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tacognition

솔직히 요즘 좀 (즐|버)겁습니다.

인지의 시간 10

by 고성프리맨

"오빠가 쓰는 소설 속 주인공들, 특히 여자 캐릭터는 너무 비슷해. 뭐 남자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점이 많긴 하지."


알고 있긴 했는데, 어렴풋하던 상념이 음성으로 변환되어 내 귀에 공명되자 마음이 살짝 쓰렸다. 그래도 변론(이라 하고 변명)은 해야겠지.




[방어기제 발동]


"내가 아직 많이 안 써봐서 표현력이 부족해서 그래. 계속 쓰다 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것치곤 너무 비슷한데.. 게다가 너무 평범해."


울컥!


'난 성인이다. 성인이야.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내가 그토록 비웃던 역사 속 폭군과 다를 게 없잖아?'


스스로를 선동시켜 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지금 내가 조언했다고 삐진 거 아니지?"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삐지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말고 언제든 신랄한 비판을 해달라고! 오히려 바라던 바라 이거지. 너무 좋다 좋아. 야호!"

"Don't do that! 많이 긁혔구먼."


정곡을 찔리니 나도 모르게 펄쩍펄쩍 뛰었다. 분명 조언해달라고 얘기한 건 나였는데, '쓰지도 않는 당신이 뭘 안다고?!'라며 공격성을 띄게 된 것이다.




빠니티.jpg [솔좀즐 - https://uldd.net/shortsleeves/?idx=133]


솔직해지자. 사실 위에 짤은 기분과 반대되는 문장이긴 한데 자칭 [긍정주의자]인 만큼 부정의 기운을 뿜어낼 수는 없는 법이다.


'문제점은 알겠는데,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이상하게 쓰기만 하면 모든 등장인물의 개성이 사라지며 일원화되어버리는 마법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가끔 대하소설이나 역사소설 같이 수없이 많은 인물을 창출해 내는 작가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들의 경험은 나와 달리 몇백 번 이상 환생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것도 이전 생의 기억을 간직한 채.)


분명 그럴리는 없을터.


아무리 신이 존재한다 한들 빈부의 격차보다 심한 경험과 기억의 격차까지 밸런스 붕괴를 시켜놓진 않겠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세기전 1:1 - 4]


'밸붕을 시킬 리가 없으시지. 암. 그렇고 말고.'


무늬만 기독교인이었던 내게 다른 종교의 신이 어떤 모습으로 의사를 전달하는지 까지는 알지 못해 [성경]을 인용한 죄를 용서해 주시길. 여하튼 내 세계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의 탄생은 쉽지 않은 일이 분명하다.


'혹시... 배움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국어국문학과] 라거나 [문예창작과]에서 배우는 내용을 배운 적이 없어서 못하는 거 아니야?'


이 부분은 모르겠다. 하나 의지만 있다면 학점 이수를 하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단지 내게 뒤늦은 만학도의 길을 걸을 만큼의 열정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귀찮음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을 때 흔히 생기는 일이니 걱정 마시라.


'무턱대고 지금처럼 쓰는 게 답일까?'


그 결과 아내의 충직하고 직설적인 조언이 뒤따랐지 않나.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내의 말에는 깊은 신뢰를 보내는 나이기에 다소 속은 뒤틀려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덮어 놓고 쓰기만 하는 게 정답으로 가는 길이 아닌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손 놓고 있는 건 더더욱 아닌 거 같고.


'일단은 쓰면서 해답을 찾는 건 맞는 거 같아.'


역시나 대책 없이 일단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


'쓰기라도 하니까 비판도 받을 수 있는 거겠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조언이나 비난을 받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정면돌파가 필요하다. 물론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심지어 바뀔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아니할 수는 없는 법. 결국 오늘의 글도 스스로 다짐하고 정신 무장시키는 글이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글을 쓰는 일은 파도치는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짓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든다.


어차피 무너져 내릴 결과를 알면서도 순수 재미 때문에 포기를 못한달까?


다소 무용해 보이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단지 덜 죄책감 느끼며 시간을 흘려보내려는 선택만은 아닌 것이다.


'허송세월에 굳이 특별한 이유가 필요할까?'


아무리 좋게 포장해 봐도 김훈 작가님이 제목으로 지었던 [허송세월] 마냥 글쓰기가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지도, 삶을 유의미하게 바꿔주지도 못하는 거 같다. 그냥 글 속에 나의 바람과 다짐이 녹아 있을 뿐이다. 가끔은 꿈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이뤄질 수 없는 목표처럼 되기도 하며, 어떤 날엔 회상이 될 때가 있을 따름이다.


'그렇구나. 나의 글(특히 소설) 속 인물이 입체적이지 않고, 평범하고, 똑같은 이유. 나의 현재 삶이 특별하지 않고 단순함을 추구하기 때문은 아닐까?'


화자가 원치 않는데 어떻게 다양한 성격의 인물이 창조될 수 있단 말이야?


일단 나의 마음이 열려야 한다. 말뿐이 아닌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의 편협함을 조금이나마 지워내야 한다.

날마다 바꾸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는 것부터 진짜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


연관점 없어 보이는 파편의 증명을 해내다 보면 어느 순간 선으로 연결되고, 선은 면이 되고, 면이 입체가 되는 기적 같은 일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쓰면서도 모르겠다. 여전히 모든 것이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다시 소설을 쓴다면 결국 비슷한 성격의 주인공이 탄생할 테고, 다시 한번 좌절감을 맛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설 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말아주시길.


"오빠? 대체 누구한테 하는 얘기야? 노트북 하고 대화라도 하는 스킬을 배운 거야?"

"어허! 상상력!"


그래도 써보자. 지금의 내가 아닌 몇 년 뒤의 나라면 혹시라도 현재 고민 중인 문제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 되어 있지 않을까?


마치 절대로 괜찮아질 리 없을 거라 여겼던 감정도 시간의 마법 앞에서 치유됐던 경험처럼 말이지. 그전까지 다만 절필하지만 말자. 그냥 내 발 밑만 보며 걸어 나가자. 뛰지 못해도 괜찮으니 걷는 것마저 멈추지는 말자.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주사위에 표시된 숫자만큼 말을 이동시키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현재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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