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tacognition

I know it when I see it.

인지의 시간 13

by 고성프리맨
[보면 앎.]

포터 스튜어트(Potter Stewart), 1964년 '자코벨리스 대 오하이오주 사건(Jacobellis v. Ohio)' 에 대한 판결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봐도 시원치가 않다. 어차피 말로는 결론이 지어지질 않을 게 뻔하달까.

그럴 때, 고전적이지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A picture is worth 1000 words.


즉, 백문이 불여일견. 판단이 잘 안 서고 헷갈릴 땐 이리저리 휘둘리며 듣기 전에, 그냥 그 상황에 빠져 직접 보는 게 가장 낫다는 말이다.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출처를 알 수 없는 보장되지 않은 이야기, '⎯카더라'로 분류되는 무성한 소문, 당사자와 교류 없이 북 치고 장구 치며 정해지는 결론 등.


혹시라도 오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라면 가장 치를 떨 일 아니겠나.

지금은 그럴 일이 없지만 예전 사회생활할 때면 [사내정치]라는 미명하에 여기저기 휘둘려 본 경험이 있다.

어떤 때엔 나 또한 물들어 상대방을 끌어내린 적이 있었으니, 그도 나도 결국엔 공범이 되었다.




-뭔 얘긴지 알고나 들읍시다. 시작부터 애매모호한 이상한 소리나 내뱉고.


요즘 나랑 아내가 즐겨보는 드라마가 하나 있다.

이미 유행은 한참 지났지만 명작은 그 결말을 알고 봐도 감동이 있는 법.


펜트하우스.png 두둥탁


-막장 드라마???


보기 전엔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아내도 똑같았다.


"나 막장 드라마 안 좋아해."


그런데 웬걸 3화 정도 보고 나서부터는 아내가 나서서 찾아보는 중이다.


"깔깔깔깔. 미쳤어! 와 완전 막장 중의 막장이야!"


박수를 치며 깔깔 거리기도 하고,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히려 나는 드라마를 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더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런데 여보. 당신 막장 드라마 안 좋아한다며?"

"이건 단순한 막장이 아니야. 모든 게 다 버무려져 있다고. 내가 안 본 상태에서 너무 넘겨짚었나 봐."


그렇다. 무성한 소문에 휩쓸렸다면 [펜트하우스]라는 드라마를 볼 일은 없었겠지.

역시 직접 보고 판단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나는 옆에서 드라마를 보다 말다 한다.

정확하게는 내 취향에 100% 부합하는 맛은 아니라서다.

그래도 극 중 주단태(엄기준)가 보낸 메시지는 내 맘에 쏙 들었다.


[벌써 떨리는군...^^]


아마도 본 사람은 "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끔 써먹어야지.




생각보다 넘겨짚는 경우가 참 많았다.

상대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흥. 이렇게 나오시겠다?'

'마이 컸네. 내 말에 토도 달고.'

'감히 내 의견에 반박한다고? 니가?'


일단 모든 게 내 위주고,

판단의 중심에는 '내'가 존재했다.


그의 의견이나 상황엔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사소한 일부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까지 모든 것에 똑같은 기준을 대입시켰다.

잘못된 기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브레이크가 고장 난 8t. Truck(... 나이는 숨길 수가 없는 법)처럼 멈출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오늘 대체 뭔 얘기를 주절거리는 겁니까아? 네?


별 거 없다.


-그건 앎.


어이없는 내 판단 기준을 내려놓고,

다른 기준으로도 찍먹 해보겠다 정도로 요약하면 되려나.


언제나 내 생각이 옳다고 정의한 것부터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 보겠다 정도로 이해해 주시길.


-단 한 번도 그대의 생각이 옳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그렇다면 너무 다행이다. 진심이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좀 더 두 눈을 크게 뜨고,

주어진 현상을 똑바로 마주하며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볼까 한다.

비록 지금까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어쩌면 진실은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알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존재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면,

최소한 [그것]은 나한테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부디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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