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 씨? 도착했어요?”
”네. 덕분에요.”
”뭐야.. 전화할 줄 알았는데 걱정했잖아요. 그럼 잘 도착한 거 확인했으니.”
”걱정했어요?”
”그럼요. 20분 걸린다더니 2시간 넘게 전화가 없길래..”
”그거 알아요?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거든요?”
”아.. 그러네요? 하하. 되게 오래 안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내일 7시 알죠?”
”네 꼭 갈게요.”
”일 생기면 미리 알려주고요. 잘 자요!”
”정희씨도요. 좋은 꿈 꿔요.”
인호 씨나 나나 참 옛날 사람이다. 남녀 사이에 연락하는 방식은 왜 나이를 먹어도 대화의 기술이 늘지 않을까? 호감이 있다는 건 그래도 좋은 기분이다. 모든 호감이 연애로 이어지진 않지만. 그나저나 내일 야근은 포기해야겠네. 나도 남자 좀 만나야지. 일단 아침 알람은 맞췄고.
’그나저나 뭘 입지? 얼마 전에 산 옷이 있긴 한데 너무 어려 보이려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
”하아암.”
일단 좀 자자.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칼퇴 좀 해봐야지.
”저 팀장님. 이거 오늘까지 보여달라고 하셨던 기획안들 다시 만들어 왔는데 봐주실 수 있을까요?”
’아차!’
”당연하지. 정태 씨 이번 고객사에서 보내온 수정 시안 맞춰서 잘 바꿨죠?”
”사실 좀 어려워서 잘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검토해서 수정할 부분 알려주시면 마무리해서 다시 가져올게요.”
”네. 어디 봐볼까요 흠.”
정태 씨가 가져온 기획안 검토를 하다 보니 어느새 7시가 되었다. 오늘까지 꼭 마무리해야 하는 일인데.
”정태 씨. 일단 1차 검토는 했는데 수정할 부분이 좀 보이네요. 확인해서 반영 부탁해요.”
”넵! 빨리 반영해서 가져오겠습니다.”
약속만 잡으면 맨날 일이 생기네. 저주받은 것도 아니고 진짜.
”인호 씨? 안녕하세요. 도착하셨죠?”
”하이요 정희 씨. 네 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중이에요. 혹시 일이 늦어져서 전화한 거면 천천히 하세요. 다 알고 온 거니까요.”
”하아.. 미안해요. 칼퇴하려고만 하면 이상하게 일이 들어오네요. 분명 저주받았을 거예요.”
”에이. 근데 뭐 원래 일이라는 게 상황 가려가며 들어오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가게 닫는 시간 정했지만 못 닫을 때 많거든요.”
”위로가 되네요. 앗! 이따 전화 다시 할게요. 일단 저 빠르면 9시 정도 가능할 거 같은데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으니까 끝나면 연락해요.”
”고마워요.”
”휴.. 드디어 끝났다! 고생했어요 정태 씨!”
”오늘 철야해야 하나 싶었는데 일이 끝나긴 하네요 팀장님. 고생하셨습니다.”
”퇴근해요 저 약속 있어서 먼저 나가요!”
어느새 9시 30분. 저녁 먹기엔 이미 한참 늦었다. 인호 씨는 뭐 빵이라도 좀 사 먹었으려나? 성인인데 알아서 했겠지.
’인호 씨. 저 지금 끝나서 가니까 15분 정도 걸릴 거예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카톡을 보냈다. 마음이 급하다. 그래도 흐트러진 옷매무새 정리는 좀 해야지. 엘리베이터에 비친 모습을 보며 이리저리 둘러본다. 일을 많이 한 날은 확실히 옷도 좀 구겨진다.
’얼굴에 기름 생긴 거 봐. 아 정말.’
1층에 도착하면 화장실 좀 들러서 화장을 고쳐야겠다.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서 설렘을 느끼는 게 얼마만인지. 이성을 만나러 갈 때 느껴지는 긴장도 나쁘지 않다. 오늘은 늦어서 미안하니 저녁은 내가 사야겠다. 다이어트의 꿈은 이렇게 또 미뤄지는 건가. 인호 씨가 기다리는 카페에 도착했다. 막상 입구에 서니 긴장이 된다. 어제는 술도 마시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 수 있어서 괜찮았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좀 떨린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들어가자. 문을 열자 인호 씨가 보인다.
’뭐야.. 테이블에 뭐가 이렇게 많지?’
잔이 2개, 먹다 남은 빵 접시 1개. 절대 굶는 타입이 아니구나?
”인호 씨 오래 기다렸죠!”
”앗! 정희 씨 이제 왔어요?”
’인간아 입에 묻은 빵가루나 좀 털어내고 말해!’
”호호 미안해요. 정말 최대한 빨리 일 끝내고 온 거예요. 근데 아주 식사를 하셨네요?”
”식사라니요 간식이죠. 저녁 먹기 전 간단하게 웜업 했어요.”
”웜업이 아니라 과식 아니에요?”
”하하. 저 사실 먹는 거 엄청 좋아해요. 주점 하는 것도 맘껏 먹고 싶어서 차린 건데 막상 손님한테 대접하느라 그러질 못하고 있네요.”
”참 말을 잘하시네요? 오늘은 미안해서 제가 사고 싶은데 먹고 싶은 거 말만 해요.”
”정말요? 그럼 우리 그냥 호프집이나 갈까요? 오랜만에 매콤한 숯불닭구이가 먹고 싶네요.”
”인호 씨 그런 거 좋아해요? 저 며칠 전에 불로만 치킨 먹고 싶었는데.”
”불로만이라니. 우리 너무 옛날 입맛 아니에요?”
”나이로 보면 엄청 젊진 않잖아요. 맛있는데 나이가 뭔 상관이람?”
”가실까요?”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