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풍만범한 인생이 되기를

186 걸음

by 고성프리맨
난 잘 살아, 내 걱정은 낭비야
니가 보낸 DM을 읽고 나서
답이 없는 게 내 답이야

IVE - Kitsch


지금과 다르게 20대 때는 남 소식이 그렇게 궁금했었다. 물론 아무 관계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 아닌 나와 깊게 연관된 사람에 한해서였지.


낯부끄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고 했었다. 타인의 마음보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게 우선이라는 [이기주의]가 우선한 까닭이다.


술을 마시면 술기운에, 때로는 밤이라는 시간이 주는 낭만에 혼자 취해 마음껏 감정을 드러냈다. 그 결과 그나마 아는 사이로라도 지낼 수 있었던 사람마저 멀리 떠나보내게 되어버렸다. 지금 와서는 그다지 중요하지도 의미가 있지도 않지만, 당시엔 의미부여를 가장한 이기심만 잔뜩 가지고 있었다.


"??? 지금 뭐 흘러간 사랑 얘기라도 꺼내는 중이신가 봐? 아주 미쳐가지고?"

"그런 거 아니야. 그냥 흘러간 연에 대해 잠시 떠올려 본⎯"

"그게 그거 아니냐고!"


아니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우연히 노래 가사를 보다가 과거에 내가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서라고 해두자.


괄괄하던 그 시절엔 그랬다.


"아니 문자를 보내면 재깍재깍 답을 해야 할 거 아니냐고!"


지금도 그런 성향을 다분히 가지고는 있지만, 상대가 내게 맞추는 게 당연함을 넘어서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아니 왜 저렇게 생각한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모든 게 내 위주. 내가 뭐라고. 그나마 상대가 착했기에 망정이지.

여하튼 20대를 이어 30대까지 이런 성향으로 인해 참 많은 고통을 받았다. 여러 사람을 통해 부딪치고 깨지며, [나의 허물]을 조금씩 벗게 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빠?"

"......"

"여보?"

"......"

" oo아부지?

"......"

"죽을래?"

"예?"


가사대로 실천했다가 하마터면 자연사당할 뻔했다. 침묵이 나의 대답임을 강조해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이해는커녕 그녀의 공격성을 키웠다.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봤다.


"뭘 봐?"


언제나처럼 다정하게 물어보는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가 백허그.


"험한 소리 나오기 전에 떨어져 주겠어?"


다가오던 동선 그대로 백스텝을 이용해 의자에 앉았다.


"오늘 뭐 문제 있어? 왜 자꾸 알짱거리질 않나. 물어보는 말엔 대답도 안 하고 쳐다만 보고 뭔데?"


아픈 몸을 이끌고 설거지 하는 그녀가 안쓰러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보통의 남편이라면 아내가 힘들어하고 아파할 땐 가사 분담 100%를 하겠지만, 나 또한 아픈 관계로 아내는 가사를 하고, 난 지그시 바라만 봤다.


"자세히 보아야 이쁘다, 당신도 그렇⎯⎯"

"쌉소리 할 시간에 집안일이라도 하나 하라고 좀!"


'드립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을 정도라면 많이 아프긴 한가 보군.'


시간이 많다 보니 이유 없이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가 많다. 오늘도 별 이유 없이 그냥 바라봤을 뿐인데, 싱싱한 활어처럼 펄떡거리는 모습이라니.




아내는 진심으로 아쉬워할 때가 있다.


"처음 사귄 남자랑 결혼까지 한 내가 인생의 패자야. 어쩌다가 그런 선택을 해선 이 고생을 하고 사는지..."


'패배자겠지...'


패자는 다른 뜻이라고 지적하려다가 분위기가 좋지 않은 관계로 멈췄다. 신세한탄이 이어질 때 함부로 끼어들었다간 하루가 뒤숭숭해질 수 있다.


"그런데 나도 처음인걸."

"자꾸 언짢게 하지 마."


아침을 다정하게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시간. 아이들이 등교를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별 이유 없이 투닥거리다, 풀어졌다가, 같이 유튜브도 보다가, 밥을 먹고, 아이들이 하교하면 간식 주고, 별 이유 없이 깔깔거리다가, 저녁을 먹으며, 잠을 잔다.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누군가 DM으로 굳이 안부를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중이다.


IVE의 가사와는 다른 결로, 딱히 답이 없는 게 내 답이랄까. 심지어 누구도 궁금해하지도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평범한 하루도, 특별한 하루도 결국엔 똑같이 주어진 24시간 이후 리셋이 된다. 물론 시간의 개념이란 상대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개념인지라 인간만이 따지는 거겠지만,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하루가 공평하게 주어짐을 믿으려 한다.


오늘처럼 덧없어 보이는 글을 쓰는 날도 있겠고, 어떤 날엔 알 수 없는 이유로 광기 어린 글을 쓰기도 하고, 언젠가의 그날엔 감성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글을 쓰기도 할 것이다.


'굳이 이런 글을 쓴 이유?'


쓰기 전까진 전혀 몰랐는데, 쓰면서 알게 됐다. 의미 없어 보인다고 여겼던 일 또한 사실은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류의 글은 [일기]에 가까우니 차라리 혼자 간직하는 게 나은 선택은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마저도 '굳이' 공개하는 건 나의 [욕심]이자 [관심구걸] 일 게다.


사실은 20대 때도 알고 있었다. 이미 멀어진 타인에게서 '굳이' 답을 들으려 했던 이유말이다. 그때의 나 또한 [구걸]을 하고 있었나 보다. 다만 그 형태가 아름답지 못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40대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을 무시한 채, 여전히 철딱서니 없게 살고 있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일 듯. 이제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을 답을 기다리는 대신, 현재 내게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과거의 부끄러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다. 부디 내년에는 지금보다 조금은 성숙한 내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순풍만범(順風滿帆) : 배가 가는 쪽으로 부는 바람이 돛에 차서 가득하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가는 형편을 이르는 말.


https://wordrow.kr/%EC%9D%98%EB%AF%B8/%EC%88%9C%ED%92%8D%EB%A7%8C%EB%B2%94/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