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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 앞에 작아지는 하루

192 걸음

by 고성프리맨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


'몇 년 만이지?'


특별히 허리를 잘 못 쓴 것도 없는 거 같은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밑이 빠질 거 같다는 말을 십분 이해하게 만드는 허리 통증 앞에 무력감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과거에도 몇 번 비슷한 증상을 겪기는 했었다.

그때마다 늘 후회했다.


'아프기 전이 그립네.'


이미 증상이 생겨버린 뒤엔 늦었다. 단지 빨리 나아지기를 바라며 조심조심 사용하는 수밖에.




통증의 원인을 곱씹어봤다.


'아무래도 의자를 너무 믿은 탓인가?'


글 쓸 때를 제외하곤 의자를 눕듯이 사용한 게 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지만 지금으로선 유력한 후보다.


'그러고 보니 글 쓸 때마다 날개뼈 부위가 살짝 결리는 느낌이 좀 있긴 했는데.'


이건 뭐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키보드를 치면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결림과 격통을 근본적으로 없앨 방법은 없지 않을까? 아예 안 친다면 모를까.


"에휴...... 젊은 사람이 왜 그래? 오빤 몸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뭘 하라고 시킬 수도 없고 휴. 이러니 내가 고생이지."


아니 허리가 아프고 싶어 아픈 것도 아니구만. 그래도 면목은 좀 없네.

한편으로는 뭔가 아쉽기도 하다. 허리운동은 아니지만 최근 약간의 근력 운동 루틴을 실천하고 있었는데, '운동을 해도 허리가 아프다고???'란 생각이 드는 게 아닌가. 물론 깨작거리는 행위에 가까우니 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까지는 모르겠다만, 약간의 억울함이 생겼다.


"그거 몇 달 했다고 몸이 갑자기 좋아지겠어? 그러니까 미리미리 운동하고 살았어야지."


맞는 말을 들으니 몸이 더 아픈 것만 같다. 계속 누워 있는 것도 허리에는 별로인 거 같으니 오늘의 활동을 개시하자.




"oo야 미안한데, 오늘 학원 빠지면 안 될까?"

"왜요?"

"아니 아빠가 허리가 좀 아파서 데리러 가기가 힘들 거 같아."

"알겠어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생각보다 쿨하게 괜찮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 모습에 더 미안해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아플 때마다 결석을 권유해야 하는 아빠라니. 면목이 없다.




공식적인 아내의 첫 출근날이다.

이번엔 오후 알바라서 가게 마감 시간까지 있어야 하는데, 사는 동네가 외진 곳이다 보니 내가 데리러 가야 한다. 뭐 꼭 데리러 가야 하는 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요즘 날씨도 춥고, 밤에는 불빛도 없는 관계로 데려오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매번 이렇게 지내야만 할까?'


그럴 수는 없다. 몸의 아픔 때문에 해야 될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조금 살을 보태자면 내 성향이 조금 유난스럽기도 하다. 조금만 아파도 못 참고 티를 내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도통 내가 아프다 해도 잘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제도 아프고, 오늘도 아프고, 내일도 아프다고 하기 때문이지."


양치기 중년 다됐다. 내 곁에서 10여 년 넘는 세월 동안 봐온 게 있으니 이해는 한다.

그래도 오늘은 진짜 아프단 말이야.


그에 반해 아내는 아픔을 잘 참는다.

아내가 몇 번 안 되는(손가락에 꼽을 만큼) 아픔을 호소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는 정말 비상상황이 된다.

나와 달리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되어서야 "나.. 좀 쉴게."라는 그녀의 상태는 정말로 안 좋기 때문이다.


"어, 어서 쉬어! 내가 다할게."


허겁지겁 뱉어낸 말과 달리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내는 속으로 말했을 거다.


'저 인간이, 내 공백의 맛을 뼈저리게 느끼겠구만.'


새삼 아내의 위대함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요통으로 시작해 결국은 [아내찬가]로 글을 끝맺음하게 되려나 보다.

글을 쓰면서도 '어찌하여 나는 이토록 허접한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생겼다.

이제는 아내가 아닌 아이들마저 [아빠 = 언제든 아플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가족에게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언제고 기회가 닿으면 진지하게 가족토론의 장이라도 열어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그래도 또 일어나서 글도 쓰고 마음을 먹으니 누워 있던 것보단 훨씬 나은 거 같다. 어차피 한번 발생한 통증은 바로 사라지진 않을 테니, 낫는 시간까지는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


"평소에도 무리 안 하잖아."


평소보다 더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인 걸 그대는 왜 모른담?


"......"


오늘은 비록 허리 통증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잘 살아내고 싶다.

아프다고 계속 징징거리기만 해도 하루는 지나갈 것이고,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을 해도 똑같이 하루는 흘러갈 것이다.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는 순전히 내 의지와 선택에 달린 문제.


결코 침대와 한 몸이 되어 하루를 뒹굴거리며 보내지는 않겠다.

침대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우리 그동안 참 사이가 좋았는데.


글을 마무리 지으면, 아침을 챙겨 먹자.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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