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상수화

139 걸음

by 고성프리맨

사람이 행동하는 데는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거 같다. 가령 브런치에 글을 처음 올려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도 무심결에 지나칠 법한 댓글 하나에서 시작됐다.


평소에도 내 글은 별다른 댓글이 달리지 않는 편이었다 보니 우연히 남겨진 댓글에 눈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적으로, [재미있게 읽고 있고, 브런치와 같은 글쓰기 플랫폼에서 올리면 좀 더 많은 이와 소통하며 지낼 수 있을 거 같다.]란 내용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댓글 하나가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도록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당시 응원해 줬던 응원자와는 소원해져 버렸지만 여전히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응원(應 응할 응 援 도울 원)]


평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 중 많은 수가 한자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익숙하게 알고 있는 단어도 혹시 모를 뜻을 찾아보는 편이다. 응원의 의미는 다행스럽게 익숙하게 알고 있는 뜻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브런치에서도 이전에 쓰던 글에서의 반응과 큰 차이는 없었다. 변하지 않으려 하는 게 있다면 이런저런 변수에 굴하지 않고 계속 쓰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이랄까.


어떻게든 쓰는 폼을 유지하고 싶었다. 잘 쓰고 못쓰고는 후순위의 문제였고 그저 떠올리고 상상하고 기록할 뿐이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것보다는 어떤 것이라도 쓰자에 가까운 결심. 호응을 떠나 계속 쓰기만 했다.


띠링-


평소와 달리 브런치에서 알림이 왔다.


[OOO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오?!"


나도 모르게 머리와 입이 하나가 되어 같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댓글을 열어봤다.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응원의 댓글이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응원의 댓글 내용은 생각하기에 따라선 특별한 내용이 아니었는데도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었다. 아니지. 나라는 개인의 평화롭던 마음에 물결이 일었다.


'내 글에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여기까지만 봐도 알겠지만 [고성프리맨]이라는 필명 뒤에 숨은 내 멘털은 상당히 약한 편이다. 다행히 글이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반응하지 않았을 뿐, 내 마음은 사춘기 소년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응원의 힘이랄까. 죽어가던 불씨에 공기가 불어와 불씨를 살려내듯, 다소 활력을 잃어가던 내게 동기부여가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실망스럽지 않게 잘 써보자.'




어쩌다 지인에게서 피드백이 올 때가 있다.


"잘 보고 있어요 ㅎㅎ"


심약한 내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얼굴은 부끄러워서 빨개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에서는 어지러이 흩어진 단어를 찾기 바빴다. 겨우 찾아낸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완성했다.


"고.. 고마워요 ㅎㅎ 아직 부끄럽습니다."


말을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속으로 꿀꺽 삼켜버렸다. 무릇 과함이 부족함만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기뻤다.


'지켜봐 주고 있었구나.'


다시 또 글을 써야겠다는 힘을 얻었다.


'너무 작은 계기로 동기부여를 얻는 건 아닐까? 형식적으로 한 말일수도 있지 않아?'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의심을 억누르며 '지금은 쓰기에나 집중하라고.' 하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렸다. 이유야 어떻든 쓸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니 된 것 아니겠나.




사람인 이상 노력의 결과가 빛을 발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노력은 사실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인데도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의 특성상, 언제나 내가 하는 노력은 특별하게 느껴지곤 한다.


그 틀을 깨고 좀 더 높은 시야로 바라보고 싶기에 항상 나보다 앞선 이를 떠올리고, 그의 작품을 살펴보는 편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게는 커다란 벽이 나타난다.


잘 쓴 작품을 읽다 보면 눈물 콧물을 쏙 빼다가도, 내가 쓰고 있는 글을 생각하면 아쉬워지는 것. 작품에 집중해 감상만 해도 충분할 것을, 나의 욕심이 크기도 하여라. 비록 내가 다가설 수 없는 영역의 글일지라도 마음만큼은 비등하게 가져보자며 스스로를 비루해지지 않도록 다독여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글을 쓸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어떤 날은 일찍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부러웠다. 한창 상상력과 두뇌의 작용이 활발한 시기부터 폭발적인 힘으로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보는 것이다.


'뒤늦게 글을 쓰겠다고 마음은 먹어서..'


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은 의심으로 가득해진다. 현실을 생각하다 보면 '지금 내가 뭘 하는 건가.'싶을 때가 더러 생기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글쓰기가 치유의 과정이라고 표현하던데, 어째서 내게 있어 글쓰기는 욕심이 묻어나는 제2의 자아처럼 변해버린 걸까.


'나의 글로 인해 혹시 모를 누군가에게 악영향이 간다면 어쩌지?'


다시 또 쓸모없는 혹은 쓸데없는 고민을 만들어냈다. 쓰는 것까지가 나의 영역이고 판단은 나의 영역이 아님을 망각하는 탓에 자꾸만 쓸데없는 고민을 만들어 냈다.


글을 쓰는 모습은 평온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상상과 투닥거리는 이상한 내가 존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지만, 평소와 달리 그 모습을 일부 글로 옮겨 적어봤다. 혹시 모르는 마음 때문이다. '글로 적게 되면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져본다.




한동안 응원의 댓글을 달아주던 분의 소식이 잠잠해졌다. 사실 이 부분은 내가 개입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달아주고 싶었던 마음도 그의 마음이고, 읽지 않는 것도 그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변할 텐데 나의 글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나.


어떤 이유에서건 관심이 사라지거나 떠난 이를 탓해서는 안된다. 관심이 사라지게 만든 것도, 떠나게 만드는 것도 모든 이유는 내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쓰는 것]이다. 쓰고 또 쓰고, 고쳐 쓰고, 새롭게 쓰고 반복하는 일. 외부의 변수에 의지하기 시작하면 글 쓰기를 지속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다독이고 새로 쓰고, 스스로에게서 위안을 얻도록 하자. 그러다 다시 응원을 받는다면 감사하게 생각하자.


일상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낼 가치가 충분하다. 어찌 보면 특별한 순간은 그런 지루하고 반복적이던 일상이 모이고 모여, 특정한 고점을 찍게 되는 그런 순간은 아닐까?


스스로를 응원해 주자. 나마저 등을 돌리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글을 쓸 수 없을 것이기에.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 주는 법을 익히고 배우자. 그 마음과 행동이 지속되는 한 분명 나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흔들리게 만드는 변수를 제거하고 쓰는 것을 상수화 시켰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질 거라 믿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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