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시간 11
"넌 반골이다."
어린 시절 외가댁에서 길러지던 내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반골(反骨)이란, 뼈가 거꾸로 된 것을 말하며, 속뜻은 명령이나 권위, 사회적 통념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본인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마주했을 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생길 법한 기질이며, 특히나 겉으로 반골 기질을 드러낼 수 없는 환경이라면 더욱 겉과 속이 달라지는 이중인격적인 면모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 나무위키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어린 나이였지만, 좋은 뜻이 아님을 단번에 느꼈다.
'반골...... 이 뭔데?'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기엔 너무도 어린 나이였기에 마음속 한편에 묻어 놓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때, 더 이상 외가에서 지낼 수 없게 된 난 결국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10년의 세월이었다. 여전히 내 맘속엔 '반골?'이라 칭했던 아버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다.
'혹시 내가 외가에서 지낸 걸 배신자처럼 생각하신 건가?'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서로가 불편해질 대화를 하는 건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나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눈치챘던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오랜 반골생활의 청산(?)을 무사히 마치고 20여 년 정도를 부모의 곁에서 지냈으니 나름 잘 지낸 게 아닌가라고 자평해 본다.
그런데 반골 성향은 여전히 내 삶을 따라다녔다. 아버지의 품과는 무관하게 마음속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YES를 외치면, 당당히 NO라고 외치는 내 모습. 머... 멋져(이건 아니고).'
반대를 위한 반대 같은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지 성향 상 [강요]와 [주입]에 기질적으로 발작버튼이 눌리는 느낌이랄까?
일단 사건의 면모를 면밀히 따져서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겉으로는 웃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끝없이 되새김질을 하며 납득이 될 때까지 의문을 가진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의견은 참조 정도 할 뿐이다.
결코 있어 보이고 싶어 패션반골이 된 건 아니라 이 말씀.
살다 보면 수많은 찬반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때마다 내 속의 반골기질은 빛을 발했다.
1. 사람의 말을 신뢰하기 전에 자료와 데이터를 신봉한다. 신뢰는 그 후.
2. 최대한 내 머리에 자리 잡은 진실을 무시하고 객관화시키려 노력한다.
3. 상대의 입장에서 시뮬레이션 해보기.
좋은 방법이라서 쓴 건 아니다. 단지 믿고 따르는 것 또한 [강요]가 아닌 [주체성]을 가지고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행히 지금 시대는 신분제(?)가 아닌 평등과 자유과 보장되는 세상이니까.
수많은 [강요자]를 만났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가? 자신의 삶보다 타인의 삶에 간섭함으로써 자존감을 지키려 하는 자가 많았다. 그리고 말과 다르게 강요를 일삼는다. 게다가 다름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생각과 신념에 반하는 자가 있다면 쉬이 분노에 휩싸인다.
"네가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하아.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알아들으려나?"
"그러니까 그건 확실히 잘못됐어."
방식은 다양했다. 돌려말하든 단호히 말하든 결국 본질은 찍어 누르기였다. 위치를 이용하거나 친분을 이용하거나 스스로를 기만하는 등 실로 수많은 방법이 있다 하겠다.
"어째서?"
'그에게 A가 중요하고 소중하듯, 내게는 B가 혹은 C가 때로는 D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일 뿐인데. 어째서 나는 그에게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것인가.'
"난 당신께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그저 나를 있는 대로 보아만 주십시오. 저는 저의 방식대로 살겠나이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 한번 불길에 휩싸인 마음을 가져버린 이후엔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가 어려운 법인지, 그는 갈피를 잃었다. 그의 생각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불쌍한지고.. 갈피를 잃은 양이 저기 보이는도다. 내가 돕지 아니한다면 누가 그를 돕겠는가.'
괜찮다. 돕지 않아도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만 보아 달라는 것뿐이다. 당신의 그런 호의가 오히려 숨이 막힌다고.
지금은 잘 보지 않지만 청소년기에 국가대표가 뛰는 축구대항전을 보는 순간은 언제나 가슴 뛰는 순간이었다.
"아! 이번엔 말이죠. 확실히 16강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자 보시죠. 경우의 수가- 이렇게만 된다면-"
객관성은 모르겠고, [경우의 수]를 얘기하는 내용을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미 16강 진출이 확정된 기분이 들었다.
'안 될 이유가 없잖아?'
그러다 경기 당일이 되면 [무 or 패]가 이어졌다. 02년도 전에는 웬만해선 승전보를 듣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매 순간 설레고 무승부라도 확정되면 경우의 수라는 [희망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속이 갑갑하고 우울한 날이 지속되었다.
'분명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고 했잖아? 대체 뭐가 문제였던 건데?'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 아닌 받아들여진 생각의 일부였을 뿐이었다.
문득 아버지 그리고 나름 친했던 적이 있던 상사가 생각났다. 지금은 나름의 이유로 다 헤어진 상태지만.
둘은 일면식이 없는 사이. 공통분모는 오로지 [나]라는 개인과의 관계성뿐이다. 어찌하여 둘이 생각났는고 하니, 하필이면 내게 [강요]를 일삼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강요되는 생각 또한 결국 폭력의 이명일 뿐인 것을......'
문득 나는 어떠한가에 대한 생각으로 전이됐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가?'
"......"
흐릿해진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흐려졌다. 폭력의 무서움은 대를 이어 전달되는 것인가. 무수히 많이 강요하던 모습이 스쳐 지나간 까닭이다. 그토록 강요에 반골 성향을 발휘하던 내가 결국은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강요질을 하고 있었다니.
반성하고 또 반성해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었음을 시인할 수밖에.
"오빠. 그러니까 스스로 먼저 행동거지를 잘하라고. 입으로 말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다.
"변할 수 있을까?"
"하기 나름이겠지?"
'내가 고민하고 겪어왔던 과정을 고스란히 유산처럼 아이에게 전달할 수는 없지.'
여전히 생은 쉽지 않은 문제를 던져온다. 내게는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 주어졌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