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시간 9
징크스(Jinx)를 믿는 편이다. 뭔가를 하기 전에 반드시 치러야 하는 나만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 행여 그 과정을 건너뛸 경우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많이 불안하다. 해가 지날수록 징크스는 확고히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오늘의 글은 오래된 숙원인 징크스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위기상황이 올 때마다 주문처럼 속으로만 외우는 기도문이 있다. 평상 시엔 무신론을 자처할 정도로 모태신앙과는 멀어진 지 오래임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려 하면 짧은 단말마 같은 기도를 읊조린다. 기도의 내용은 별 거 없다. 특정 이름을 부르며 '살려달라. 도와달라.'와 같은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게 전부. 기도라기에도 많이 미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되뇌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안정되고, 비로소 행동에 돌입할 수 있게 된다.
- 너무 추상적으로 상황을 써놔서 뭔 소린지 잘 모르겠어요.
단순하게 생각하자. 뭔가 자신감이 필요한 상황에 나만의 주문을 외우는 징크스가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원체 겁이 많았다. 귀신을 본적도 가위에 눌리는 현상을 경험한 적이 없음에도 어두운 공간을 마주할 때면 덜컥 겁부터 났다.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이 봐왔던 공포영화의 장면과 소름 끼치던 초자연적인 존재가 떠오르며 마치 내 앞에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가족이 집에 같이 있음에도 목욕하러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간 괜한 상상 덕에 힘든 때가 생겼다.
여러 가지 공포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오랫동안 날 괴롭혔던 건 [눈 감고 머리 감기] 징크스였다. 눈을 감고 머리를 감다가 문득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이 아닌가. 눈을 떠야 할지 감고서 빨리 씻어내는 게 나을지 고민 끝에 다시 주문(?)을 외우며 나만의 퇴마의식을 행했다.
"훠어이! 물렀거라!"
- 퇴마의식치고 상당히 구수한 게 혹시 K-오컬트?
여하튼 기도빨(?) 덕에 상상 속의 존재와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샤워를 끝마칠 수 있었다.
로또를 습관처럼 구매한 지도 벌써 5년 이상된 거 같다. 구매는 매주 자동, 수동 하나씩 2,000원을 쓰고 있다. 수동은 특히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한 6자리 숫자를 사용 중인데, 이 또한 징크스라 할 수 있겠다.
당첨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인지 수동 번호에 의미를 부여했다. 모르긴 해도 나처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수동으로 구매하는 사람도 적잖이 있을 거 같은데, 이렇게라도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로또 사는 내 행동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걸까? 정확한 이유는 설명하기 힘드니 이 또한 징크스 중 하나라고 해두자.
해왔던 일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든 [규칙성]을 따지는 편이다. 가령 1-10까지의 순서와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사이에 이상한 [변수]가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으려 한다. 내가 생각하고 진행하려는 방향대로 가지 않을 변수가 발생하는 순간 그 하나 때문에 지구도 돌지만 나도 돈다. 정말로 도는 기분인 게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오빠.. 그거 병이야. 내가 아주 숨이 막혀서 진짜."
"이렇게 생겨 먹어서 미안."
"못 고치나?"
쉽지 않다. 한번 몸에 배는 게 힘들지, 습관이 되어버리고 나면 바꾸는 덴 몇 배로 힘이 들어간다. 물론 그런 수고로움이 들더라도 안 좋은 습관이라면 뜯어고쳐야겠지만, 별로 나쁘다고 생각이 들지 않기에 그대로 두고 있다.
여하튼 아내와 일을 하다 보면 부딪치는 순간이 생긴다. 당연하다. 사람마다 일을 해나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인데, 알면서도 아내에게 나를 따라 해 줄 것을 요구한다.
"내가 진짜.. 남편만 아니었다면 아오 남편시치."
미안함은 잠시 뿐, 여전히 내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에 따라주는 아내에게 감사해하며 마음껏 역정(?)을 냈다. 결국 잔소리가 심해지더니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만하지? 나 노력하는 거 안 보여?"
"알지 알지. 그래도 요것만 조금 더 해보면 어떨-"
"그 말만 벌써 몇 번째니? 네가 오빠만 아니었다면 넌 나한테.."
다행스럽게도 유교사상을 간직한 나라에 태어나 나이 덕을 봤다. 여기서 조금만 더 닦달한다면 아내는 눈으로 레이저 쏘는 것만으로 그치진 않을 게 분명하다. 이게 다 빌어먹을 징크스(?) 때문이다.
의미부여를 꽤나 하는 편이다. 별 거 아닌 일에도 '분명 일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며 찾을 수 없는 이유를 강제로 만들기도 한다.
A : "결혼식에 왜 안 갔어‼"
B : "아니 초대해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가요? 아는 사람도 아닌데."
한때 유행하던 밈이었는데, 내가 의미 부여하며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단번에 설명해 주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가 필요한 일이 아님에도 결론을 이상하게 내버리고는 주변에 툴툴댄다. 친구가 없는 나의 투정은 결국 아내와 아이가 고스란히 듣게 되고, 그들 또한 함께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이래서 예부터 [수신(修身)]의 과정이 잘되어 있어야 [제가(齊家)]를 할 수 있다고 한 건 아닐까?
일단 인간 수양이 덜된 상태다 보니 집안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 되지 않는가.
"오빠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네. 말 안 해도 알지?"
"... (모름)"
"뭐야 그 모른다는 표정은?"
"... (진짜 모름)"
"연기야 아니야? 표정 보니까 괜히 열받네?"
"... (모르지만 일단) 뭐?"
"지긋지긋한 조울증 좀 고쳐. 이게 뭐야 다 같이 눈치나 보게 만들고, 애들도 오빠처럼 키울 생각이야? 그런 생각이면 그렇게 계속 행동하시던가."
'이게 다 징크스 탓이다. 당연히 징크스 탓이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절대로 나의 문제가 아니야. 순전히 징크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아내의 말과 동시에 온 가족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순간적이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더 이상 징크스 탓으로 미뤄두고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아내와 아이 1, 아이 2의 얼굴을 살펴봤다. 어이없어하는 표정, 원망스러워하는 표정, 심드렁해 보이는 표정. 결국 모든 감정이 합쳐져 내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더 이상 징크스 탓 좀 하지 마.]
이 또한 인지의 과정인 것일까? 어째 글을 쓰면 쓸수록 부족함만 드러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나를 좀 돌아봐야겠다. 그동안 징크스 탓으로 미룬 채 정당화했던 내 행동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매사에 일어나는 일을 징크스 탓만 하는 것도 이제 끝낼 때가 된 건 아닐까?
"알면 잘 좀 하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