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etacognition

이제부턴 정말 밥벌이뿐이야.

인지의 시간 14

by 고성프리맨

"엄마 며칠 전에 전화 왜 그렇게 끊었어. 오늘은 또 왜 이리 힘이 없어? 어디 아파?"

-아니. 그냥. 넌 또 알바 구해서 혼자 하는겨? 고서방은 뭐 하고...

"흠. 괜찮아 난. 저번 알바보다 더 편해. 그리고 오빠는... 내 기사야. 출퇴근 다 시켜줘!"

-어휴...... 난 모르겠다. 니들 알아서 해. 그런데 자꾸 힘이 안 생긴다.


[며칠 전 아내와 장모님의 대화 중에서]




"오빠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무슨 할 말? 그냥 뭐 미안하지."

"미안하긴 해?"

"그렇지 뭐."

"엄마한텐 내가 잘 얘기해 놨으니까 넘 걱정 말어."

"......"


장모님 입장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얼마나 미울까 싶다. 딸 혼자 가계를 책임지고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고 하면 어느 부모가 좋아하겠나. 사위 입장에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조금은(?) 있는 법. 뭐 이런저런 우리 부부의 사정을 다 알릴 수는 없으니 최대한 덜 걱정시켜 드리는 방향으로 말을 드리는 수밖에. 물론 나 또한 아내에게는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늘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로 어느 정도 [밥벌이]를 하긴 해야 하는 거 같은데.


"당연하지! 3년 정도 잘 쉬었으면 일할 때도 되었지. 양심이 있어야지!"


아내에게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못한 내 꿈이 하나가 있는데 말이지. 그건 바로 [돈 많은 백수의 삶]이다. 하지만 현실은 두 가지 조건을 다 이루기 힘드니 결국 그냥 [백수의 삶]만 사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그건 님 빼고도 많은 사람이 꿈꾸는 삶이거든요?!


"오호라!" 그렇구나. 굳이 '나'라서 이런 삶을 좋다고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백수의 정의를 내리기란 다소 주관적이다 보니 지금 사는 모습이 완벽한 백수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표현을 따라보자면.


"오빠 혼자 단독으로 돈을 버는 게 있으면 백수가 아닌 거고, 반대면 백수지. 지금까지 전부 내 도움 안 받았던 적이 있어? 거의 나 혼자 다한 거나 다름없잖아. 그러니까 백수라는 거야."

"흐음. 음. 크흠. 그런가?"


틀린 말은 아니다. 아내가 없었다면 애초에 지금처럼 사는 건 꿈도 못 꿨을 게 분명하다. 아내의 희생을 기반으로 시간을 얻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인과율]을 믿는 편이다.

쉽게 정리하자면 [무조건 받기만 할 수도, 무조건 주기만 할 수도 없다는 것],

지금 아내가 내게 주는 것 이상으로 나 또한 주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어디서 또 허언이야?"

"걱정 마. 내가 꼭 손에 물, 조금만 묻혀가며 살게 해 줄게."


거칠다 못해 철수세미 같은 질감의 아내 손을 만지작 거리며 말을 내뱉자, 아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날 노려봤다.


"니놈 만나서 내 손이 이 모양 이 꼴이 돼버렸어. 어떡할 건데?"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


'당신 손은 연애 때부터 거칠었는데.'


말로는 못했으니 오늘부터 내 입은 비뚤어진 걸로 하겠다. 대신 글에서나마 직언을 써본다.


"아유! 니놈은 좋겠다. 손도 어찌나 이리 고우냐? 고생이라곤 진짜 하~나도 안 한 손이로구나! 내 젊음과 맞바꾼 손!"


'아니야 여보. 나 원래 손은 고왔어. 태생이 그래.'


물론 몸 쓰는 일이라곤 거의 해본 적이 없어서 손이 고운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 건 부인하지 않겠다.


"내가 오빠를 보면서 느끼는 게 하나 있어. 내가 사극 안 좋아하잖아?"

"그렇지. 경기를 일으키지."

"그 정도는 아닌데... 간혹 가난한 선비들 먹여 살리는 억척스러운 아내가 나오잖아?"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뒷이야기가 그려진다. 하지만 꿋꿋이 말을 이어가는 그녀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게 나야."

"그래도 날 선비로 취급해 줘서 고마워."

"......"


어찌 미안하지 않을까. 나도 아내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하지만 미안함 만으로 가족이 유지되진 않으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CEO에 빙의해 아내에게 몇 마디 건넸다.


"고마운데 하던 일은 잘해야겠지?"

"뭐?"

"기왕 시작한 거 집중해서 잘하자고.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알바를 하고, 나머지 일도 잘 끝낼 수 있을지 고민하라고!"

"지금 뭐 하는 짓이지?"


뭐긴 뭐야. 업무 지시지.


"지금 나한테 사장놀이라도 해보려는 거? 죽을래?"

"아유 그럴 리가요. 제가 감히 사장놀이를 할 깜냥이 되겠습니까."


그렇게 삼분천하가 막을 내렸다.




글은 가볍게 썼지만 결코 지금의 현실을 좌시 중인 건 아니다.


[25년도 키워드 : 밥벌이]


남편으로서 아내의 불안감을 잠재울 필요가 있다. 장인/장모님도 포함이다. 형님도 포함이고, 친척도 포함. 추가로... (끝이 나질 않는구먼.)


말은 이렇게 던져도 어디 [구인 공고] 하나 살펴보진 않았다. 아내와 달리 난 [온라인] 활동만 관심이 있으니까.


-정신 차리려면 멀었어 쯧쯧.


진심이다. 올해는 그래도 지나온 3년여의 시간보다는 물질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한번 내보고 싶다. 연봉의 양을 떠나서 말이다.


"연봉이 중요하지! 어째서 자꾸 피해나갈 생각만 하냐고!"

"어허. 조금만 시간을."

"계속 준 건 시간이 아니고 무엇이었지?"

"그래도 조금만 더."

"알았다. 휴."


이제야 알겠다. 노량진에서 버티는 사람의 마음을.


-아니 댁이랑 상황이 다르잖아요! 공부하는 거랑 똑같냐고?! 게다가 지금 이거 비하 발언 아닌가?


"아, 아니. 일을 그렇게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말실수를 조심해야 하는 건데. 아니지 글실수."


여하튼 올해부터의 방향은 조금 더 현실친화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고쳐먹어야겠다. 뭐 말 뿐으로 끝날 확률이 높긴 하지만.


올해도 벌써 13일이 지나가는 중이다. 늘 느끼지만 시간은 참 하루가 다르게 빨리 지나가는구나.


'그래도 나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줘. 꼭 당신한테 보답할 테니까.'


산뜻한 허언으로 오늘도 활기찬 하루를 열어본다.



이제부터짤.jpeg 밥벌이_희망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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