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걸음
오늘은 디지털 노머드 코스프레하는 날. 널찍한 카페에 앉아 타이핑을 치니 평소 골방에 갇혀 있을 때와는 다른 텐션이 솟구친다.
아직 카페에서 즐기기엔 어린아이는 무리인가. 음료와 빵은 시키기가 무섭게 3분 컷으로 케이크를 흡입했고, 음료도 1분 컷으로 끝냈다.
"아빠 갑시다‼️"
"어? 아빠 아직 글을.."
벌써 지루해하기 시작하다니..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비장의 무기를 사용할 때다.
"유튜브 1시간 허락해 줄게."
"야호!"
1시간을 힘겹게 벌었다. 겨우 얻어낸 소중한 시간인만큼 빨리 써야 한다. 평소 느긋하게 쓸 때와 달리 지금처럼 시간 제약이 생길 때면 손가락이 바빠진다. 무슨 내용을 쓰는지 혹은 쓰려하는지 정리도 되지 않았지만 일단 치고 본다. 치다 보면 없던 길도 생겨남을 믿는다. 안되면 말고..
커피가 유명한 강릉답게 오늘 선택한 [테라로사 강릉공장본점]도 마음에 들었다. 공간이 널찍하고 커피맛도 마음에 든다.
"오빠.. 이상하지 않아? 오늘 비도 많이 오고 화요일인데 사람이 이렇게 많다고?"
"그러네. 휴가철도 아닌 거 같은데."
집구석에서만 있던 탓에 분위기를 몰랐던 건가?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여행에 제약을 둘 필요가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히려 비가 오기 때문에 카페에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
"으흐흐.."
유튜브를 틀어줘서인지 웃음이 새어 나오고 있다. 그 소리에 다소 안도감이 느껴진다. 아직 주어진 시간이 꽤 남았다.
오늘 강릉에 온 이유는 두 가지다.
1. 큰 아이 안과 진료
2. 저녁 식사 체험단
오전 일찍 안과 진료가 끝나서 저녁 식사 전까지 시간이 붕 떠버렸다.
'그래도 점심도 먹었고 카페에도 왔으니 티타임을 가지다 보면 얼추 3시 정도는 되지 않겠어?'
하지만 문제는 그 뒤. 남은 3시간 정도는 어디에서 또 때운단 말인가. 물론 아내와 단 둘이 왔다면 카페에서 몇 시간은 충분히 있을 법도 한데, 아이에게 그리해 달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을 씀과 동시에 정신 집중은커녕, 분산이 되기 시작했다.
1. 빨리 글 쓰자.
2. 다음 갈 곳을 정해야 해.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다 같이 놀러 다닐 수 있으니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오빠 멀었어?"
"어? 아니야. 다 써가."
다 써가긴 개뿔. 아직 한참 멀었다. 대충 일상적인 감상을 토대로 글을 써내리며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웬걸, 막상 쓰다 보니 그렇지도 않네.
1,000자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주변에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됐다.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릉 또한 여행지이다 보니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과 웃음이 가득하다. 반대로 불만에 찬 듯한 짜증을 마주할 때도 있지만.
살고 있는 고성에서 강릉까지는 80km 내외이다 보니 멀다면 멀고, 가깝다고 생각하면 가깝게 느껴진다. 차가 막히지 않는 고속도로로 달리다 보니 보통은 1시간 내외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운전을 즐겨하지 않는 입장에서 1시간 정도의 운전 또한 마냥 즐겁지는 않지만, 막상 오면 즐겁다.
어느 순간부터 강릉까지 범위를 넓혀 체험단 신청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뭐 되겠어?'에 가까운 마음으로 찔러보기만 했는데, 우연히 한 군데에 당첨되는 걸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뽑아주셨다. 덕분에 강릉도 생각보다 자주 오게 되었다.
매 순간 '잘 찍어야 한다.' 또는 '홍보에 도움이 돼야 할 텐데..'라는 사명감은 들지만 그것과 달리 결과물이 잘 안 나올 때면 속상해진다. 단순히 체험단이라 해서 얻어먹는다에 그치지 말아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짜 점심이 없듯, 내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해 주는 이상의 가치를 드려야 한다. 그것이 나 혼자 세운 나름의 원칙이다. 그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지만 체험 이후의 과정에서 피드백을 주고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은 모르겠다.
이런 주제의 글을 쓴다면 굳이 제목을 [강릉에서]라고 할 필요가 있나?
그냥 붙인 제목이다. 평소엔 집에서만 글을 쓰는 관계로 오늘처럼 외지로 나오면 괜히 마음이 들떠서는 어디에라도 티 내고 싶은 마음이랄까. 이럴 때 보면 여지없는 관종이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를 어떻게든 티 내려 하는 남자. 그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서 다 썼어 안 썼어? 이 뒤에 뭐 할 건데?"
글 쓰는데 집중하느라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했을 걸 뻔히 알면서도, 아내는 다정하게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 다.. 다 썼어. 조금만."
"벌써 그 말만 30분 넘게 한 거 알고 있어?"
"이번엔 진짜야.."
제발 진짜여야 할 텐데. 이쯤에서 글자 수 체크!
'2,300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쯤이면 접어도 되겠군. 하지만 이대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면 오늘 글은 잡담 수준을 벗어나긴 힘들다. 글 어디에도 딱히 생각이 드러나거나 철학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없잖나?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아서 이제는 다소 미지근해진 커피를 한 모금 가득 들이켰다. 새콤한 산미가 기분 좋게 혀를 감쌌다.
"아 그만해! 이거 내 폰이잖아. 나 혼자 볼게."
"뭐야. 같이 보라고 했잖아! 왜 자꾸 혼자 보는데!"
큰일 났다. 이제는 아이들까지 싸우기 시작했다. 유튜브 1시간을 허용해 준 것도 그 효력이 다해간다.
"엄마 언제 가요? 재미도 없어요."
'이 녀석아! 카페 들어온 지 1시간도 안 됐어! 맞다. 카페에 아트샵이 있었지.'
"얘들아 엄마랑 같이 구경 갔다 올래?"
"뭐야.. 혼자 또 빠지겠다고?"
이제는 이런 패턴이 익숙할만할 텐데도 꼭 다시 한번 나를 챙기는 아내의 따스함이란.
"내 걱정 말고 다녀와들."
"이게 지금 걱정해서 하는 말로 보이니? ^^"
자칫하면 공기가 차가워질 뻔했는데, 아이들이 엄마를 이끌고 아트샵으로 향했다.
'다행이다. 이제야 겨우 혼자가 되었어!'
그런데.. 어쩌지? 이미 글은 다 써버렸는걸.
아쉬워하는 행동과 달리 얼굴에선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제 글을 마무리 짓고 여유로이 커피도 한 모금 마시고, 웹소도 읽고, 눈도 좀 감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