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17

원망

by 고성프리맨

혜리는 일기를 읽으며 혜선에 대한 생각을 해봤다.


’혜선.. 누구지? 낯이 익은 이름인데.’


일기 마지막에 적혀 있는 쪽지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사람을 계속 기다려야 하는 운명인가.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결혼이라니.’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온 신경이 계단과 건물 밖에 집중된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조바심이 생긴다. 갑자기 주변이 흔들린다. 건물이 무너질 듯 흔들리자 바닥에 주저앉았다.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리더니 균열이 생긴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려 하는데 잘 떠지지 않는다. 하지만 최대한 힘을 내서 눈을 살짝 떠봤다. 귓속에 들리는 일정한 기계음이 들리고 눈 위로 가습기에서 나오는 공기가 희뿌옇게 보인다.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 너무 아파 통증을 잊으려는 듯 눈을 감는다.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좀 더 귀 기울여 보자.’


최대한 의식을 부여잡고 소리를 들으려 애써 본다.


”혜리 님 제 말 들리시나요? 들리시면 눈을 두 번 깜빡여 보시겠어요?”


눈이 부시다. 누군가 빛을 쏘나 보다. 여전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들린 말에 응답하기 위해 눈을 두 번 깜빡이려고 힘을 냈다.


”잘하셨어요! 혜리 환자 의식은 돌아왔나 봐요. 하지만 아직 상태가 불안정하니 지켜봐야 합니다.”


’병원인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방금 전까지 공간에 갇혀 있었는데.’


생각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파와서 눈을 질끈 감았다.




집에 들어오니 아버지가 먼저 들어와 계신다.


”창훈아. 오늘 아빠하고 대화 좀 나눌 시간 되니?”

”네. 뭐 특별한 일은 없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내가 승호라는 네 친구를 만났다.”

”승호요? 무슨 일 때문에요?”


‘승호? 아버지랑은 어떻게 아는 거지? 오늘 얘기나누기로 했었는데 급한 약속이 생겼다고 한 게 아버지랑 대화나누기 위해서였던 걸까?‘


”내가 먼저 승호에게 연락한 거 아니다. 아침에 전화가 걸려 왔어.”


승호와 만나게 된 과정을 듣고 나니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아빠도 이상하단다. 승호가 우리 가족하고 무슨 연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얘기를 다 해줘야 할 거 같았다. 아빠는 혜리와 너를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너도 내 원망 많았겠지만 알잖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단다.”

”알아요. 이런 일을 어떤 누가 해결할 수 있겠어요. 아버지 탓 한 적 없어요. 그냥 생각하면 할수록 무기력함이 커져서 무서웠어요. 차라리 얘기를 안 하면 잠시라도 마음이 편할 거 같았을 뿐이에요.”

”미안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아니에요. 내일 출근하셔야 할 텐데 어서 쉬세요.”

”그래 너도 쉬거라.”


아빠의 탓이 아니다.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괜히 원망스러웠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잠이나 자자.’


원망할 대상을 찾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일 승호하고 얘기를 다시 나눠야겠어.’




만호 선배가 있는 교회에 도착했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여름이 지나가면서 해도 짧아진 듯하다. 전화를 하고 올까 했지만 그냥 없으면 기도라도 하고 돌아가야겠다 생각하고 왔다. 교회 내부엔 불이 켜져 있었다. 적막한 교회 내부에 사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만호 선배를 보러 발걸음을 옮기는 데 기도실이 보인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 기도라도 하고 만나러 가자.’


혼자만의 기도 시간은 오랜만에 가져본다. 최근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기도했던 모습이 주로 생각났다.


”하나님 아버지. 하루를 마무리하며 조용해지는 이 밤 당신께 기도를 드립니다.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도 많이 생기는 거 같습니다. 제 친구 창훈이 가족에게 일어난 가족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들으면서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도 창훈의 가족도 모두 당신의 자녀입니다. 당신의 품에서 죄를 뉘우치고 편안해질 수 있기를 갈망합니다.”


한참 동안 기도를 드렸다. 짧게 하려고 시작한 기도였는데 시간이 꽤나 흐른 거 같다.


”이 모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훈이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도 긴 기도를 통해 다소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아참. 만호 선배를 만나야 하는데.’


선배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일어나려고 하는데 다리가 너무 저려서 쉽게 일어날 수가 없다. 저림이 풀어지길 바라며 바닥에 엎드려 기도하는 자세로 눈을 감았다.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는 듯 잠이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