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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있는 일상의 가벼움

191 걸음

by 고성프리맨

"아차차, 시력보호 안경을 깜빡했네."


평소에 집에서만 주로 서식하다 보니 물건을 챙겨 다닐 필요가 없는 편인데, 하필이면 제2의 눈과도 같은 보호 안경을 깜빡하다니. 눈이 시리다 시려.


알에 도수는 넣지 않았다. 블루라이트 차단 필터를 적용한 말 그대로 보호용 안경. 안 쓸 땐 몰랐는데 이제는 한 몸과도 같아졌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안 쓸 때면 확실히 눈이 시리고 핑그르르 도는 느낌마저 든다.




"어어... 이상하다 이게 왜 안되지?"

"뭔데?"


오랜만에 아내의 안드로이드 폰을 만져보는데 뭔가 원하는 대로 작동이 안 된다. 몇 년 전에는 잘만 쓰던 안드로이드 OS였는데, 그새 iOS의 노예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눈꼴셔 죽겠네. 뭐 사과 마크 달리면 최고인 줄 알아? 지금 샘성 무시해?!"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몸이 사용법을 까먹어서 그래. 쓰다 보면 돌아오겠지."


게다가 난 [삼성전자] 주식도 조금은 보유하고 있다고!

물론 수익률....... 은 아내에게 비밀. 쉿! (삼전주주들이여 힘내시라 흑흑.)




"요즘 애플워치 착용 왜 안 해? 비싸게 사놓고선."

"생각보다 잘 쓸 일이 없네. 전에는 알림을 실시간으로 빨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내가 그럴 일이 있냐고."

"왜 샀어!"


살 때만 해도 정말 필요했다. 아니 필요하다고 세뇌시켰다. 실제로 사놓고 몇 년간 잘 사용하긴 했다. 단지 지금은 활용도가 많이 떨어졌을 뿐이고, 가끔 액세서리 용으로 차는 게 전부지만.


이제 한 달 뒤면 애케플(AppleCare+)의 보증기한도 끝이날 예정이다. 물론 보험과 관련된 그 어떤 혜택도 이용해보진 못했다. 그냥 심리적인 안전장치로 역할이 끝나버린다고나 할까. 배터리 효율을 80% 미만으로 떨어뜨리면 보증기한 동안 무상교체가 가능하다곤 하는데 도저히 줄어들진 않을 거 같다. 이러다 보증기한 끝나면 미친 듯이 떨어지는 거 아니야?




[스크리브너]라는 서비스를 구매해서 한동안 잘 썼다.


"웹소설 쓴다면 스크리브너 정도는 기본으로 써줘야 하지 않겠음?"


이유는 모른 채 남들이 좋다니까 일단 질렀다. 그리고 편한지 안 편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사용했다. 스크리브너를 사용하려고 웹소설을 썼다가 더 정확하려나.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지만 지른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려고 글을 쓰는 기현상이었다. 덕분에 무사히(?) 작품은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업데이트 알림이 뜰 때 버전 올리면서 확인하고 종료. 하루라도 빨리 웹소설을 다시 써야 그 활용성이 빛을 발하려나 싶다.




맥북은 그래도 가끔 쓴다. 맥미니를 사기 전만 해도 대안이 없었기에 필수로 사용했었는데, 집에서만 활동할 땐 아무래도 데스크톱이 주는 묘한 편안함이 있다.


[아이폰 미러링]이라는 기능을 활용해 폰을 동기화시켜 놓고 광활한 모니터를 통해 폰을 조작하는 재미도 한몫한다. 특히 웹소설이나 전자책 읽기가 편해 너무 즐겁다. 폰은 아무래도 들고 사용해야 하다 보니 손목이 뻐근해지곤 하는데 모니터에 띄워 놓으면 마우스나 키보드 방향키 정도만으로도 조작이 쉽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외출해서 글을 쓸 때면 맥북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단 맥북이 아닌 노트북이라는 용도 자체의 활용도가 비슷하겠지만 나는 애플에 영혼을 빼앗겨 버린 관계로 애플 제품을 일반적인양 인식하고 있다.


-정신 못 차렸네. 쯧쯧.


괜찮다. 나를 알던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소리를 한 관계로 이제는 나름 면역이 되었다.




아내는 결국 일을 구했다. 대단한 사람이다.


"한동안 집에만 있어서 우울했는데, 출근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기대되는 거 있지!?"

"기... 기대가 된다고? 정말?"

"어어 너무 좋아. 기왕이면 하나 더 구해서 투잡 하고 싶다!"


'나랑 같이 있는 게 우울의 요소였을까?'에 대해선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진짜일지도 모르니까.


"난 집에 있다가 나가서 일해야 된다고 하면 갑자기 속이 울렁거릴 거 같은데."

"집에서 할 수 있는 일 빨리해. 그거라도 해야지 안 그러면 오빤 진짜 노양심인간이다."


고등학교 때 학훈이 [양심]이었는데, 나보고 노양심이라니.


"알겠습니다. 집에서 열심히 해볼게요. 가장 님 파이팅!"


그렇다. 난 양심이 없다. 내조를 잘할 방법이나 고민하자.




큰아이의 취미생활 중 하나 [돌 닦기]. 정말 매일 같이 돌을 정성스럽게 샤워시켜 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피가 거꾸로 솟을 때가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빠의 변신을 예감한 큰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깨끗이 세척된 돌멩이에서 거실 바닥으로 물이 뚝뚝 흐르고 있는 모습을 본인 눈으로 똑똑히 바라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아마 본인도 알고 있을터.


"그만 좀 해. 애가 호기심이 많아서 그런 거잖아. 이제 이런 것도 몇 년 안 남았어."

"알고는 있는데 막상 눈으로 보면 너무 힘들어져."

"그래도 참아봐. 내가 당신을 보면서 참는 것처럼."

"?????"

"다시 말해줘?"

"....... 아니, 이해했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별다른 육체활동을 하지 않지만 시간만 되면 배가 고파진다.


'인체는 신비롭구나.'


"그만 좀 신비해졌으면 좋겠어. 두 끼만 먹어도 충분하겠구먼. 쩝쩝쩝."


'먹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일을 하건 안하건, 활동량이 어찌 되었건, 배가 고픈 것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참느냐 참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래 결심했어! (문장을 읽고 화면분할된 결심하는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면 그대의 나이가 꽤나 있는검다.)"

"드디어 굶기로 했어?"

"아니 먹겠다고 헤헤헤헤."

"하하하하하. 대단해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으헤헤헤헤헤."

"깔깔깔깔깔."

"크헤헤헤헤헤."

"그만하지?"

"......"


일요일 12시 16분.

한창 배고플 시간대다.

아직 밥 먹지 아니한 분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식탁 앞으로 이동하시길.


-당신이 뭔데 명령이야?


"아, 아니... 그냥 그러시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전 이제 먹을 예정이라서."


그러니까 오늘의 글은, (어제 분명히 심사숙고하며 쓴다고 했었는데...) 가벼이 읽고 넘어가 주셨으면 좋겠다. 일요일이 끝나면 월요일이라는 무거움이 다가올 테니 글마저 무겁게 써서야 되겠는가?!

이 정도면 충분히 이유는 설명된 거 같으니 빨리 허기를 해소하러 떠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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