라보 형태로 다양한 괴물 또는 귀신들과 싸우는 제이슨의 모습을 볼 때면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시리즈물 영화의 특성상 1편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은 반복되는 소재였다. 깜짝 놀래키는 포인트도, 죽는 시점도, 살아남는 주인공도 어느 정도 공식화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평소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난, 매번 감독의 의도에 충실하게 깜짝 놀라고 비명을 질렀다. 머리로는 예상하면서도 몸의 반응은 그렇지 못했다.




또 다른 무서웠던 작품은 [오멘] 시리즈였다. 절대악에 대처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다뤘던 영화로 기억되는데, 이러저러한 내용을 떠나 그냥 풍기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선과 악에 대한 개념도 정리되지 않았던 어린 나이에 접한 공포물이었기에, 영화 속 [악]이 표현되는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었다. 특히 사진을 활용해 다가올 죽음을 보여주는 모습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선연하게 남아 있는 장면 중 하나다.




오멘에서 알게 된 [샘 닐] 아저씨는 연기를 참 잘했다. 그의 광기 어린 호러 연기는 어린 날의 내게 충격 그 자체였었다.


[출처 -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7538533]


특히 [매드니스] 속에서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의 상황이었다면 저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까지 해볼 정도로 심각하게 몰입했었는데. 그 덕분에 호러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음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TV에서는 [전설의 고향]이 방영되고 있었다. 에피소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주인공 남자가 바위에 정을 내려치자 피가 흐르는 장면이 나왔었는데, 각 잡고 공포물을 보던 상황이 아니라서인지 한동안 악몽에 단골 소재처럼 그 장면이 나오곤 했다.


누구 때문에 보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운관에 비치는 해당 장면과 화면을 바라보는 나, 둘만이 대치하듯 서로를 쳐다보는 기억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형 [이블데드] 봤어? 안 봤으면 우리 집에서 보자."


우리 집엔 비디오가 없었다. 가끔 찾아와 영화를 보자며 꼬드기던 친척 동생 덕에 내용도 모른 채 이블데드라는 영화를 봤다. 당시 해당 영화의 감독인 [샘 레이미]가 훗날 [스파이더 맨]을 찍게 되리란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처음 접한 좀비물은 강렬했다. 특히 이블데드 2,3 편과 달리 1편은 공포에 치중했기에 여운은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다 보고 난 뒤 [좀비]에 대한 관심도가 치솟았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서 각광받던 장르도 아니었고, 해외에서도 B급으로 취급받던 터라 구하기엔 쉽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된 후, 좀 더 B급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늘었을 때 좀비물만 미친 듯이 찾아서 봤던 기억이 난다.




[환상특급]을 알고 있는가?


케이블 TV가 보급되던 초창기 시절, 캐치온? OCN?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였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연속성에 대한 걱정 없이 단편단편 보기 좋았었던 기억이 난다.


전설의 고향과 마찬가지로 환상특급에서도 특정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랑하던 남녀가 있었는데 나중에 배를 타고 동굴(?) 속 물길을 따라 이동하고 나니 여자가 해골로 변해버렸다. 특유의 지직거림과 색 바랜 듯한 영상 때문에 이 또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도 빼놓긴 아쉽다. 최근에 넷플릭스를 통해 해당 제목을 접한 분도 있겠지만, 원래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환상특급 같은 시리즈 물이다.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었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꽤 많다. 그중에서도 임종 직전 손녀와 영혼을 바꾼 할머니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기억의 나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리되지 않은 거친 생각의 조각을 글로 쓴다면 어떤 느낌일까?


일생을 영상화해서 볼 수 있다면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기억을 재조명해 볼 수 있을 텐데. 한편으로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수 없음이 안타깝다.


신간 서적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은 오래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아한다. 물론 다시 읽겠다고 마음먹고 책장을 펼치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고뇌가 필요하지만, 읽고 나면 새로이 느끼는 감정이 있다. 나는 그 감성을 좋아한다.


영화도 마찬가지.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려 보기도, 정리해 보기도 한다. 그 안에는 과거 속 내가 존재하며, 또한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 과거 속 나에 대한 이해를 뒤늦게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짐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공포]라는 키워드로 떠오른 기억들엔 하나같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는 거 같다. 독자라서 외로웠던 어린 시절의 내게 공포물은 많은 부분에서 위로가 되어주었던 거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보다 덜 외롭게 느껴지는 지금은 딱히 공포물을 잘 찾아보지 않는다. 외로움과 공포물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누구에게나 떠오르는 과거의 순간들이 있으리라. 별 거 아닌 기억이더라도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 보고 기록해 보는 건 생각보다 힐링의 순간이다. 우주 탐사 이전에 심해에 대한 이해도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려나? 여전히 나에 대해 아는 게 생각보다 없음을 느끼곤 한다. 앞으로도 종종 기회가 닿는 대로 기록해 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