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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이 40대 남자에게 끼치는 영향

188 걸음

by 고성프리맨

[지이이이잉⎯ 지이잉⎯⎯⎯]


"전화 왔어~"

"응! 알았으니까 쉿!"


아침 일찍 걸려온 전화를 받은 아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기 시작했다.


"네.. 네네. 아- 네...... 휴. 네? 네에."


마치 모스부호처럼 느껴지는 단답형으로 이어지는 [네]와 [한숨]의 콜라보레이션. 긍정의 의미를 뜻하는 '네'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무슨 일이 생겼나?'


불안감은 놀랍도록 빨리 전파되는 습성이 있는 관계로 막연한 두려움마저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전화를 끊은 아내의 얼굴엔 극도로 불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런 표정 지으면 빨리 늙어."

"휴⎯⎯⎯⎯..."


'평소와 다르다?!'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분위기 반전을 꾀한 내 생각은 빗나갔다.


"오빠. 어쩌지?"

"응? 말해봐. (난 준비되어 있으니 언제든 말해도 돼라는 말은 속으로만 삼켰다.)"

"ㅁㅁ은행에서 대출받은 거 있잖아."

"으응."

"그거 2주 안에 상환해야 한다고 하네?"

"...... 뭐? 갑자기??????"

"어. 갑자기."


대체 뭐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2주의 유예기간 안에 상환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좋지 않은 상황이 생길 게 분명했다.


"내가 [생활자금] 용도로 빌린걸 [주택구매]에 사용한 게 특약 위반이 된대. 난 진짜 몰랐거든. 대출상담사가 그런 말도 안 해줬어서."


말을 하는 내내 불안해지는 아내는 마치 자신의 죄라도 되는 양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변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멋지게 말이라도 해줄걸. 하남자스럽게 나 또한 아내의 표정에 동조하며 못나게 말을 해버렸다.


"그러게 용도를 잘 확인했어야지. 쯧."

"진짜 몰랐으니까..."


그런데 나는 알고 있었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몰랐슴다 ㅋ"


애초에 관심조차 없지 않았나. 돈이 어떻게 생겨났다 정도는 알고 있었어도 어떤 목적과 용도로 활용되는지 그리고 특약에 대한 것조차 같이 검토해 준 적이 없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미 엎질러진 물, 되담을 수는 없다. 누구 탓을 하고 안 하고 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지.


"자. 우리 오랜만에 힘을 합치자. 부부는 일심동체잖아?! 함께라면 뭐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속 편해서 좋겠다."


칭찬으로 알아듣고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이 무슨 탈압박이 들어온단 말인가.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하려 했건만 전화 한 통화로 인해 우리는 식사도 못한 채 멀뚱히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정확히는 노려봤다랄까. 기왕 시작된 눈싸움이니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주마.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경제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었다. 특히 회사를 관둔 시점부터는 주기적으로 우리를 찾아와 괴롭히는 중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 삶도 등 떠밀린 게 아니라 [선택]이었지 않나. 이번에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괴로운 마음이 갑자기 사라지진 않을 테니 오늘 하루동안은 씁쓸함을 꽤나 곱씹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나 알바 구할래."


아내가 부랴부랴 [알바몬]을 폰에 설치했다. 잠시의 검색 후,


"찾았다! 일하고 싶은 데가 있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도 난 멀뚱히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마치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도 되는 듯.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문득 정신을 차리더니 한마디를 건넸다.


"오빠? 정신 안 차릴래? 이게 다 오빠가 정신이 빠져서 그런 거 아니냐고? 울 엄마가 우리 사는 거 보면 얼마나 어이없어하겠어 엉? 안 그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면 다야? 어?! 어어!!!? 어쩌겠어. 급하면 내가 식당이라도 나가야지 후."


위기가 닥쳐오니 목소리가 커졌다. 아무래도 불안감을 큰 목소리에 실어서 떠나보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인 [부채 상환]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 이 또한 다 우리가 벌인일이니 스스로 풀어내는 수밖엔 방법이 없겠지.'


아무튼 아침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고, 여전히 해결책을 찾는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우울의 전파만 독자에게 전가할 뿐이니 이쯤 해두자.




'결핍. 그래 내게도 결핍이 찾아왔어.'


결핍의 의미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혹은 다 써 없어짐을 말한다.]라고 나무위키 님이 알려주셨다. 반대말은 [과잉].


'넘쳐흘러도 상관없으니 돈의 과잉이 생겼으면 좋겠구만.'


모름지기 작가에겐 [결핍]이 중요하다고 했다. 너무 풍족하고 아쉬운 게 없으면 글 또한 잘 써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간혹 성공한 배우 중에 연극하던 시절을 떠 올리며 못 먹고 못살았지만 꿈만 큼은 지켜나가던 [중꺾마 정신]도 얘기하지 않나.


잘되었군. 나한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어.


-예?


'대출의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 필사의 몸부림을 글로써 표현한다. 캬.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건 당신 생각이고.


나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좋긴 개뿔이 좋냐 인간아. 지금 당장 우리한테 위기가 찾아왔다고! 내가 식당에 나가서 손이 쩍쩍 갈라져 나가는 꼴을 봐야 속이 후련하겠어?"

"자기야. 25년도 정말 열심히 살아볼게."

"......"

"아무래도 열심히 살라는 하늘의 뜻인 거 같아. 견뎌낼 수 있는 위기를 극복해 내면 얼마나 더 성장할까?"

"......"

"나는 말이야. 이 또한 기회인듯해. 잘됐어. 이참에 더 열심히 해볼게."


라고 말을 끝맺으며 아내를 쳐다봤는데, 여기서 추가로 한마디만 더 뻥끗거리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이상 나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대신 속으로 말하면 되니 상관은 없지롱.


'25년에 얼마나 잘되려고 이런 시련이 찾아온 걸까? 우후후 기대가 된다 기대가 돼.'


[출처]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tq3aCTwqkEfNywAi3_Je6XA65Zu5NKY=


'아니,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좌절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는 거 아니겠나.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해결해 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잘 알고 있다.


비록 나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아무래도 안 되겠어."

"또 뭐가?"

"내일 당장 타로카드 보러 가자!"


이제는 정말 무속 만이 살길이다. 아... 아니지. 그냥 무속의 힘을 빌어 좀 더 긍정적인 미래를 설계해 보자.

부디 25년에도 우리 가족 무사히 그리고 안녕히 살 수 있도록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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