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아요.

137 걸음

by 고성프리맨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5학년 때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3명씩 뭉쳐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기 바빴다. 딱히 대중음악에 관심이 없었던 난 그 노래가 뭔지 뒤늦게서야 알게 됐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0GHTHKrCbZw]


바로 이 노래였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반 아이들 모두가 열광하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고, 그렇게 나도 서태지에 빠져들었다.




서태지의 인기에 힘입어 반에서는 장기자랑 시간이 간혹 열렸고 그때마다 담임 선생님의 주최하에 짧은 공연이 열리곤 했다. 공연의 성격은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기분이 별로일 때가 있다.


소위 반에서 잘 나가는 (인기가 많은 측에 속하는 친구) 남자아이 셋을 결성해 메인 팀으로 정했고, 하필이면 아웃사이더에 가까운 세명을 서브 팀으로 정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 모르겠지만 불미스럽게도 아웃사이더의 정점을 찍고 있던 난 명예롭게(?) 서브 팀에 뽑혔다.


딱히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어 한 적도 없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댄스를 추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던 나와 나머지 두 아이는 얼결에 동물원의 원숭이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자 메인 팀 나와서 춤춰주세요~"

"끼야아!!"

"와아!! 멋지다!"


웃긴 게 뭔지 아나? 우스운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메인 팀의 화려한 동작을 눈으로 좇으며 열심히 동작을 외우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두 아이들도 비장한 표정으로 그들의 동작을 눈여겨봤다. 우리 셋은 딱히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싸력이 극에 달하면 서로 통하는 게 있는지, 말을 하지 않더라도 눈빛 만으로도 이심전심이 되는 것이다.


"자 서브 팀 나와라!"

"와하하하하하!"


같은 웃음이긴 한데 뭔가 메인 팀과는 결이 다른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리에게 메인 팀과 같은 기대를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리라.


무슨 정신으로 공연을 한 건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3분여의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 그저 열심히 앞선 팀이 보여줬던 퍼포먼스를 최대한 충실히 재연하려고 파닥거렸다. 긴 시간처럼 느껴졌던 3분이 지나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 다들 고생한 서브 팀에게도 박수!"


자리로 돌아와 앉았는데도 여전히 쿵쾅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질 않았다. 어차피 반 아이들에게 서브 팀은 잠시 웃고 즐기는 대상이었을 뿐인데도 그 잠깐의 역할에 난 몰입을 했었나 보다. 마치 내가 메인 팀이라도 된 것인 양.




하교 후 집에 누워서 서브 팀으로 뽑혔던 주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1. 볼품없는 옷차림

2. 친화력 없는 성격

3. 뚱뚱한 외모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질 만한 이유들이군. 이미 스스로 이유는 다 알고 있었다. 서브 팀으로 뽑힌 건 학급 전체에서 그런 내 이미지를 인정한다는 것과도 동일함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필 우리 집은 가난해서.. 왜 새 옷도 안 사주는 거야!'

'내 성격이 우울한 이유는.. 할머니랑 오래 살았기 때문이야.'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음식 밖에 없었단 말이야.'


변화할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럴수록 더 우울해질 뿐이었다.


서브 팀을 관두고 싶었지만 생긴 이유도 내 의지가 아니었듯, 탈퇴도 내 맘대로 할 수는 없었다. 당시 어린 내게 담임 선생님의 벽은 높기만 했기에 감히 그의 의지에 반기를 들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애써 그가 아싸인 나를 이런 방식으로 챙겨주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넘길 따름이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하기 싫어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음악은 듣기에 좋았다.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우리 때만큼 선생님들의 권위가 크지 않은 거 같다.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난 지금의 풍조가 그리 나쁘게만 느껴지진 않는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


라떼는 학교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건 중죄에 해당했다. 그 결과 12년 개근이라는 유일한 학창 시절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오늘 글이 학창 시절 겪었던 담임 선생님의 부조리스러움에 대해 쓰려는 건 아니다. 우연히 [난 알아요]가 알고리듬에 떠서 듣다 보니 잠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미 한참 지난 과거이기도 하고. 그런데도 여전히 생각나는 건 참 신기하다. 게다가 노래는 여전히 좋네.


다행스럽게도 초등학교 시절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휩싸여 있던 내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더 이상 과거처럼 원망하며 탓할 대상을 물색하지도 않는다.


'그래 그러면 됐지 뭐.'


오랜만에 서태지의 음악을 감상 중이다. 그래도 과거 덕에 좋아하는 가수도 생겼었으니 그것도 나름 행복한 기억 아닌가.


아직 우린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그 차가운 눈물은 닦고
Come back home

[Come back home 가사]


그의 가사처럼 지금도 여전히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존재하리라 믿어 보련다. 영원할 거 같던 암흑도 환해지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어둠과 밝음이 존재하리라 믿으며 오늘 하루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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