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의 시간 12
어울리지 않게 [성가대]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내 딴에는 노래를 좀 한다 생각해서였을까?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더랬다. 난생처음 [오디션]에도 참여했다.
"참가번호 19번! 준비한 곡은 '날 닮은 너'‼️"
그다지 큰 규모의 성가대는 아니었지만 절차가 까다로웠다. 그래도 시험은 시험인 만큼 엄청 떨리는 게 아닌가. 무대 앞으로 나가 핀조명 앞에서 진정되지 않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형편없었다.......
제대로 못했을 땐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된다. 여하튼 준비한 노래를 끝마치고 올라왔던 계단으로 다시 대기실을 향했다.
"고생했어~"
"감사해요."
다른 대기자와 함께 다음 참가자가 불러오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의 제목은 익숙한지만 제목은 몰랐던 노래 'Hero'였다. 노래가 끝나자 안에까지 들릴 정도로 큰 환호성이 들려왔다.
'내가 불렀을 때완 딴판이네.'
그 순간 누구보다도 환호를 받고 있던 그녀가 부러웠다. 어째서 신은 내게 [노래의 재능]을 주지 않았나. 아쉽게도 재능의 차이를 절실히 느끼고만 하루였다.
"자자! 내일도 공연해야 하니까 목관리 잘하고. 꼭 수건 두르고 있어."
연일 이어진 공연으로 인해 이미 정상적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던 성가대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불러주는 교구로 이동해 노래를 불러야 했다.
신기하게도 목은 쉬었지만 복식 호흡으로 부르는 노래는 어찌 된 일인지 들을만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인체의 신비인가???'
다른 선배들에겐 익숙한 일이었는지 그저 [목 관리]에 대한 중요성만 언급했다.
"그리고 공연기간도 곧 끝나니까 그때까지만 힘내자!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라고."
"네!"
이쯤 해서 밝혀보는 성가대가 유지되는 또 하나의 비밀이 있다. 그건 바로 [하모니]. 즉, 내 목소리가 온전하지 않더라도 많은 수의 사람과 합창을 하기에 어느 정도는 묻어갈 수 있다. 즉, 목 상태가 너무 이상해서 혼자 튀지만 않는다면 같은 파트원의 목소리에 어우러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쉬웠다.
나는 [테너] 파트에 속해 있었다. 여자로 치면 [소프라노]. 처음엔 마냥 좋은 줄만 알았는데, 딱히 그런 점은 없었다. 그나마 편한 점이 있다면 악보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부르는 음역대를 그대로 부르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었다. 테너 파트엔 한 명의 [빛나는 존재]가 있었다.
[하이 테너]라 불리는 이.
그는 높은 존재였다. 성량부터 나와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났고, 그의 옆에 서 있으면 내 목소리는 그대로 먹혀버리는 게 아닌가. 게다가 목도 잘 쉬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을 하면 할수록 그의 목은 단련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에 비해 내 목은... 내 목소리는...... 초라한 기분이었다.
"아⎯⎯⎯아⎯⎯⎯아."
"아⎯아⎯⎯."
"새벽이슬 같은⎯."
공연이 시작되자 걱정할 틈도 없이 노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만큼은 나 또한 성가대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가져야 한다. 비록 묻어가는 [목소리 1] 일뿐이지만, 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실망을 줄 순 없지. 물론 나하나 못한다 해서 망쳐질 무대는 아니지만.
노래는 절정을 향했고, 드디어 하이 테너가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때 관객들의 표정은 은혜롭다 못해 황홀함을 느끼는 이도 있었다. 나는 형식적이고 기계적으로 목소리를 보태며 이리저리 살펴보기만 했다. 집중을 잘못하자 결국 노래를 쫓아갈 수 없어 자체적으로 립싱크를 해버렸다.
째릿⎯.
옆의 동료가 눈치를 줬다. 관객은 몰라도 내가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걸 옆 사람은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찌 된 일인지 머리가 하얗게 되어버려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하필이면 그 순간 지휘자와도 눈을 마주쳤다.
'망했네.'
공연은 끝났고, 의기소침해진 난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교구를 빠져나갔다. 다행스럽게도 내 실수에 대해 크게 지적한 이는 없었다. 단지 스스로가 못 견딜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지상 최대의 목적인양 뒤도 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바깥공기는 차가웠다.
아차!
깜빡하고 목에 두를 수건을 못 챙겼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그냥 길을 걸었다. 다시 돌아가 수건을 주섬주섬 챙길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날씨는 추웠고, 하필이면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그해 가장 추운 하루였었다. 정처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기를.'
뒤엉킨 머릿속의 생각을 풀 자신이 없었다. 통째로 버릴 생각으로 그저 걸을 뿐이었다.
'그래. 나랑 맞지 않아.'
결국 파국인가. 생각의 정리와 동시에 문자로 통보했다. 잠시 후 답변이 왔다.
[그래. 고생했고 어디서든 잘해라.]
붙잡음은 없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였다.
문득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그 노래는 바로 위에 언급한 [새벽이슬 같은]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https://www.youtube.com/watch?v=0aw7YLVR8cQ
순간 멈칫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다 잊었다 생각했건만, 노래와 동시에 나는 성가대 시절로 이동해 있었다. 후회와 아쉬움으로 점철되었던 그 시간에 버려져 있던 '나'에 대한 기억. 비록 이제는 아무런 종교도 소속감도 없지만(게다가 노래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어렸었지.'
이토록 나는 많이 변했건만, 노래는 여전하구나. 물론 과거에 듣고 감동받았던 것보단 덜하게 되었지만. 우연히 떠오른 과거를 이제야 편히 놓아줄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