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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갈수록 재밌는 게 없는 걸까?

185 걸음

by 고성프리맨

언제까지고 재미있게 플레이 할 수 있을거라 믿었건만, [게임의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 나는 분명 게임을 엄청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하루종일을 넘어서 몇날 며칠동안 계속해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던 시절도 분명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마찬가지로 사라진 재미 중 하나는 [노래방에서 노래부르기]이다. 한때는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마지막은 "노래나 하러갈까?"였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서 부르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절대로 안가.'라는 생각만 들다니 나도 참.


이런식으로 잃어가는 재미가 꽤 많아지는 중이다. 과거엔 분명 좋아하고 즐겨하고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었던 재미의 요소들이 더이상 내게 큰 재미를 주지 않는다.


점점 감성의 영역이 닫혀가는 건 아닐까 싶어 한편으론 두렵다. 이러다 글도 못쓰게 되면 어쩌나 하는 근원적인 두려움마저 생긴달까. 알게 모르게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져간다.




'이게 다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강제로라도 취미를 만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잠깐 흠칫! 하다가는 금새 '귀찮아.'라며 생각을 접었다. 원래부터 집을 참 좋아하긴 하는데, 이대로라면 거의 지박령에 가까울 정도로 활동반경이 좁혀질 것만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말이다.


'집에서 뭔가를 하는 게 즐겁잖아?!'


그랬다. 별로 하는 게 없지만 집에 있기만해도 웃음이 나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비가 오는 날은 창밖으로 내리는 비를 잠시 감상하다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고, 눈이 오는 날도 창밖을 잠시 내다보다가 다시 키보드를 치고, 여느날에는 파란 빛의 바다를 슬쩍 보고, 또 언젠가엔 멀리 능선을 그리는 산의 자태도 감상해보곤 다시 컴퓨터 앞에 웃으며 앉는다.


등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다에서 노는 것도 아니다. 잠시 멍하니 바라만 보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것도 매일 보는 것이 아닌, 어쩌다 슬쩍 보는 것만으로도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야말로 천상 [집구석 인간]의 본보기와도 같구나.


하지만 그런 날 바라보는 아내는 무표정하다.


"뭐... 불만 있어?"

"......"


평소와 다르다. 뭐지 이 느낌은? 다시 한번 건드려보자.


"왜? 뭐? 응?"

"......"


침묵이 지속되면 불안감이 고조된다. 내가 하는 침묵엔 관대하지만, 그녀의 침묵엔 조바심만이 날 뿐이다.


"나가서 외식할까? 날씨도 꾸물꾸물한데."

"오빠."

"어?"

"정신 좀 차려."


평소와 어딘가 다른 그녀의 심각해 보이는 말 앞에 나는 그만 털썩 의자에 주저 앉아 버렸다.


'그래. 내가 너무 까불었어.'


그녀의 시선에 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인 걸까?

어떻게 보였길래 평소와 이리도 달라진 거지?


"오빤 내가 밥을 해준다고 해도 왜 자꾸 나가서 사먹자고해? 남들은 해주지 않아서 걱정한다던데. 참 이상해."

"아니 그건. 내가 회사 생활하면서 하루 한끼는 꼭 사먹던 게 습관이 돼버려서 그만..."

"지금은 회사원 아니잖아. 그치?"

"응."

"잘하자."


그러고보니 [외식하는 즐거움]은 아직 놓지 못했구나.


"나도 밖에서 사먹으면 편하지, 맛있고. 그래도 매일 그렇게 쓰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야."

"알지알지."

"나 진짜 진지해. 장난처럼 넘어갈 생각마."




그랬던 아내가 동네 언니(라 칭하지만 사실상 엄마뻘이시다)를 만나고 오더니 대뜸 이러는 게 아닌가.


"그동안 내가 너무 못 사먹게 했지? 아휴.. 나도 너무했네. 먹으면 얼마나 먹겠다고. 언니가 그러더라. 나이 드니까 나가서 사먹고 싶은 게 없대."

"그래?"

"응. 소화력도 떨어져서 사먹기만 하면 얹히는 느낌이라 주로 해먹는데, 그것도 하루 두끼만."

"......"

"오빠도 얼마 안남았잖아. 나중엔 분명 먹고 싶어도 못 먹는 날이 올텐데. 그래도 그날이 좀만 더 빨리왔으면 싶네."


섬찟한 소리!


그런데 일부 공감되긴한다. 그나마 아직까지 간당간당하게 유지되는 외식의 즐거움이 느껴지긴하는데, 솔직히 예전만 못하다. 막상 아내가 멍석을 깔며 "뭐 먹을래?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말해."라고 해도 바로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생각해낸다는 것이, "순대국밥이나 먹을까?" 또는 "칼국수 콜?" 정도다. 그러면 아내는 흔쾌이 "콜!"을 외치는 것이다. 순대국밥과 칼국수는 아내의 최애 음식이기에 웬만해선 거절이 없을 음식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두 음식이 나의 최애 음식은 아니다.


"아니 오빠 먹고 싶은 거 먹지."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


그러다가 문득 아내가 만났던 지인 언니의 얘기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느리긴 해도 조금씩 내게도 현실로 다가오는 중인 듯한 이느낌. 서글프기도 하고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몸이 안 받아서 외식을 줄이게 되면, 비록 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사라져 버리겠지만 가계경제엔 보탬이 될테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음식점에 도착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전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그 언니분이 외식 안 받는다고 하시던."

"응."

"나도 그렇게 돼가는 중인가 싶어서."

"그럼 좋지 뭐."

"그런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종업원에게 다급하게 말을 건넸다.


"여기 순대국밥 2인분 순대만 넣어서 주시고요. 오징어 순대(소) 한 접시도 부탁드려요."


주문과 동시에 이상한 기분이 들어 아내를 쳐다보니 어이없어 하는 것이 아닌가.


"뭘 봐?"

"오빤 글렀어. 뭐 소화가 안된다고? 그런 사람이 추가로 오징어순대까지 시킨다고?"


'그러게 나 분명 방금 전까지 입맛도 없고 소화도 잘 안되는 거 같아 우울해 했는데.'


"착각이었나봐 ㅋ"

"아무리 그래도 글에 'ㅋ'가 뭐냐! 암튼 휴... 외식 좀 줄여. 몸에도 안 좋다고. 쩝쩝쩝. 맛은 있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사이 좋게 시킨 음식을 싹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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