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걸음
평균의 질을 높이기.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의 질이 [기준점] 이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다. 어떤 대상의 가치를 헤아려 정한다는 [평가] 앞에서 어떻게 하면 당당해질 수 있을까?
"우리 언제 타로나 보러 가자. 올해 초에 봤던 거 생각해 봐 잘 맞지 않았어?"
"지금 내가 진지한 거 안보-"
"됐고 타로나 봅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차피 혼자 고민해 봤자 결론도 나오지 않을 질문 아니었나? 그래 이럴 땐 무속의 힘이 최고시다!
'이건 분명 새해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재미로 보는 신점운세와도 비슷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재미로 볼걸?'
여하튼 일자는 정하지 않았지만 타로나 한번 보러 가야겠다.
"어떤 게 궁금하시죠?"
수정구는 없지만 싸늘한 기운을 뽐내는 타로마스터의 매서운 눈빛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싸늘하다.
"저기.."
나 또한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뜸을 들였다.
"나는 이미 준비되었다. 너의 고민을 털어놓거라!"
"예압! 어찌하면 쓰는 글의 질을 높일 수 있을까요?"
"......"
"......"
"돈 안 받을 테니 우리 가게에서 나가줄래요?"
이딴 질문을 해봤자 타로마스터에게서 무슨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혹시 또 모르지. 타로마스터가 문예창작과나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면? 잠시 상상을 해봤지만 이딴 질문을 해서는 안된다는 결론만 확고히 생겼다.
"자기는 어떤 거 물어보게?"
"뭐 금전운? 그게 제일 궁금하잖아."
"연애운은?"
"뭐? 그러길 바라는 거라면 난 언제든 준비돼 있어. 말만 해."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오빠는 뭐 물어볼 거야?"
"그게, 사실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화마(火魔) 같은 것들을 몰아내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
"... 그냥 나 혼자 갈게."
"나도 금전운이나 물어볼까? 진로라던가?"
역시나 추상적이고 인생의 방향을 깊게 상담해 주길 바랄 수는 없는 거겠지? 바라서도 안되고. 그런 건 애초부터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법이니까. 40대나 되었으면서도 나라는 사람도 참.
그런데 근본적으로
"25년도에는 얼마를 벌 수 있습니까?"라거나
"25년도에 연애운은 좋을까요?" 혹은
"25년도에 제대로 된 글은 쓸 수 있을까요?"
같은 질문을 해본다 해서 내 인생이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그런데 저기 있으면 안 될 질문 같은 게 껴 있는 거 같은데...
개인적으로 아직도 궁금한 게 많은 나이랄까. 부끄럽다.
'25년에도 나 똑같이 살고 있으면 어쩌지?'
왠지 특별한 각성이 없다면 똑같이 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난 만족스럽지만, 나를 지켜볼 아내는 속이 터지겠지. 멀리서 내 소식을 전해 들을 장인・장모님 또한 마찬가지 실 테고. 형님도 추가.. 친척들도 추가...
[내 인생이니 내가 알아서 살게!]라는 기조가 바뀐 건 아닌데, 신경이 안 쓰인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사지멀쩡한 주제에 방구석에만 있는 내 모습에 의아함을 표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닐 터. 그러다 문득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좀 더 열심히 써보자!'
-아니 지금까지는 뭐 한 건데?
놀멍쉬멍 했다. 헤헤헤. 그 시간이 좀 많이 길어졌긴 하다만. 그런데 글쓰기에 있어서 열심히 한다는 건 대체 뭘까? 단순히 [분량]이 늘어나면 잘하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걸까? 마치 [양보다 질!]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질보다 양이겠지...
회사 다닐 때 가장 싫었던 게 떠오른다.
"자 오늘 저녁 뭐 먹을까요!"
이 말인즉슨 "오늘 야근 콜?!"이 내포되어 있다. 저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거렸던가. 바쁜 약속도 없고, 빨리 갈 이유도 크게 없긴 한데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그런 내 바람을 순식간에 뭉개버리는 잔혹한 말이었다. 어차피 내일도 야근할 거고 내일모레도 야근할 텐데 '나는 대체 얼마나 더 회사에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건가!'라던 과거 속 내 모습.
'지금 내가 열심히 하자고 하는 게 저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지 않나?'
'생산성에 대한 고려가 더 중요한 것인데, 양으로만 승부 보려 하는 하남자 같으니라고.'
"그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 얘기지. 지금 최소한의 양도 안 쓰지 않나?"
"어..."
"아니 일단 최소 기준에 해당하는 분량은 써놓고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어... 어..."
그렇다면 이렇게 하자.
내년 상반기 동안은 최소 분량을 채우고, 하반기엔 질을 올리자! 간단히 해결! 될 리가 없지 않나. 그래도 이게 맞다. 일단은 상반기가 됐건, 하반기까지 사용하던 하고자 하는 목표에 근접한 기준을 채워야 한다. 당장에 평균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딱히 없으니 일단은 그토록 싫어하던 [야근 정신]에 입각해 엉덩이가 좀 더 무거워지는 수밖에.
'그나저나 타로 보러 가서는 무슨 고민을 물어보지?'
이미 자문자답으로 결론은 낸 거 같은데.
'아내나 질문 하나 더 하라고 하지 뭐.'
그렇게 가성비 좋게 무료로 혼자 신점운세를 봐버린 40대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