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걸음
"자기야, 잠깐만!"
"왜? 나 바쁜 거 안 보이니?"
"아 진짜 알겠는데 잠깐만 와줄래?"
"별 거 아니기만 해 봐. 뭔데?"
아내는 오늘도 바쁘다. 집안일도 하랴, 내가 부르면 달려와주랴. 그런데 어쩌지. 사실 별 일 아닌데.
"오늘 쓴 글 좀 봐달라고 헤헤."
"아오 진짜! 이따 봐줄게. 아니 그리고 무슨 글 쓰는 사람이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 그냥 좀 당당하게 팍! C! 올리기도 하고 그래야지. 엉?"
"그냥 온 김에 읽어주라."
내 글의 유일무이한 검토자이자 편집자이면서 독자이기도 한 그녀의 피드백을 놓칠 순 없지. 그녀가 마우스를 휘어잡고 스크롤을 내리며 화면에 고정된 눈으로 읽는 모습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진 못하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저 [평가]를 기다릴 뿐. 과연 오늘의 처분은?
딸깍⎯!
'다 봤나 보네.'
열심히 기다려보지만 딱히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
"왜? 뭐?"
"아니 아무 얘기도 안 해줘?"
"뭐. 올려 그냥. 뭔 상관?"
"아니 혹시 그런 거 있잖아. 괜히 논란거리 유발되는 글이면 어떡해."
"웃기시네. 그럴 위치는 되고? 그리고 이게 뭐 어쨌다고? 특별한 내용도 없구만. 왜 이리 쫄보야?"
"그래도 뭐 이렇다 저렇다 감상이라도 좀 말해주면 안 될까?"
"아 할 일 많다니까! 짜증 나게 진짜. 괜찮아 됐어?"
"......"
괜찮다는 대도 이미 내 마음은 흐려졌다. 내가 바라던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뭔가 치열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진실된 소감을 말해줄 수는 없나? 뭐 이것 또한 다른 성향 탓이겠지.
'그래. 뭐 그럴 수 있어!'
[고로시 - 나무위키 참조]
대한민국의 은어, 인터넷 유행어.
가볍게는 삭제행위, 지우기, 없애기 등을 에두르는 것에서부터 마이너 한 취향을 가진 사람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특정 유저를 저격하거나 한 사람의 과거 행적을 캐서 폭로하는 일 등을 의미한다. 조리돌림, 공개처형, 수치플레이와 비슷한 의미이다.
'죽임', '살해'를 의미하는 일본어 殺し(고로시)에서 유래했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潰し(츠부시)라는 표현을 쓴다.
솔직히 말하겠다. 화자는 [커뮤질]을 좋아한다. 특히 마이너 한 성향의 게시판까지 돌아다니는 편이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진 않다. (눈팅만 한다는 뜻이다.)
-뭐... 뭐야 설마? 말로만 듣던 [일베충]?! 어쩐지 조짐이 안 좋더라니!
"아.. 아니에요! 맹세코 거기는 가지 않습니다! 우... 우연히 검색하다 결과에 나타나서 잘못 클릭한 적이 한번 있었나."
진짜다. 믿어달라!
그리고 하나 더, 고딩 때의 영향인지 [일본 문화]에 큰 거부감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일본어에서 비롯된 [인터넷 은어]를 제목으로 쓴 거겠지.
추가로! 겁도 많다.
혹시나 별 거 아닌 글 하나로 인해 [오체분시]라도 당하면 어쩌지 늘 전전긍긍하고 있달까. 오체분시는 그 뜻이 너무 잔인하니 그냥 '고로시 당하는 게 두렵다.'로 정정하겠다.
아내는 자주 말한다.
"오빠는 안 해도 될 걱정을 너무 달고 사는 게 문제야."
태생이 그런 것을 어쩐단 말인가. 하필이면 나의 그런 성향은 유전이 되어 둘째한테 전승이 되었다. 일단 TMI는 여기까지.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향이 있다. 그건 바로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또는 쓰고 싶은 글 쓰는 행위]인데, 평범한 나로선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작가의 글을 보고 속 시원해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대작가의 글이 이런 범주에 해당되는 건 결코 아니다. 한 가지의 예시일 뿐.)
물론 내 꿈은 대작가가 아니니 굳이 이런 고민까진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여하튼 하남자에 소인배스러운 성향만큼은 많이 아쉽달까. 덕분에 셀프디스 하며 글을 쓰는데 조금씩 노하우가 생기는 거 같기도 하지만.
예전엔(몇 년 전엔) 연예/스포츠 기사에도 [댓글]을 달 수 있었다. 지금은 기사를 확인하며 이모티콘을 눌러 반응을 남기는 정도밖엔 못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바로 [마녀사냥]이라 불리는 극단적인 여론이 문제였다. 이로 인해 생을 일찍 마감해 버린 사람이 생겨났고, 반작용으로 인해 결국 [댓글 기능 차단]이 생겼다.
지금도 사실 그런 사회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든 물어 뜯길 이슈가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다.
근거 없는 루머지만 언론에서는 사람을 두 번 띄운다고 한다.
한 번은 그 사람이 잘돼서 [고점]을 찍을 때,
다른 한 번은 [나락]으로 떨어질 때.
단순하지만 이 저주에 걸린 사람이 숱하게 많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고 또 다른 이슈로 [관심의 이동]이 생긴다.
"아니 그러니까 오빠가 왜 그런 걸 걱정하는데? 지금 오빠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몇 없잖아. 그리고 취향이란 게 있는 건데 좋아해 주는 사람만 생각하면서 글 쓰는데 집중하는 게 맞는 거 아니야?"
맞는 말이지, 맞는 말인데 말이다.
"내가 원체 걱정이 많아서..."
"집안 경제가 파탄 나는 거나 걱정하셔. 쓸데없는 걱정 집어치우고."
"......"
확실히 다른 성향이다. 차라리 나 대신 아내가 글을 쓰면 참 좋겠다. 독자가 읽기에 내 글이 개발새발 의식의 흐름처럼 막 쓰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잘 아네.
"......"
실제로는 그래도 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그리고 글을 써서 발행하고 난 뒤에도 시간이 지날 때마다 혹시 모를 오탈자나 어색한 문장이 보이면 [수정]하려고 노력한다. 순수하게 내 눈에 모나 보여서 깎아낸다.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게다가 눈치는 또 얼마나 보는지.
별 뜻 없이 쓴 것도, 별 뜻있게 받아들일까 봐 전전긍긍, 노심초사한다.
"아니, 근데 나만 그러는 건가?"
"무섭게 왜 그래. 누구랑 말하는 거야? 오빠 진짜 정신 차려."
아차차. 나도 모르게 습관이 하나 튀어나왔다. 대화문을 쓸 때 입으로 계속 중얼거리는 버릇. 그런데 진짜 나만 이렇게 걱정이 많은 걸까?
'그 옛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평생을 걱정 속에 살았다던 기나라 사람의 환생이 나인 거 아니야? [기우(杞憂)]'
여하튼 그렇다. 이번 생은 이렇게 살다갈 팔자려니 하는 수밖에 없지 뭐. 대신 하나는 꼭 지키자.
'고로시 당하기 싫으면 절대로 고로시 하지 말 것!'
50대가 되면 달라지겠거니 하며 오늘의 글을 휘리릭 써서 올려본다.